릴레이 기획 벤처의 안방마님을 만나다|
회계사 출신 김영길 바이오오케스트라 전무(CFO)
"연구자로서 오랜 경험을 가진 대표의 방향을 이해하고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저도 과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투자자들에게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실험적 의미, 과학적 이론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통역사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삼정회계법인에서 회계 업무뿐만 아니라, 회계사들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을 했던 그는 국내에 회계관련 내부통제제도를 처음으로 들여오는 업무를 수행했다. 다수의 대기업과 일하며, 체계적인 기업 운영방식으로 일하던 그가 처음으로 바이오벤처 '제노포커스'로 자리를 옮겼을 때, 기업운영 전반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었다.
회계사인 그가 연구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바이오벤처에서 겪은 혼란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안정적인 회계사의 길을 뒤로 하고 그가 대전 바이오벤처로 향한 이유가 궁금했다.

회계사로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왜 대전의 바이오벤처로 자리를 옮기게 됐나요?
회계사로서 국내외 여러 산업분야의 수많은 기업들의 성장과정과 산업특성을 관찰하면서, 제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회계사로서 쌓은 재무와 기업운영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바이오벤처기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대전에는 신약개발 등 연구를 통해 기술기업을 창업할 역량이 있는 분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어요. 은행원으로 오랫동안 일하신 아버님께서도 꼭 회계사로서가 아니라도, 훌륭한 과학자가 많은 대전에서 일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거요. 혹시 실패해도 다른 기회가 분명히 생길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고요. 물론 위험요소도 많아서 고민이 많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2014년 1월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일한 기업이 제노포커스셨죠?
바이오벤처 생활은 어떠셨나요?
그동안 제가 회계사로서 경험했던 전통 제조 중심 기업들의 모습과 많이 달랐어요. 비단 제노포커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바이오벤처들이 아마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비전공자인 제가 기술을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회계와 경영 측면에서는 그동안 겪은 양상과 너무 달랐어요. 제가 채워야 할 부분이 참 많았어요.
상장 문턱을 넘으니 제노포커스도 조금씩 기업으로 변모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특히 기술만으로 특례상장이 가능한 바이오벤처 기업 대부분은 매출 발생을 위한 전략, 조직관리, 회사운영 전반에 대해 일반 대기업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기술력을 제외하면 기업으로서 바이오벤처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를 채워 나가려면 우선 저와 같은 운영 및 CFO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과학(science)을 알아야 했습니다.
CFO가 과학을 알아야 한다, 무슨 의미죠?
제조 및 IT기업은 소비자 체험이 가능지만, 바이오벤처기업은 기본적으로 소비자 체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바이오벤처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CFO는 투자자, 정부기관, 채용 후보자, 은행, 일반 개인 등 다수의 사람에게 회사의 과학을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용어로 설명하면 비과학자인 일반인 뿐만아니라, 바이오를 전공한 투자자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이 데이터가 나타내는 의미, 차별적 우위성, 신약개발의 성공가능성, 신약개발 과정에서 중요성을 설명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실험을 할 수준은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하고 있는 실험의 의미, 과학적 이론 정도는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 역시 모르는 것은 연구소 과학자분들 도움으로 하나씩 배워나갔고, 저녁시간에는 관련서적과 논문 등을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습득된 지식을 기반으로 연구자와 투자자가 소통할 수 있도록 통역사 역할을 하는 것이 제 첫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바이오벤처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중요한 임무는 '자금조달'이잖아요. 시장과 기업이 소통이 안되면, 자금조달의 첫 단추도 꿸수 없으니까요. 상장 이후에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조달된 자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설명할 의무가 있잖아요.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킬 계획이고,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공장 설립 등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했거든요.
또 연구자와 기업 운영 및 자금관리를 하는 사람간의 소통도 중요하죠. 초기에 저도 이런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저 역시 과학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CFO 뿐만 아니라 연구 과학자도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과 회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노포커스 당시 기업설명(IR)에 직접 참여하신 것이군요.
바이오 분야 비전문가로서 제가 기업의 우수한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어요. 처음엔 연구소장님과 동석하다가, 점차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비전공자인 제가 쉬운 용어로 회사의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제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비상장시기 투자자에 특화된 설명부터 상장 이후 애널리스트와 개인투자자들에 적합한 언어로 설명하는 경험을 점차 축적해 나가게 됐어요. 뿐만 아니라 조달된 자금으로 매출을 발생하기 위해서 바이오기업에 필요한 마케팅 경험도 쌓게 됐어요. 당시 매출 실현을 위해 공장 인수를 주도했고, 신사업 확장을 위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바이오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기셨네요?
