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I-SCOPE | 2025년 약가개편 그 '마지막 장' 뒷이야기

보호무역에 국가개입 나섰던 두 나라, 약가통제의 부작용
日 빅파마 7개, 佛 3개인데 한국은 '0'개? 수치만 인용했다

11월 28일, 제약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약가 개편안이 공개됐다. 2012년 일괄약가 인하 못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국내 제약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 내 온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약사들의 입장은 우려다. 건강정책심의위원회 서면 보고 자료를 입수해 살펴보았는데, 이야기는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마지막 장에서 시작된다.

제네릭 약가 인하의 근거로 제시한 일본과 프랑스는 과연 우리가 가야할 '생태계를 개선한 국가'일까? 그 마지막 장은 이번 약가 개편이 업계의 인식과 괴리돼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의 마지막 장인 참고 사항. 제약업이 전반적인 업계 구조에 따라 이뤄져 있다는 표현은 나오지만 그 결과는 결국 국내 제약업계를 약가로 짓누르는 정책이 아니냐고, 이 제약사 임원은 항변했다.
보고서의 마지막 장인 참고 사항. 제약업이 전반적인 업계 구조에 따라 이뤄져 있다는 표현은 나오지만 그 결과는 결국 국내 제약업계를 약가로 짓누르는 정책이 아니냐고, 이 제약사 임원은 항변했다.

 

건정심 서면 보고 마지막 장의 이야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약가제도 개선방안'의 가장 큰 내용 중 하나는 제네릭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낮추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비교 대상은 일본(40~50%)과 프랑스(40%)의 사례다.

표 앞에는 '글로벌 50대 제약기업 수'를 설명한다. 일본 7개, 프랑스 3개, 한국 0개. 수치만 봤을 때 제네릭 약가와 글로벌 기업 보유를 나란히 배치해 마치 전자가 후자의 원인인 것처럼 구성했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30년 약가 인하에 한계 맞은 일본

'빅파마' 마저 휘청거리는 프랑스

정부가 모범 사례로 든 일본에서는 정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제약공업협회(JPMA), 미국연구제약공업협회(PhRMA), 유럽제약단체연합회(EFPIA)는 이례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약가 정책이 '이노베이션을 저해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뒤인 2024년 12월에는 더 강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미국과 유럽 제약업계 협회인 PhRMA와 EFPIA까지 나서 2025년도 중간년 개정에  '놀라움과 깊은 실망'이라는 단어를 쓰며 지적에 나섰다. 2년마다 진행하는 약가개정을 2020년 이후 1년마다 바꾸며 약가를 인하하고 있는데 제네릭에 이어 특허 기간 중인 신약의 43%가 약가 인하 대상이 되며 일부 기업은 10년 이상 수립한 투자회수계획을 재검토해야 하고 수백억 엔 단위의 손실까지 있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실제 <히트뉴스>가 지난해 9월 도쿄에서 만난 이시무레 다케시 일본제약단체연합회 보험약가연구위원장 "30년간 이어진 디플레이션 속에서 매년 약가를 인하하려는 기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같은 방식을 이어가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이 정부·국회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절약된 부분이 1대 1로 업계에 연결되지 않은 채 대학 등 연구 분야로만 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글로벌 빅파마가 7곳이나 있다는 정부의 '보기'는 외려 약가개편이 이어지며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1월 프랑스의 기업 정보/신용 분석 기관인 엘리스피어(Ellisphere) 연구를 보면 프랑스 제약 부문 기업 도산은 12개월간 37.2% 증가했다. 제약 제조 준비 부문은 200%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에서도 총량제를 비롯해 가장 약가 억제가 강한 프랑스의 약가 정책이 문제로 이어진 사례다.

생산 역량 추락도 뚜렷하다. 2008년까지 프랑스는 그야말로 유럽 시장의 맹주로 지역 내 생산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의 위상은 낮다. 이미 스위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영국이 치고 올라오며 대륙 내 6위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2024년 프랑스 국민의 39%가 의약품 부족을 경험했고 그중 35%는 대체약제를 통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정부가 보고서의 참고사항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보기로 든 두 나라는 오히려 한정적으로나마 약가 유지 혹은 인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필수의약품, 혁신신약에 맞춰지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실제 2023년 약가개편 기준으로 2024년 일본에서 가장 약가 우대를 받은 제약사의 수는 다국적사가 많았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빅파마의 생성부터가 달랐다... 정부의 '참고'가 한국과 다른 이유

당국이 이야기하는 글로벌 제약사의 수는 일본에서 달라지 않았다. 단순히 제네릭 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두 나라의 제약산업 역사에서 '빅파마들의 탄생'을 한 번 되돌아 볼 필요 있다.

