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의 PERI-SCOPE |
길리어드의 '엔서퀴다' 기술도입이 흥미로운 이유
HIV 등 적용 분야 많은 파이프라인 위해 '물질'만 쏙 뽑았다
랩스커버리 속 가려진 '오라스커버리', 한미약품에 효도했다
한미약품은 29일 오후 보도자료를 냈다. 길리어드에게 최대 483억원 규모로 오라스커버리(Orascovery)를 적용해 만든 '엔서퀴다'의 독점 사용을 위한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금은 35억원이었다.
2015년 마일스톤 기준 '조 단위'가 넘어가는 계약을 만들어냈던 한미약품이었기에 계약 규모는 크지 않아보였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하나는 길리어드의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가 뿌렸던 씨앗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라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이 독자 개발한 플랫폼 기술이며, 엔서퀴다는 한미약품이 발굴한 신약 후보 물질 중 하나다.
한미약품은 길리어드사이언스, 헬스호프파마(HHP)와 함께 길리어드에게 엔서퀴다(Encequidar)의 글로벌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독점 권리를 부여하는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한미약품과 HHP는 엔서퀴다의 독점적 권리를 길리어드에게 이전하는 동시에 원료 및 완제품을 공급하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파트너로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계약 이후 약 35억원의 선급금과 단계별 마일스톤, 제품 상업화 이후 로열티를 받을 예정이다.
오라스커버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약 7년간 연구 끝에 탄생했다. 이 기술의 핵심이 바로 엔서퀴다다. 개발 당시 'HM30181A'로 알려진 이 물질은 소장 내 약물 배출 펌프인 P-gp(P-glycoprotein) 기능을 일시적으로 억제해 본래 흡수되지 않던 약물 성분이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체내에 유입되도록 돕는다. 약물의 치료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투여 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보도자료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계약을 했다는 사실 그 너머에 있다.
HHP 설립자인 데니스 람 박사는 "길리어드, 한미약품과 함께 이번 기술수출 계약을 발표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계약은 엔서퀴다가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P-gp 억제제로써 다양한 분야에서 주사제의 경구제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계약은 홍콩 바이오텍 산업뿐만 아니라 홍콩에 본사를 둔 바이오텍 기업으로 HHP의 혁신 역량을 입증하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HHP는 이번 성과를 발판 삼아 오락솔(Oraxol) 개발을 한층 가속화하고 엔서퀴다의 경구 제형 적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길리어드로 넘긴 이 물질이 주목받는 첫 번째 이유는 현재 이 회사가 개발 중인 혹은 콘셉트의 약제가 엔서퀴다와 시너지를 노릴 수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길리어드는 계약 이후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향후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외신 등에서도 해당 제품이 어디 쓰일지의 여부를 추정하고만 있다.
일반적으로 HIV 치료제는 P-gp 억제제를 병용투여할 경우 체내 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빅타비'와 '예즈투고' 등의 항바이러스제의 경우 P-gp 제제로 엔서퀴다와 같은 P-gp 억제제를 병용 투여하지 말라는 지시사항이 붙어있다.
다만 흡수율을 극대화하면서 일관성을 확보해 충분히 초기 농도를 올리는 동시에 최소 유효농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만큼 기존 제품의 개량이 가능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B형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성분명 테노포비르 스로프록실 푸마레이트)를 개선해 만든 '베믈리디'(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를 내놓으며 같은 주성분으로 기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처방 패턴을 전환한 사례가 있다.
함유되는 주성분의 용량을 크게 줄여 부작용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적은 용량으로도 효과는 같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만든 제제기 때문인데 이 역시 이같은 사례에 사용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해당 물질을 통해 주사제의 경구제화가 가능한 만큼 여러 전략이 나올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같은 전략 아래서 보면 길리어드는 물질의 독점 사용권만을 가져가면서 복잡한 권리 전체를 담은 플랫폼 인수보다 자신의 파이프라인 중 HIV 파이프라인 등에서 흡수 증진이라는 기능만을 사는 영리한 투자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짚어야 할 부분은 한미약품이 걸어왔던 신약개발의 행보가 여러 악조건에도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한미약품이 오라스커버리를 활용해 만든 첫 항암제가 '오락솔'이다. 한미약품은 2011년 파클리탁셀 주사제를 경구용으로 전환한 '오락솔'과 해당 플랫폼 기술의 전세계 권리를 2011년 미국 바이오 기업 아테넥스(Athenex)에 기술 수출했다. 유방암 치료 등에서 1차 치료로 사용되는 약제인 만큼 기대감도 컸다.
아테넥스는 오락솔로 전이성 유방암 치료 시장을 노렸다. 그러나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 자료 보완 요구 서한(CRL)을 받으며 끝내 시판 허가에 실패했다. 이 여파와 재정 악화로 아테넥스는 2023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아테넥스가 파산한 이후 관련 자산은 홍콩 씨머 아이케어 홀딩스(C-Mer Eye Care Holdings)로 이전됐다. 현재는 그 계열사인 HHP가 권리를 승계받았다.
HHP는 올해부터 미국, 홍콩, 뉴질랜드 등 주요 시장에서 오락솔의 임상을 재개하면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길리어드가 엔서퀴다의 독점 사용권을 가지며 한미약품이 만들어왔던 R&D 플랫폼이 다각도로 활용되는 기반이 된 셈이다.
실제 오라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이 내놓은 '히트 기술' 중 하나였다. 약효가 짧은 바이오의약품의 투여 횟수를 줄이는 '랩스커버리'와 함께 한미약품의 신약개발 분위기를 극대화시킨 중요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회사는 그러나 둘 중 '랩스커버리'를 남기고 오라스커버리 기술을 이전했다. 임상시험을 진행하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연구인재의 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미약품이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한 당뇨치료 신약물질인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사노피에 마일스톤 기준 3조8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에 기술이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오라스커버리의 입지는 줄어들었다는 평이 이어졌다.
오라스커버리 원천 기술은 꾸준히 결과를 내고 있고, 영리한 개발파트너를 만난 이번 계약은 한미약품이 그동안 구축한 연구개발(R&D) 역량이 '꾸준히 효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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