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기자 정혜진의 간헐적 현장 체험 |

챔프 시업 전량 회수에 "소아과 인근 약국은 '북새통'"
상비해둔 두 박스 반납하고 약국서 1만2000원 환불
'약국 논의 선행됐으면' 아쉬움과 '약국 사회적 역할' 의견도

챔프 시럽을 전량 회수한다는 소식에 얼른 상비약 가방을 열었다. 얼마 전에도 일부 제품에 갈변현상이 있다기에 살펴봤던 챔프시럽이다. 그때는 회수 대상이 아니어서 로트번호만 확인하고 다시 넣어놨는데 전량 회수라니, 그냥 둘 수 없었다. 나가는 길에 집에 있던 챔프시럽 두 통을 챙겼다.

약국에 도착한 건 직장인 점심시간이 끝나는 동시에 병의원과 약국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1시, 약사는 미리 전화로 문의한 나를 알아보고 카운터 안쪽으로 안내했다. 

약국의 어린이 해열제 진열대.
약국의 어린이 해열제 진열대.

환불 절차는 간단했지만 수월하진 않았다. 동아제약이 약국에 배포했다는 QR코드에 접속하면 안내대로 동아제약 홈페이지에 내 정보를 입력해 환불 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QR코드는 홈페이지로 연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에러 메시지가 떴다. 약사는 '접속자가 폭주해서인지 동아제약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되더라'라며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환불 대장이었다. 홈페이지에 적접 환불 신청을 하기 어려워하는 구매자를 위해 약국 차원에서 준비한 것으로, 연락처를 작성하고 서명을 하면 약국에서 현금으로 바로 보상해주었다. 

이 약사는 "원칙적으로는 소비자가 동아제약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환불을 받아야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QR코드 사용이 미숙하거나, 너무 화가나 당장 환불을 받아가겠다고 우기는 환자들을 위해 장부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도, 화가 난 소비자도 아니지만 홈페이지 에러로 접속하지 못한 나도 장부에 이름을 적고 서명을 했다. 시럽 두 포가 남은 한 박스와 포장을 뜯지 않은 새 박스, 총 두 박스 분의 환불 금액으로 약사는 1만2000원을 꺼내주었다.

챔프 시럽 환불을 위한 QR코드는 오류가 반복됐다. 결국 장부를 작성하고 약국에서 현금 1만2000원을 받았다.
챔프 시럽 환불을 위한 QR코드는 오류가 반복됐다. 결국 장부를 작성하고 약국에서 현금 1만2000원을 받았다.

"회수 조치까지 약국의 몫인가?" 약국 피로도도 높지만

아이가 있는 집에서 챔프 시럽은 단순 해열제라 하기엔 그 의미가 크다. 우리집 역시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산 아기약이 챔프 빨간색,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었다. 태어나 채 3개월이 안 됐을 때 첫 예방접종 후 의사가 "약국에서 챔프 시럽 빨간 걸 사서 구비해두시고, 오늘 밤 열이 나는지 안 나는지 잘 보셔야 합니다"라고 안내한 걸 잊을 수 없다. 

최근에는 어린이집에서 열감기가 유행해 우리 아이도 밤 새 열이 오르내렸는데, 부루펜과 챔프를 3시간마다 교차 투약하며 미리 한 통을 더 사다놓은 참이다. 아이를 위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쟁여두는 품목이 부적합을 이유로 회수한다니, 10포 중 2포만 남은 것도 6000원에 환불을 받았으니 분명 손해를 본 건 아닌데, '그럼 이미 먹은 8포는 괜찮나?' 의구심이 들었다.

