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은 규제산업이라 진출국가 맞춤 전략 필요해

 빨간불 들어온 전통 제약회사 지속 경영 

국내 의료시스템의 혁명적 변화로 평가받는 의약분업은 물론 건강보험 약가 정책이 포함된 근래 25년, 제약회사 실적 추이를 <끝까지 히트>가 살펴보았다.

① 상장 제약회사 62곳 25년치 실적 뜯어보니
② 시련은 있어도 고비마다 치고 올라온 제약업계
③ 내수에서 성장한 전통제약, 어디로 가야 하나

[끝까지HIT 9호] 1998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상장 제약사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 부문에서는 전반적으로 성장세를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다가오는 Next 10년. 지난 25년보다 많은 성과를 이루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업계는 입을 모아 '글로벌 진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끝까지 HIT>는 앞으로 국내 제약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필요한 과제를 집중적으로 알아봤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현재 국내 제약업계를 '인구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수요는 늘어났지만 정체된 상황'으로 진단했다. 즉 국내 기업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윤택 원장은 "제약산업은 다른 사업과 달리 '규제산업'이라 현지에서 규제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현지화를 달성해야 된다"며 '현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원장은 현지화를 할 수 있는 방법 2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보령의 '카나브'나 셀트리온의 '램시마'처럼 직접 해외 마케팅을 추진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제약업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해외에서 모색하는 방법이다.

정 원장은 "한국은 막대한 자본이나 경험, 블록버스터 신약 보유 등 이런 측면에서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바로 마케팅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글로벌 기업의 수요를 예측 후 진출하는 과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연구개발(R&D) 측면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접근이 필요 하다는 의미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해외 시장 진출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블록버스터 개발을 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 의지가 뒷받침되는 게 1순위"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약인 미국 애브비의 '휴미라'는 연간 22조원 판매되고 있다"며 "한국도 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전략적 제휴 활성화와 융복합 혁신 의료제품 개발 지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약 개발 지원 등을 통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성공과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도 정 원장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맞춤형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출을 원하는 국가에 대해 맞춤 전략을 세운 후 직접 진입할 것인지, 전략적 제휴나 공동 프로모션, 라이선스 파트너십을 통해 진입할지 등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해당 국가에서 미충족 수요, 임상 요구 사항 및 상업화 기회 등을 따져야 한다"며 "그동안 전략적 제휴나 라이선스 계약 등을 통해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자사 약을 직접 유통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부연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과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 / 사진=히트뉴스
(사진 왼쪽부터)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과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 / 사진=히트뉴스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은 혁신신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R&D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업계의 인식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R&D를 통해 글로벌에서 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이 우선적"이며 "제약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이프라인 확보 과정에서 경쟁력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실적으로 한 기업이 여러 가지 파이프라인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은 어렵다"며 "바이오텍이나 연구기관 등이 가지고 있는 파이프라인 기반 기술과 제약사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잘 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신약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진출을 하기 위해 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 등 '협업' 중요성도 대두됐다. 정 원장은 "이전에 비해 인수합병(M&A)에 대한 시각 자체가 변했다"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의 단계에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기업과 협업을 통한 발전 등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M&A나 라이선싱 등을 필요한 부분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한국의 제약바이오산업은 글로벌 빅파마 대비 규모의 한계가 있지만, R&D 투자에 힘입어 전 세계(2만 109개)의 10%에 달하는 신약 파이프라인(2627개)을 보유할 정도로 급성장했다"며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 연구, 공동 개발, 재무적·전략적 투자, M&A 등 다양한 협업 모델을 구축해 도전해야 한다. 각자의 기술 역량과 임상 개발, 사업화 역량 등을 합치고 민관 협업을 통해 규모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혁신 성장의 기회는 있다"고 강조했다.

제약사들도 협업을 통해 시너지가 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서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상대방과 직접적인 경쟁을 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서로 열려 있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국내 제약사들이 앞으로 10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합쳐져야 한다고 전했다. 정 원장은 "기술적인 측면을 봤을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모달리티(치료 접근법)에 대한 도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제약바이오 산업은 기술에 대한 싸움이기에 새로운 모달리티에 대한 접근방식과 함께 소위 말하는 '미충족 수요(Unmet need)'를 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가져가는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글로벌 기준이 되는 제도와 규제 마련이다. 정 원장은 "국내에서도 회원국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규제를 만들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허가나 규정 자체가 곧 글로벌에서 통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글로벌 진출 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자금에 대한 이슈다. 그는 "미래 확신 가치가 있는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가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있는 영역에 접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R&D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메가 펀드가 설립된 상태지만, 단발성이 아니라 계속 진행하는 조 단위의 펀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은 인력이다. 정 원장은 대학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인력 양성은 업계에서 경험을 하는 건데, 산업계에서 해외의 우수한 기업들을 얼마나 유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 얼마만큼 협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며, 생태계 인프라 측면에서도 바이오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국 부회장은 산업계가 공격적인 투자와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블록버스터 신약을 창출하고, 정부가 과감하고 실질적인 산업 육성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3월 기준 36개의 자체 개발 신약 허가를 가지고 있다. 상장사 R&D 투자 현황을 봐도 2022년 기준 4조3894억원(매출 대비 12.7%)으로 직전 사업연도 대비 23.9%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제약바이오 산업과 디지털 분야의 융합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기술은 글로벌 선두 주자와 비교했을 때 격차가 크지 않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능력과 정보기술(IT) 기업의 AI 기술을 잘 접목시키면 향후 10년 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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