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원법 18일 시행 앞두고 뚜렷한 방향성 조차 못잡아

유전자원법 1여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이번 달 18일 시행된다. 다양한 생물학적 자원을 활용하는 제약?바이오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히트뉴스는 제약?바이오업계가 고심하고 있는 나고야의정서 이행을 위해 마련된 유전자원법 무엇이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업계의 반응과 대응 양상을 정리해 봤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 부속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공평하고 공정한 이익공유에 관한 것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협약 부속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공평하고 공정한 이익공유에 관한 것이다.

유전자원법 핵심은 ‘접근신고’와 ‘절차 준수의 신고’

유전자원법은 나고야의정서가 우리나라에 이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이다. 나고야의정서는 다른 나라의 유전자원을 이용해 의약품 등을 개발할 때, 해당 국가에 미리 통보해 승인을 받고, 유전자원을 이용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게 나눌 것을 골자로 한 국제협약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공유(ABS: Access to genetic and Benefit Sharing) 관련 법과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고야의정서 이행체계
나고야의정서 이행체계

이번달 18일에 시행되는 유전자원법에 따른 의무는 크게 두 가지다. ‘접근신고’와 ‘절차 준수의 신고’다. 접근신고는 말 그대로, 다른나라 기업 등이 우리나라 유전자원을 연구?개발을 위해 ‘접근’하면 우리나라 소관 책임기관에 신고해야 하는 제도다. 반대로 절차준수신고는 우리나라 기업 등이 다른나라 유전자원을 접근해 이용할 때, 다른나라의 절차를 잘 지켰다는 내용을 국내 점검기관에 신고하는 제도다.

유전자원법에서 민감한 부분은 ‘절차 준수의 신고’다. 조헌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상무는 “아직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국가의 어떤 주체와 유전자원 접근을 위해 협상을 해야하는 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며 “협상 대상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나라의 유전자원 접근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 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환경부 주축으로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 통해 정보제공, 온라인 상담 등 진행

당장 18일 앞으로 다가온 유전자원법 시행에 따른 기업의 혼선을 막기위해 정부도 미리 대응책을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환경부가 유전자원 관련 정보관리를 통합해 제공하는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www.abs.go.kr)를 올해 3월 구축한 점이다. 단순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현재 온라인 상담, 뉴스레터 구독 및 상담 요청 등을 받고 있으며, 유전자원법을 어길 때 제반 신고도 사이트를 통해 간단하게 할 수 있다.

환경부가 중심이 돼 마련된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 모식도
환경부가 중심이 돼 마련된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 모식도

이밖에도 책임?점검기관은 합동으로 통합 신고시스템을 구축해 업무처리 지침 등을 마련하고, 생명기술 등 관련 업계에 대한 ‘나고야의정서’ 관련 포럼 및 세미나 개최, 전문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통합된 안내창구 마련 ▲중국 등 주요국에 동향 파악 및 대응방안과 관련 안내서 제공 ▲동남아시아, 남미 등 유전자원 부국과의 우호적 협력관계 구축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약?바이오업계, 정부 차원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응 요구

