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약국 인슐린 품절사태, 대형 도매업체 책임감 느껴야
계도기간 재연장은 미봉... 과학기반 콜드체인 규정 살펴야

동네약국에서 인슐린 제제를 구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제1형 당뇨병은 소아나 청소년들에게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소아 당뇨병"이라고도 한다. 이 환자가 생명줄 같은 인슐린을 투여 받지 못하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밥보다 더 귀중한 이 약을 구하기 위해 부모들과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약국 저 약국을 헤매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예견됐던 일이다. 그동안 한국의약품유통협회(유통협회)는 인슐린을 공급하는 3곳 제약업체에게 수차례 공문을 보내 생물학적제제규칙이 강화돼 시설비와 인건비 등이 추가로 들어감으로써 인슐린 유통마진율을 더 올려 줄 것을 요청한바 있다. 

이와 때를 맞춰 도매유통업계는 유통마진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인슐린 제품 배송을 집단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풍문을 지난해 12월경부터 언론을 통해 은연 중 지속적으로 흘려 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결국 18일 오후 강화된 콜드체인 제도에 대한 계도기간을 6개월간 다시 연장했다. 

하지만 아주 단기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6개월이란 시간은 어물어물하는 사이 순식간 지나간다. 6개월에서 벌써 1개월이 지났지 않은가. 식약처는 잠간 숨 쉴 틈만 번 것이다. 

사태의 발단과 원인은 2021년7월16일 생물학적제제규칙 중 수송 규정이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된 후 6개월의 시행 준비기간과 6개월의 계도기간이 모두 끝난 올해 7월17일부터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행정처분이 내려지게 됐으므로 △이 규정 준수를 위한 물류 역량이 부족하거나 △준비가 아직도 덜 돼 있거나 △이 규정을 준수하려면 시설 및 인건비 등을 추가로 더 투자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보전될 수 있도록 기존의 유통마진율이 개선되지 않는 한 손해를 보고 판매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의약품 도매유통업체들이, 인슐린 제제 공급을 아예 중단했거나 배송회수를 대폭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를 원인별로 다시 정리해 보면 △생물학적제제규칙 일부(수송)의 선진적 개정 △행정처분 △유통마진율 △물류 역량이 부족한 도매유통업체들의 공급 포기 △능력 있는 도매유통업체들의 선택적 배송 등으로 압축된다. 이 5가지 개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식약처가 지난해 생물학적제제규칙 중 수송 규정을 선진국처럼 개정한 것이 애초부터 잘 못된 일인가? 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성급했다는 여론이 도매유통업계를 비롯한 의약업계 일부에서 일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다. 현 콜드체인 관련 사태를 의약품 틈새시장(niche market)을 텃밭으로 삼아 일부 품목만 취급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생계형 쇼트라인(short-line) 도매유통업체들까지 뭉뚱그려 포함시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의약품을 대량으로 취급하며 의약품 유통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풀라인(full-line) 도매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콜드체인 수준을 진단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서인지 몰라도 최근까지 뭔가 의약업계나 정부 당국에 요구사항이 있을 때 딱하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의약품 시장을 91.1%(2021년 완제의약품 유통정보 통계집, 심평원)나 휘어잡고 있는 현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 과거와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지오영 그룹은 상권을 전국 방방곡곡까지 넓히며 2021년 무려 3조6142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제약업계 1위의 매출액 1조9116억 원보다 약 2배나 더 많다. 백제약품 그룹도 제약업계 2위 매출액 1조6878억 원보다 훨씬 더 많은 1조9004억 원을 올렸다. 동원약품 그룹 1조2379억 원, 부림약품 그룹 1조0329억 원, 태전약품 그룹 9656억 원, 복산나이스 9464억 원, 지오팜그룹 8500억 원, 인천약품 7436억 원, 엠제이팜 7189억 원 등등, 기라성 같이 성장한 도매유통업체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국내 의약품 유통사들의 규모나 시장 점유율은 크게 성장하였다.

20여 년 전 외투법인 최초로 쥴릭파마코리아가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딜 때 의약품도매유통업계는 쥴릭이 들어와서 다 힘들게 됐다면서 도매업계 모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천지개벽이 됐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2월 정부당국이 지오영 컨소시엄(consortium)과 백제약품에게 공적마스크 독점 공급권을 부여할 정도로 초대형 물류 능력을 공식적으로 높이 인정받았다. 

지난 3년 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거치면서 "우리 회사는 콜드체인 시설과 운영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완전히 갖추었으며 앞으로 더욱 확대ㆍ발전시키겠습니다"고 하는 등 전국을 커버(cover)하고 있는 10여 곳이 넘는 도매유통사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에 찬 콜드체인 준비 상황에 대한 홍보를 전문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행한 바 있다. 허장성세는 아닐 것으로 본다.

유통협회는 현행의 KGSP를 국제적 준칙인 GDP(Good Distribution Practice)로 상향 조정할 것을 2020년 이후 줄기차게 요망하고 있다. GDP에서 선진적 콜드체인은 기본인데 말이다. 