일본 제약산업의 출발점은 1961년 국민개보험 도입이다.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서 의료용 의약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970년대 이미 1조엔이 넘는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다케다나 오노, 시오노기 등 오래된 제약사들의 체력은 이때부터 키워졌다.

여기에 1980년대까지 대장성과 통상산업성이 주도를 해 3대 첨단산업에 제약을 포함시켰다. 보호무역과 내수시장 보호, 높은 제네릭 약가가 맞물려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역량이 축적됐다.

1990년대 들어 고령화로 내수 성장이 맞물리면서 일본 정부는 글로벌 혁신신약을 개발하면 자국에서 가격 특혜를 주겠다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다케다는 2019년 아일랜드의 희귀질환 치료제 기업인 샤이어를 당시 67조원에 인수하며 그 해 세계 9위 제약사로 도약하기도 했다. 혁신신약을 개발한 회사에 자국 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맞지만 이미 수십 년에 달하는 자국 제약사 육성 정책이 밑에 깔려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노피의 역사 역시 우리 나라와 사뭇 다르다. 사노피는 1973년 국영 석유회인 엘프 아키텐(Elf Aquitaine)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여기에 헬스케어 기업을 합병해 국제적 규모로 경쟁할 수 있는 국영 기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었다.

사노피와 아벤티스의 2024년 합병 당시 / 출처=네이처
사노피와 아벤티스의 2024년 합병 당시 / 출처=네이처

특히 2004년 사노피-신텔라보의 아벤타스 인수는 국가 개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4년 빅파마인 스위스 노바티스가 자국 회사인 아벤티스를 인수하려 하자 프랑스 정부는 직접 이를 막기 위해 뛰어들었다. 제약산업의 리더를 프랑스 내에 둬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협상을 중재하며 결국 사노피가 아벤티스 인수에 성공했다. 무려 545억유로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이후 일각에서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그만큼 정부가 제약산업을 방어하는 데 나선 대표적인 사건이다.

 

통제 위주로 출발한 제약산업, 기초체력 없이 '개편'만 했다

두 나라의 상황과 빅파마의 생성 과정을 돌아보면 한국과 그 흐름이 다르다. 시점의 문제다. 먼저 1961년부터 내수시장에서 제약산업을 키울 때 한국은 의료보험 자체가 없었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직장의료보험으로 시작해 1988년 농어촌, 1989년 도시 자영업자까지 확대되면서 비로소 전 국민 의료보장이 완성됐다. 한국 제약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은 불과 35년 전에 지나지 않는다.

내수시장 규모 차이도 크다. 2023년 기준 한국 의약품 시장은 31조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인구 구조나 역사를 감안했을 때 매우 적다. 일본 제약사들이 이미 30년간 3.5배 큰 내수시장에서 체력을 키우고 정부의 보호정책 아래 연구개발 역량을 축적했다가 30년간 꾸준한 하향세를 겪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 제약사들은 훨씬 작은 시장에서 처음부터 약가 통제를 받으며 성장해야 했다.글로벌 50대 제약기업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는 문제는 외려 정부의 약가 정책이 빅파마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상태에서 제네릭 약가를 추가로 인하하면 제약사들의 R&D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업계를 키워준 적이 없으면서 선후관계를 반대로 맞춰 약가를 깎기만 하는 정책이 나와서야 되겠느냐는 업계의 질문은 이같은 이유에서 시작된다.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결과만 따라하는 '복사 정책의 위험'

마지막 장의 논리구조를 지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프랑스는 제네릭 약가가 40%대 → 글로벌 50대 기업 보유 → 한국도 따라하면 된다'는 식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무시한 전형적 오류거나 약가개편의 억지스러운 명분이다.

일본·프랑스의 글로벌 제약사는 수십 년간 국가 주도 산업정책, 정부의 직접 개입, 압도적 내수시장 규모가 갖춰졌다. 국가가 기업의 합병에 개입할 만큼 나라가 제약산업을 눈여겨봤다. 여기에 프랑스 역시 유럽 전체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즉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의 결과가 아닌, 오히려 그 정책으로 업계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그에 비해 시간도 내수 시장도, 국가 차원의 육성정책의 수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 나라에서 이어졌던 M&A로 회사를 키울만한 분위기도, 총알도 부족했다고 업계는 말한다. 다만 관계자 사이에서 '따라하면 된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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