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중의 영화로 명상하기]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과학기술 발전의 그늘. 현대인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명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명상이 불안을 떨칠 탈출구인가. 불안의 일단을 명상으로 이긴 작가 오제중이 영화를 모티브로 <히트뉴스> 독자들에게 명상의 길을 안내한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오 작가는 명상을 문화, 예술, 영상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에세이스트 겸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감독 : 벤 스틸러
주연 :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숀 펜, 셜리 맥클레인
국내개봉 : 2013.12.31 (관객 95만명)
사회 초년생 시절, 고향 수원에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회사까지 낡은 중고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이 아니면 경부고속도로는 늘 막혔다. 하루에 두 번, 일주일에 여섯 번, 같은 길을 오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무렵, 퇴근길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차량 너머로 검푸른 동해가 아른거렸다. 회사 생활에 대한 권태와 염증으로 숨이 막혔다.
거인의 심장처럼 고동치는 파도 앞에서, 짐승처럼 포효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싶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갈림길에서 강원도 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상상에 머물렀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벤 스틸러 감독의 2013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러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정을 그린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사진 필름을 관리하는 월터는 자신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상상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내면의 열망을 반영한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은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월터의 결단에 있다. 월터가 귀중한 필름 한 장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단순한 임무가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진정한 여행이다. 영화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삶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행동에 있음을 보여준다.
월터는 아이슬란드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그린란드의 얼음 바다를 실제로 경험하며, 상상 속에서만 바라보던 '진짜 삶'을 마침내 체험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찾아낸 '25번째 사진'이다. 거기엔 화려한 풍경도 극적인 순간도 없다. 전설적 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담은 것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월터의 옆모습이다. 그는 그 사진을 '삶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Life)'라고 부른다. 월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숀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이는 월터 자신이었다.

영화는 명상의 핵심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숀이 히말라야에서 눈표범을 마주하고도 사진을 찍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로 선택하는 장면은 현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끔은 그저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서"라는 숀의 말은 명상의 본질을 담고 있다. 이 한마디는 명상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이다. 판단도 욕망도 내려놓은 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깨달음이다. 영화 속 월터는 실제 행동을 통해, 그리고 숀은 순간에 머무름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알아차리고 삶의 주인공이 되는 두 가지 길이다. 행동으로 세계와 만나거나, 현존을 통해 내면과 만나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사를 조였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끌리듯 하루를 살아간다. 과거에는 기계가 육체를, 지금은 알고리즘이 정신을 길들이는 시대다.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했지만, 인간이 시스템에 종속되는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월터처럼, 우리도 노동이 규정하는 자아를 넘어설 때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 제목처럼, 우리는 언제든 삶의 주인공으로 걸어 나설 수 있다. 명상은 존재의 주인으로 돌아가는 조용한 혁명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알아차리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서는 일. 그 첫걸음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