당장 이번 달부터 유전자원법이 시행됨에 따라 바이오협회 등에 기업의 문의가 높아지고 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정책 부문 이사는 히트뉴스와 전화통화를 통해 “유예기간 있어 기업들이 법안에 대한 인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유전자원법이 본격적인 시행됨에 따라 기업들이 법을 어길 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협회로 문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오 업계는 기업 규모별로 대응전략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 기업 중 규모가 있는 곳은 나고야의정서에 대응하기 위한 TF팀을 이미 꾸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TF팀은 생산, 수입, 특허 부서가 모여 나고야의정서를 비롯한 유전자원법에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것. 오 이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이라면 유전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 등이 이미 파악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나고야의정서 등 유전자원법을 대응하기 위한 자체 TF를 꾸릴 여력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다. 오 이사는 이런 기업들을 위해 협회 차원에서 환경부와 함께 유전자원법 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이사는 “협회에서 직접 의뢰가 들어온 회사를 찾아가 이익공유 등 공개석상에서 밝히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약?바이오업계 모두 정부가 관련 법제를 명확히 해줄 것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기업이 해외에서 생물자원을 들여올 때, 그 나라 법안을 준수해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의 법규정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나고야의정서를 비롯한 전반적인 규정의 적용범위와 준수해야 하는 내용을 각 나라별로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환경부가 주축이 돼 마련된 유전자원정보관리 센터 홈페이지.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이 홈페이지 보다 나고야의정서 이행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사례가 축적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환경부가 주축이 돼 마련된 유전자원정보관리 센터 홈페이지.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이 홈페이지 보다 나고야의정서 이행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사례가 축적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오 이사 역시 “이제 실질적으로 해당 국가의 접촉 방식, 이익공유와 관련된 국가별 사례 스터디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환경부나 과기부가 준비는 하고 있지만,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며 “아직까지 이익공유 사례가 많이 축척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이익공유 사례를 많이 찾아봐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기업에 실질적인 계약 사례를 제공하고, 기업이 나고야의정서에 따른 위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질적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유전자원 의존도 높은 중국, 이익공유 범위 0.5~10%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나라의 유전자원을 활용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에콰도르는 미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와 함께 우리나라를 생물해적행위국가로 지목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유전자원의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대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16년 9월 나고야의정서에 가입하고, 지난해 3월 ‘생물유전자원접근관리조례(안)’을 공개해 4월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공개된 조례(안)을 살펴보면, 중국의 생물유전자원은 반드시 중국 국경 내에서 이용해야 하고, 다른나라 기관 혹은 기업이 중국의 유전자원을 이용하려면 중국기관과 협력해 중국인을 실질적으로 연구개발 및 이용에 참여시켜야 한다. 특히, 중국에서 유전자원을 이용할 경우 이익공유 범위도 0.5~10%로, 큰 폭으로 정하고 있다.

오 이사는 “중국이 가장 주목해야 할 국가인데, 아직까지 중국의 관련 조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모든 기업이 중국의 동향을 최우선으로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 역시 중국의 동향을 가장 빨리 제공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물량과 가격 문제 때문에 중국에서 생약자원을 수입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한국의 원생약을 소재로 천연물신약을 개발했고, 이를 단순히 중국에서 수입해 올 뿐인데, 이러한 경우도 중국의 유전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봐야하는지, 이에 따라 중국과 이익공유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중국과 정부차원에서의 협상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국내 제약사,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특별한 대비책 없어

천연물신약에 주력하고 있는 제약사는 나고야의정서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동아에스티는 위염치료제 스티렌정과 소화불량 치료제 모티리톤정을 식약처로부터 허가 받았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DA-9803(성분 상심자, 복령피)'을 비롯해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DA-9801(성분 부채마, 산약)', 파킨슨병 치료제 'DA-9805(성분 목단피, 시호, 백지)',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제 'DA-9701(성분 현호색, 견우자)' 등 4개 천연물의약품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동아에스티가 식약처로 부터 허가받은 천연물신약 스티렌정
동아에스티가 식약처로 부터 허가받은 천연물신약 스티렌정

그러나 히트뉴스가 동아에스티 측에 문의한 결과, 동아에스티는 현재 나고야의정서 등과 관련된 TF 팀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고야의정서 대응방안과 관련해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당사는 2010년 12월 천연물의약품에서 생물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환경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부(환경부, 특허청 등), 산학 관련 단체와 현황 파악 및 대응방안을 논의했다”며 “다만 제약업계를 비롯해 대부분의 해당 기업들이 특별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비용 증가에 대한 대략적인 추산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규모 추산 및 해결방안 도출을 위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답변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동아에스티만 처한 것은 아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이 국내 136개 제약?바이오 기업 대상 설문결과, 나고야 의정서 관련 대응책 마련에 대해 ‘계획이 없다’는 답변이 54.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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