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참을 수 없는 제약ㆍ바이오기업 보도자료의 가벼움
먼저 고백하자면, 오늘은 스스로를 향한 반성문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귀한 지면을 반성으로 채우는 것은, 이 문제를 짚지 못하면 결국 언젠가는 누군가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일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다. 모 제약사가 자사 보도자료를 보냈다. 시장에서 자사 의약품이 선전했다는 내용이지만 제목은 거창하기 그지 없었다. 팀원들과 '이 보도자료의 제목을 몇 개 신문이나 쓸까'라며 가볍게 물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불과 몇 시간 전 나왔던 보도자료의 내용을 검색사이트에서 찾아봤다. 이미 십여 개 매체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채 제목을 붙여넣었다.
다른 사례가 있다. 꽤 유명한 제약사가 자사의 증권가 보고서 내용을 보도자료로 발송하기 시작했다. 이 증권사에서 우리 회사에 좋은 내용을 넣었고 호재가 될 만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이어지면서 느낀 바는 하나였다. '보도자료를 만들어 내느라 홍보팀이 고생이 많구나.'
많은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처리하기에 정신이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제목과 내용을 확인하지만 당장 닥친 취재와 업무를 먼저 처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 보니 일선의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말 그대로 '복붙'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몇 가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된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적는 것은 옳은 일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제약사 입장에서 보도자료는 회사에겐 '특기할 만한' 자랑거리로 혹은 특정 언론이 회사 측에 민감한 사안을 보도할 때 밀어내는 용도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보도자료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사실을 부풀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확인되지 않은 보도자료는 언론을 포함해 업계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당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이런저런 보도자료가 휘몰아쳤다. 특히 바이오 기업 중 일부 극성맞은 곳은 기재할 만한 상황이 없는데도 '임상에 첫 환자가 등록했다', '우리는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 수준의 꺼리가 아닌 것들을 내놓는 일이 허다했다.
실제로 보도자료 작성 중 모 바이오기업의 in-vitro 시험 결과에 '레퍼런스가 무엇이냐'는 이야기에 '그건 회사 경영방침상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을 듣고 황당했었다. 최근에는 동료기자가 약간 비판적 기사를 내보낸 뒤 해당 회사에 다른 사항과 관련해 질문을 했더니 '우리 홍보방침과 맞지 않아 앞으로 답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준 모 바이오기업의 이야기도 있다.
보도자료가 나가고 안나가고 문제 사이로 주주들의 불만, 주가 부양 등 여러 이슈가 오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일부 기업의 태도가 지금 바이오 시장을 향한 투자자의 무관심을 만든 요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제약도 마찬가지다. 업계의 이야기가 그저 가십 정도로 흘러가는 수준이라면 100년 이상 역사를 쌓아온 우리 제약업계의 신뢰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스스로 문제다. 저들이 말하고 싶은대로 내 손을 빌려준 것이 아닌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의심할 만한 사항은 고민하고 찾아보고, 보도자료의 내용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취재하는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 '비판받을 만큼만 비판받게 만들고, 칭찬받을 만큼만 칭찬받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프라하의 봄을 다룬 소설이자 오늘 글의 제목을 짓는데 모티브가 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사랑은 제국과 같은 것이라 사랑을 향한 생각이 무너져 내리면 사랑 역시 사라진다'는 말이 나온다. 해서 생각해 본다. 100여년 시간으로 쌓은 우리나라 제약업계의 공든탑을 무너트리는 것, 어쩌면 한건의 보도자료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