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유증 등 추진동력 대신 새 생태계 제언
초기 임상, 자금, 로열티 부족 우리에겐 한계도

"확실한 과학 데이터를 가진 바이오 회사라면 굳이 지분을 팔아 희석하지 않아도, 그 과학적 확신이 '신용'이 돼 채권·로열티·대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로열티 파이낸싱 등 비(非)지분 방식의 새로운 자금 조달 생태계 구축으로 국내 바이오 산업이 성숙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다만 초기 개발 단계가 많은 국내 바이오 입장에서는 아직은 어려운 제언이기도 하다.
25일 서울 이스트폴 호텔에서 열린 'IQVIA 인사이트 포럼 2025'에서 한종수 전 신한투자증권 바이오헬스케어 IB팀 수석매니저는 '제약바이오 분야의 투자자금 유형과 국내외 동향 및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지분 희석 없는 자금조달법...'로열티 파이낸싱'
한 전 수석매니저는 이날 발표에서 현재 국내 바이오텍 업계가 주로 지분 투자(Equity)에 의존하고 있지만, 산업 성숙을 위해서는 채권(Debt) 영역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술 이전 후 발생할 로열티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로열티 파이낸싱을 지분 희석 없이 채권 형식의 자금 조달이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임상 단계가 진행될수록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을 활용해 "과학에 근거한 확신을 금융의 신용(크레딧)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과학적 데이터와 임상 모멘텀을 금융 시장의 신용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바이오 기업은 초기 단계에서 벤처캐피탈(VC) 투자를 받고 후기 단계에서 상장하는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인 '과학적 확신'이 금융 시장에서 곧바로 신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결국 지분을 팔아 희석시키는 방식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따라서 기술 이전 후에도 임상 3상 등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할 때, 유상증자로 인한 지분 희석을 피하기 위해 바이오 기업들은 로열티 파이낸싱 같은 비전통적 자금 조달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시장에 돈은 충분...확실성 높은 후기에 투자 몰려"
한 전 수석매니저는 "국내 바이오 시장에 돈은 많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3~4개월 내 프리IPO 딜에서 500억원 규모의 대형 투자가 발생하는 등 상장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별 바이오 주식 시장 비교에서도, 현재 우리나라는 코스닥 헬스케어 150 지수 기준으로 2020~2021년 코로나 시기 대비 유동성을 회복하고 주가가 상승한 반면, 미국(XBI, IBB)과 중국은 코로나 시기 유동성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장 주식 시장의 호황과 달리 비상장 바이오 기업들은 자금 조달 어려움과 급여 지급 불확실성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코로나 시기 '노블 모달리티(Novel Modality)' 붐에서 벗어나, 이제는 확실성 높은 후기 단계 물질 중심으로 투자 패턴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FDA 승인 나올 기업에 '새로운 자금 조달 옵션'
다만 그는 로열티 파이낸싱이 실제 적용 대상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로열티 파이낸싱의 전체 시장 규모는 70억달러(약 9조원) 수준으로 크지 않은데다가 투자 대상이 되는 바이오텍의 조건이 매우 제한적인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임상 파이프라인 보유, 기술이전 완료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특히 기술 실현을 완료했으면서도 임상 파이프라인 진행 단계에서 적자가 발생하는 기업이 대상이 된다.
특히 로열티 파이낸싱은 기술 이전한 바이오텍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 FDA에서 연간 약 60개의 신약이 승인되며 이 중 빅파마가 약 절반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할 때, 신약 개발 대상이 될 수 있는 약물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초기 임상에서부터 자금부족을 겪는 한국 바이오에게는 후기 임상에 필요한 돈을 결국 지분희석이라는 방법으로 조달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전 매니저는 "국내에서는 아직 FDA 승인을 받아 로열티를 받는 회사가 많이 없지만, 최근 알테오젠이나 오스코텍 정도가 자금 필요 시 고려할 만한 수단"이라며 "향후 ABL바이오와 같은 선도 기업이 라이센스 아웃한 기술의 FDA 승인을 받는다면 또 다른 고려의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어 "결국 '로열티 파이낸싱'이 모든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바이오 산업의 자금 조달 구조를 성숙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바이오 산업의 자금 조달이 단순히 지분 투자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술의 신뢰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금융 방식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을 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