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제약 Vol. 38 | 제약사의 현물기부, 누구를 위한 것일까
3주만에 돌아온 <히트뉴스>의 보도자료 분석 코너 '주간제약' 입니다. 코너가 쉬는 사이 우리도, 세계도 급변하는 하루하루를 맞고 있습니다. 제약바이오업계 역시 관세와 임상실패 등으로 업계 분위기가 출렁거리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듯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영남지역의 화마 소식과 이를 다룬 이야기를 이번 코너에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한독(대표이사 김영진, 백진기)은 최근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과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총 8000만원 상당의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및 성금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성금은 4월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된 사내 긴급 모금 캠페인을 통해 마련됐다. 한독 임직원들은 급여의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했으며 회사는 매칭 그랜트 방식(Matching Grant)으로 동일한 금액을 더해 구호 성금을 마련했다. 특히 휴직 중인 임직원들도 모금에 적극 동참해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한독은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모금된 성금 2250만원 및 4000만원 규모의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서울 사랑의열매에 전달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약업계 의약품 긴급구호 네트워크'에 동참해 대한적십자사에 2000만원 상당의 의약품도 기부했다. 이번에 전달된 성금과 물품은 피해 지역의 복구와 이재민들의 의료 및 생필품 지원 등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김영진 한독 회장은 '전례 없는 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돕고자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는 데 동참했다"며 "산불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매일 몇 건씩 나오는 '재해현장을 위한 기부' 이야기지만, 디룰 내용은 다소 민감합니다. '재해 현장에 보내는 기부물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보도자료에 나오지 않지만 한독의 기부 이야기를 먼저 전하려고 합니다. 회사는 지역에 전달할 의약품으로 '케토톱'을 선택했습니다. 많은 제약사가 그렇긴 합니다만, 한독은 화재 이후 복구현장에 직접 연락해 소방대원과 지자체, 이재민에게 필요한 제품이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장시간 복구작업으로 인해 소염진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받았고 일반의약품 가운데 대표 품목인 케토톱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아제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주사 동아쏘시오그룹 내 의약품 봉사를 위한 '봉사약국트럭'이 있을 정도로 재해지원에 진심인 회사답게 감기약 '판피린'과 소화제 '베나치오', 음료 '박카스D' 등을 발송했습니다. 삼양홀딩스는 파스 '류마스탑파워'를, 일동제약은 감기약 '캐롤나이트'와 습윤드레싱제 '메디터치' 등을 산불 현장에 보냈습니다.
6년 전 강원도 산불 피해가 컸을 당시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나서 현장에서 필요한 감기약, 항궤양제, 항진균제, 피부질환 치료제 등을 모았습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구호의 원칙을 지켰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회사는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제품을 보낸 사례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회사가 제품을 보낸 동일 유형의 제품을 보내거나, 이재민이 잘 복용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을 제공한 예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약사에서 자사 제품을 기부하면 브랜드 및 회사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해당 제품의 유용성 여부는 고개가 갸웃거려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 재고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도 있습니다. 케토톱이나 박카스D, 메디터치 등은 재고 문제가 없고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품목입니다.
일부 제약사들의 현물 기부에 불편한 진실도 있다는 겁니다. 재해 현장에 '제품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계자들은 기부 물품 중에는 실제 유효기한(혹은 사용기한)이 6개월 이내인 경우가 제법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기한 내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유통업체에 밀어넣어도 받아주지 않거나 폐기처리를 해야 하는 처치곤란의 '악성재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사 제품을 기부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시키기 위해 재해와 관련이 없는 제품을 넣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약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제약사들 사이에서 처치곤란인 제품이 있잖아요? 그럼 그냥 재고처분 식으로 (재해 지역에) 창고 개발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정작 그 지역에는 필요가 없으니 소비할 수 있는 기한만 지나가면서 썩어가는 거예요."
여기에 현행 '부가가치법’상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익단체 등에 무상으로 공급하는 재화나 용역은 부가가치세가 면제됩니다. 소각을 하자니 비용이 들고, 땡처리로 유통채널에 넘기면 수익성 약화와 판매에 따른 세금 문제가 드니 자연스럽게 운송비만으로 제품을 정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법인세법 등으로 상황에 따라 다소 세금감면까지 노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제약바이오업계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한약사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등 3개 협회는 2020년 재해 상황에 효용 높은 구호품 및 도움을 주기 위해 각자 기금을 내 '약업계긴급구호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남지역 산불 피해 현장에도 공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다만 불편한 진실을 남겨둔채 국내 제약업계가 말마따나 '잿밥'의 마음으로 현물을 기부한다면 오히려 이재민들에게 불편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으신 어르신에게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은 생경할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