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등재 후평가·ICER 상향·환급제 확대 등 핵심 정책 근거 부족 지적

의약품 급여정책과 의료기술의 가치평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들이 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국민 건강·재정 지속가능성·산업 성장이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연구자들은 지난달 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분석한 의견서를 통해 "정부안은 근본적 평가체계 고도화보다는 약가 인상 또는 평가 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이대로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4일 밝혔다.
의약품 급여정책과 의료기술 가치를 연구하는 연구자 일동(가나다 순)
권혜영(목원대학교), 김윤희(인하대학교), 김진현(서울대학교), 배승진(이화여자대학교), 배은영(경상국립대학교), 양봉민(서울대학교), 유수연(강원대학교), 이상일(울산대학교), 이태진(서울대학교), 이혜재(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은(숙명여자대학교), 허순임(서울시립대학교), 홍지형(가천대학교)
의견서에 따르면 정부는 신약 접근성과 산업 혁신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도 급격히 증가하는 약품비 지출과 재정 지속가능성 문제는 목표에서 제외했다. 연구자들은 "고령화로 약품비가 27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재정요소를 비전에서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제의 100일 내 신속등재를 추진하면서 선등재 후평가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구체적 평가주기·방법·조치기준 없이 등재만 앞당기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미 현행 재평가·사후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평가 대상을 오히려 축소하겠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비용효과성 평가에서 ICER 임계값 상향 계획에 대해서도 "임계값이 낮다는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국내외 연구를 보면 오히려 현 수준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질병 위중도에 따른 탄력적 적용과 임계값 상향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정책적 혼동을 경계했다.
정부가 약가환급제 적용 대상을 신약·오리지널·바이오시밀러까지 폭넓게 확대하겠다고 한 부분도 문제로 꼽았다. 연구자들은 "오리지널은 이미 시장에서 안정 공급되고 있어 환급제 확대 명분이 없다"며 "위험분담제 협상을 약화시키고 약가결정 투명성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적응증별 약가제에 대해 "실제 적용의 기술적 한계가 명확하고 심평원도 공식적으로 신중론을 밝힌 바 있는데, 복지부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정책 일관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53.55%에서 40%대로 내리는 정부안에 대해서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비싼 제네릭이 더 많이 처방되는 시장 구조'임에도 후발 제네릭만 낮추는 방식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시장경쟁을 통해 낮은 가격의 제네릭이 선택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연구자들은 "평가 축소나 면제에 기대기보다 오히려 평가 체계를 고도화하고 평가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정부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국민 이익에 부합하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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