올해 5월 초 유통협회 책임자는 한 전문지의 창간 축하 메시지(message)를 통해 "2002년부터 의약품유통품질관리기준인 KGSP제도가 (의무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업무가 2011년 지자체로 이관된 후 제대로 사후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협회는 이 기준을 국제의약품유통관리기준인 GDP로 상향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적극 제안한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의약품유통선진국들은 이 제도를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제약사들이 요구하고 있는 의약품 물류 품질에 부합하기 위하여 동 제도의 도입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도모할 필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GDP는 3년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주하고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한 '의약품 공급 및 구매 체계 개선 연구'를 통해 2019년11월 공식적으로 소개됐고 이 내용이 곧바로 유통협회 부설 정책연구소의 세미나를 통해 도입의 필요성이 이미 도매유통업계에 널리 알려졌다.

업계를 리드하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초대형ㆍ대형 도매유통업체들의 실상과 유통협회가 이러할진대, 식약처가 지난해 생물학적제제규칙 중 수송 규정을 개정(개선)한 것은 잘 못된 일도, 도매유통업계 사정을 잘 모르고 취한 성급한 일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오히려 유통협회가 바라고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한 선진화 추구 열망에 비하면 늦은 감도 없지 않다. 

둘째, 결과적으로 행정처분이 동네약국 인슐린 품절사태를 불러왔다. 행정처분이 몹시 두려워 새롭게 바뀐 콜드체인 규정을 운영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든가, 아직 미쳐 준비가 덜 된 일부 도매유통업체들이 인슐린 공급을 포기했기 때문에 발생된 일이니 말이다.  

인슐린 품절 사태를 계기 삼아 생물학적제규칙에서 인슐린 제제의 적용을 제외하자는 주장까지 도매유통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주장은 자칫 '인슐린 공급의 원활을 위해서라면 의약품의 안전성은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비판과 논쟁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 같다. 또한 일부 도매유통업체의 역량 문제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인슐린 공급 포기에 대한 도매유통업계 차원의 일말의 자기반성도 없다는 오해를 불러 올 가능성이 크다.

셋째, 3곳 제약업체들이 생물학적제제규칙 강화로 늘어난 비용을 유통마진율에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동네약국 인슐린 품절을 불러 왔다는 도매유통업계의 견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품절을 직접 집행한 자는 도매유통업계인데 말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렇게 판단될 수도 있겠지만, 콜드체인 규정 강화로 인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유통마진율 반영 문제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거래 당사자 간에 풀어야 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핑계 거리 찾기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을까. 

넷째, 강화된 생물학적제제규칙을 제대로 따라잡기에 물류 역량이 좀 부족한 도매유통업체들의 인슐린 제제 공급 포기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하루아침에 기업 역량이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 계도기간 6개월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무리한 물류 시설 및 운용에 대한 투자는 업체 경영에 결코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행의 물류 위ㆍ수탁 제도를 활용해 동네약국에 인슐린도 공급하고 경영 위험부담도 최소화하는 일석이조의 돌파구를 찾았으면 한다.

다섯째, 능력 있는 도매유통업체들의 문전약국 우선 및 배송회수 축소 등과 같은 선택적 배송은 비판 받아야 한다. 능력 있는 유통업체란 년 매출액 2천억 원이 넘는 32곳의 초대형ㆍ대형 도매유통사들이다. 이들에게 강화된 콜드체인 규정은 통과하기 힘든 험로이거나 건너가기 어려운 세찬 물살이 아니라고 본다. 현재 문전약국에는 인슐린을 공급하고 있는 능력자들 아닌가.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공식 조직인 '사단법인 한국의약품유통협회'가 제정한 '의약품 유통업 윤리강령'을 보면, '△우리는 우수의약품 공급의 주관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 한다 △우리는 국민건강을 위해 우수의약품을 적기 적소에 신속 안전 정확하게 공급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유통과정상 의약품 안전공급을 위하여 약사법령을 철저히 준수하여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우리는 세계 의약품 유통시장의 변화를 선점하고 경영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의약품 유통산업의 발전에 초석이 된다'고 돼 있다. 도매유통업계가 스스로 만든 이 준칙이 결코 지켜지지 않을 미사여구(美辭麗句)에 불과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오늘의 '동네약국 인슐린 품절 사태'를 볼 때, 과연 도매유통업계가 의약품 공급의 주관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지, 적기 적소에 신속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세계 의약품 유통시장의 변화를 선점하고 경영혁신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도매유통업계가 스스로 만든 유통업 윤리강령에 충실했다면, 능력자들이 발 벗고 나섰다면, 이번 사태는 절대로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는 마냥 제도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인의 책무'에 대해 곰곰이 되새겨 봤으면 한다. 30여 곳 초대형ㆍ대형 도매유통업체들이 총대를 메야 한다.

식약처가 2018년 12월초 약국가에 배포한 '자가투여주사제 안전사용 안내문' 중, '인슐린제제 안전하게 투약하기' 팸플릿(pamphlet)을 보면, 여행 중 인슐린제제의 보관 방법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직사광선만 피하면 실온에서 약 4주 정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 인슐린 보관은 너무 덥거나(30℃ 이상) 추운 곳(2℃ 이하) 및 직사광선이 비치는 곳을 피하도록 합니다. 또한 비행기 여행 중에는 화물칸에 보관하는 경우 얼 수 있으므로 반드시 기내에 가지고 타도록 합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정도로 안전한 인슐린 제제라면 강화된 콜드체인 규정에서 인슐린 등을 분리해 별도의 규정을 남은 계도기간 5개월 동안 새롭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과학이 뒷받침 돼야 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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