마침 한산해져 여유가 있다는 약사에게 챔프 관련해서 이것저것 묻자 약사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챔프 환불 고객이 많았느냐는 질문에 약사는 "여기는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아과 인근 약국에 있는 동료 약사들 말로는 환불 사례도 많고 고객 항의도 많다고 한다"며 "무엇보다 화난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원만하게 환불처리해주는 게 힘들다 하더라"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갈변현상 때문에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간 소비자가 그 제품을 다시 가져와 환불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엄마들 항의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어린이용이 많이 팔리는 곳이 아니어서 이 정도지, 다른 약국은 챔프 문의 응대하랴 화난 고객들 상대하랴 다른 업무를 못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소아용 의약품 전량 회수 결정을 두고, 제약사가 반품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약국과 사전에 논의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 약사는 "동아제약이 '시켰으니' 해야죠 뭐"라고 농담을 하면서도 "사전에 미리 고지를 하거나, 약국이 환불을 더 수월하게 도울 수 있도록 사전에 논의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동아제약이 챔프 시럽 갈변현상을 이유로 일부 제품에 한해 자진회수를 결정하고 약국에 전달한 QR코드(왼쪽). 이번 전량 회수가 결정되자 새로운 QR코드 안내문을 보내왔다(오른쪽). 사진은 약국이 동아제약의 이미지를 출력, 코팅해 직접 제작한 것.
동아제약이 챔프 시럽 갈변현상을 이유로 일부 제품에 한해 자진회수를 결정하고 약국에 전달한 QR코드(왼쪽). 이번 전량 회수가 결정되자 새로운 QR코드 안내문을 보내왔다(오른쪽). 사진은 약국이 동아제약의 이미지를 출력, 코팅해 직접 제작한 것.

"콘택600 회수를 기억하십니까" 약국의 사회적 역할론

약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은 알 만 했다. 의약품 품질 문제로 회수 지시가 내려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약국, 약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항의, 환불, 문제 의약품 수거 등을 현장에서 한정된 인력으로 감당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이 없는 건 문제라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약국이 문제 의약품을 제 때에, 적절한 환자 안내와 함께 회수하는 건 약국이 사회적으로 안전한 유통망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휴베이스 김현익 대표는 2004년에 있었던 유한양행의 '콘택600' 회수 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약국은 소비자가 가져온 것과 약국 재고를 정리해 신속하게 문제 의약품을 회수했지만, 동네 구멍가게와 같이 불법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던 판매처에서 몇 년이 지난 후에도 회수 대상 의약품이 발견돼 논란이 됐었다.

김 대표는 "콘택600 회수 사건을 봐도 약국이 정부의 관리 하에 있는 믿을 만한 의약품 공급처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안전한 의약품을 공급하고, 문제 의약품을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는 건 약국이 유일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약국이 회수의약품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휴베이스 약국 시스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챔프를 구매한 곳이 마침 휴베이스 회원약국이라 '판매중지' 문구가 뜨는 포스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제품의 바코드를 찍자 빨간 박스 안에 '판매중지' 의약품이라는 공지가 표시됐다.
챔프를 구매한 곳이 마침 휴베이스 회원약국이라 '판매중지' 문구가 뜨는 포스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제품의 바코드를 찍자 빨간 박스 안에 '판매중지' 의약품이라는 공지가 표시됐다.

휴베이스 약국이 사용하는 휴포스에는 회수 의약품 정보를 입력해 해당 의약품 바코드를 인식하면 컴퓨터 화면에 '판매중지'라는 안내가 뜨고 결제가 되지 않는다. 아울러 일반약 구매 고객에게도 연락처를 받아 저장해둔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고객에게 약국이 연락하기 위해서다. 이번 챔프 시럽도, 일부 휴베이스 약국은 챔프 구매 고객을 추려내 문자나 전화로 회수 사실을 알리고 환불을 돕고 있다. 

온라인 약국 앱 '내손안의약국'을 운영하는 DRx솔루션, 약국 통합 전산시스템을 목표로 하는 굿팜 역시 이런 의미에서 조제 환자 뿐 아니라 일반의약품 환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모두  약국이 환자를 온전히 관리하고 위험 의약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반약과 건강기능식품 구매 이력도 놓칠 수 없다는 공통된 생각에서 나온 서비스들이다.

김현익 대표는 "약국 포스에 문제 의약품 공지를 심는 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지만, 별 거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차이가 약국 현장에서는 큰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며 "약국이 환자를 관리하고 보호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이번 챔프 사태에서도 소비자에게 인식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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