화이트 바이오 기업이 7년의 기간동안 어느정도 성장하면서, 제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레드 바이오 기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 대표님께 IR을 요청 드렸어요. 솔직히 거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만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을 위해 혈관뇌장벽(BBB) 데이터가 탄탄하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죠.
처음 들었을 땐 최종 신약개발까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약물전달시스템(DDS)까지는 구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류진협 대표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 회사의 약물효능이 왜 좋은지, 얼마나 비교우위가 있는지 전임상 데이터를 통해 이해하게 됐어요. 본질적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진짜 치료제를 만들고자 하는 류진협 대표의 의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상장사에서 다시 비상장사로 자리를 옮기셨네요.
바이오오케스트라에서는 어떤 업무를 맡으신거에요?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 약물전달시스템을 사업화하기 위해 공장 설립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어요. 우리가 개발 중인 RNA 치료제는 ASO(anti-sense oligonucleotide)가 치료제로서 효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약물을 뇌 세포 내로 잘 전달할 수 있어야 치료제가 완성됩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 중인 RNA 약물은 BBB를 투과해야 하고, 이후 뇌세포 내포작용(endocytosis)까지 잘 돼야 원하는 표적(target)에 약물이 작용할 수 있거든요. 우리는 뇌세포 안까지 잘 전달될 수 있는 DDS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플랫폼의 동물실험을 토대로 한 BBB 투과율은 약 7% 입니다. 다만 글로벌제약회사들이 우리 기술의 잠재력을 더욱 높이 평가해 기술이전을 하기 위해선 DDS 플랫폼을 직접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생산공장을 짓는 리스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투자자와 많은 논의를 했고 결국 투자자분들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습니다.
일단 DDS 생산 공장을 구축하면, 다양한 제약회사들의 물질을 받아 약물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러 갑론을박 끝에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정바이오와 GMP 시설 구축을 위한 계약을 맺고 공사 진행 중입니다.
바이오벤처가 공장을 설립하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투자자 설득도 어려웠을 것 같고요.
BBB 투과율 7% 의미를 글로벌 제약회사에 좀더 명확히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조건부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아두헬름)의 BBB 투과율이 대략 0.1% 내외입니다. 전임상 데이터 기준 BBB 투과율 7%는 우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겁니다. BBB투과율이 높기 때문에 적은 약물 용량으로도 높은 약물 효능을 보일 수 있고, 정맥주사(IV)로 대뇌피질 뿐만 아니라, 뇌의 깊은 영역(deep brain)까지 약물을 전달할 수 있어, 알츠하이머 질환을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 약물전달체로써 최적입니다.
뇌세포 선택적으로 투과하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서 독성이슈가 낮습니다. DDS가 필요한 글로벌 제약회사들에게 우리가 단순히 기술만 보유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DDS를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줘 신뢰를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해외 대형제약사가 기술 실사를 진행중에 있고, 여러 대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금조달 뿐만 아니라 기업 운영에도 많은 역할을 하시네요.
벤처는 대기업과 달리 변화가 많아요. 대기업은 보통 가을부터 연간단위 사업계획과 연간단위 인사평가를 하는 것이 보통이죠. 대기업의 사업은 대부분 성숙기에 이르러 있고, 그러한 환경에서는 연간단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환경은 수시로 변화하는 내부 및 외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므로, 연간단위 사업계획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벤처만의 OKR(Objective Key Result)이 필요했어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과 연구과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바이오벤처에서 연간단위 계획은 무의미했어요.
연구중심 기업이 임상에 진입하면서 필요한 자금조달과 사업개발 업무를 상황에 맞게 해 나가기 위해 각 부서간 정보 교환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회사는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상호의존적인 곳입니다. 원활한 정보교환을 위해 수시로 각 부서가 수많은 소통을 하지만, 전사 차원에서는 적어도 반기기준으로 타운홀 미팅을 통해 각 부서의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회사 팀원 모두에게 공유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OKR은 무엇인가요?
연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입니다. 혹 프로젝트의 실패로 자신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거든요. 하지만 바이오벤처는 개별 연구과제의 성공과 실패 여부보다, 해당 자산(asset)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는 틀린 것이 아니고, 연구과정 중에서 일어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리즈B를 마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장 계획이 있나요?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는 시점 이후에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기술이전 계약을 목표로 연구 및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연구기업에서 개발기업으로 상업화 역량을 입증한 뒤 상장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