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혁신신약으로 가는 길의 수많은 웅덩이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이 렉라자와 얀센 리브리반트 병용요법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이 렉라자와 얀센 리브리반트 병용요법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앞줄 왼쪽부터 네번째)를 비롯한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김열홍 사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이 조병철 연세암병원 센터장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김열홍 사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앞줄 왼쪽부터 네번째)를 비롯한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김열홍 사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이 조병철 연세암병원 센터장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김열홍 사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황재선 기자가 보내온 두 장의 사진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유한양행 폐암치료제 신약 렉라자(성분 레이저티닙)와 얀센의 리브리반트(성분 아미반타맙) 병용 투여 임상결과를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이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발표하고,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를 비롯한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 이영미 R&BD 본부장, 김열홍 사장, 오세웅 중앙연구소장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의 사진은 감동적이었다. 170개국 암 연구자 3만 명이 참석하는 세계 3대 암학회 메인홀에서 이같은 발표가 이뤄진 것인데, 맹자 이루하 편에 등장하는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원천혼혼(原泉混混) 불사주야(不舍晝夜)
영과후진(盈科後進) 방호사해(放乎四海)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솟아 올라,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를 채우고서야 멀리 흐른다." 기원전 인물 맹자가 대략 2300년 후 대한민국 신약개발 도전과 성취를 상상하며 쓴 글은 아닐진대 의미를 새겨보자면 마치 우리를 위해 예비한 문장처럼 다가온다. 웅덩이는 도전이거나, 모험이거나, 시련이거나, 노력으로 채워야할 그릇일 수 있다. 너와 나, 그리고 그대들의 수많은 물방울들이 대오를 갖춰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야 푸른 파도 넘실대는 먼 바다에 이를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 제법특허와 느슨한 기준의 공장(1995년 GMP 의무화)을 통해 성장하던 국내 제약회사들은 1987년 물질특허제도 시행을 계기로 연구소를 짓고, 인력을 모아 신약개발을 시작했다. '우리도 신약을 개발해 보자'던 창업 1세대들의 경쟁어린 소박한 꿈들은 꼬리를 물고 일련번호 36호 국산신약까지 만들어 냈다. 신약으로 개발돼 나오는 시점의 소홀한 시장 분석 등 다양한 이유로 국산신약이 상업적 성공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따르지만 당시 환경을 돌아보면 기적이나 다름없다. 비임상연구소, 임상CRO, 임상의, 임상의료기관 등 신약 개발산업 인프라가 절대 빈곤한 조건에서 일군 성취였다. 우리 신약개발 역사는 눈 앞의 웅덩이들을 채우며 성실하게 흐른 물줄기였다.

"1990년대 말부터 하나 둘씩 생겨나던 바이오벤처가 2000년 전후로 밤사이 죽순이 올라오듯 등장하여 약 500개사에 이르렀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2000년,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시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분위기였다." 신정섭 히트뉴스 투자전문 기자가 작년 7월 'K바이오의 창세기와 새로 쓰여지는 미래'라는 기사처럼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깊은 샘은 이 때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하면 2000년 의약분업을 통해 캐시를 충전한 전통 제약회사들도 국산신약 및 개량신약 개발과정에서 연구력을 축적시키고 있었다. 한미약품, 유한양행, 에이비엘바이오, 레고켐바이오 등은 이곳저곳에서 솟아난 물방울들이 모여 흐르다 나타난 웅덩이를 메워온 과정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ESMO에서 온 두장의 사진은 이같은 맥락들 위에서 각별하다.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 테바를 비롯해 인도의 랜박시와 닥터레디가 미국 시장에서 퍼스트 제네릭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국내 크고 작은 제약회사 여러 담당 임원들에게 '우리는 할 수 없느냐'고 질문하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들의 첫 번째 이유는 영어를 잘하는 인력이 없고, 해서 FDA 업무가 낮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득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①R&D를 하고 ②기술수출을 하고 ③기술수출을 넘어 기술수출을 사간 글로벌 제약사와 글로벌 신약을 위해 협업하는 단계까지 진전했다.

연간 수십조 판매의 블록버스터 글로벌 혁신신약에 이르는 길에는 아직도 셀 수 없을 만큼 웅덩이들이 많을 것이다. 2019년 SK바이오팜이 엑스코프리(성분 세노바메이트)를 독자개발해 FDA에서 신약허가를 받았듯 도도한 물줄기가 끊이지 않게 물방울들이 솟아나 웅덩이를 채우며 흘러 결국 푸른바다에 도달할 것이다. 국제학회 메인홀에서 임상시험 결과 발표를 하고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을 수출한 곳과 사간 곳이 협력해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가는,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시대의 서막(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이 막 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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