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보툴리눔 톡신 제제와 카니발리즘

이쯤되면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우리 기업들과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메디톡스가 미국까지 쫓아가 대웅제약의 뒷 덜미를 낚아 챈 끝에 글로벌 경영의 속도를 뚝 떨어트려 놓았는가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잠자고 있던 행정력을 돌연 발동해 휴젤과 파마리서치의 6품목 허가를 취소함으로써 국내 기업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한 대내외적 신인도를 깎아 내렸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 동족끼리 서로 잡아 먹음)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미국에서 벌인 법 다툼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식약처는 12월13일자로 휴젤과 파마리서치의 보툴리눔 톡신제제 6품목(휴젤 4품목, 파마리서치 2품목)에 대해 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국가출하승인된 제제 만 유통시켜야하는 국내 시장에, 국가출하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수출용 제제가 흘러들어가도록 이들 회사가 방치했다는 혐의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이 17일 휴젤이 낸 '품목허가 취소 처분 등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함으로써 다툼은 본안 소송서 가려지게 됐다.

아직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으나 금명간 휴젤과 같은 혐의로 행정처분에 직면하게 될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 제약회사들에게도 해당하는 국가출하승인제도는 '보건위생상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생물학적제제 등에 대해 유통전에 국가에서 그 품질을 사전에 점검하는 제도'로 2012년 6월8일자 시행됐다. 종전 완제품 대상으로 시행하던 국가검정제도를, 원료ㆍ반제품 등 단계별 제조공정 및 품질관리 시스템 전반을 검토하도록 개선한 제도다.

문제는 품질의 안전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출하승인제도가 내수 판매 제제와 수출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데서 기인한다. 현행 약사법 관련 법령인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라 내수 판매 제제는 반드시 국가출하승인을 받아야하는데 비해 수출용의약품은 예외로 하고 있지만, 같은 제조라인에서 생산된 제품은 포장 라벨만 다를 뿐 품질 안전성은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내수와 수출용을 다르게 생산할만큼 뒤처진 인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출하승인을 정 중앙에 두고 내수 판매 제제와 수출용 제제 간 위법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자, 모호한 규정 때문이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수출 노하우를 갖춘 무역업체를 통해 자신들이 미처 개척하지 못한 시장에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수출해 왔고,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를 모를리 없을 것이다. 그랬던 식약처가 수출용 제제가 내수에 흘러들어 국민 안전에 위해 위험이 발생한 것처럼 호들갑 떨며 품목 허가 취소에 나선 것은 의아하다.

작년 유사 사안으로 조치했던 케이스로 인해 생긴 '행정의 매듭'을 법원에게 위탁해 스스로 책임을 면탈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약품 허가 행정에서 최고 조치의 하나인 품목 허가 취소를 꺼내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한 조치였다면, 평소 이런 저런 정책을 개발해 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서던 식약처의 스탠스처럼 제약회사들이 오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예고를 하며 정책적 보완의 시간을 가졌을 텐데 말이다.

안전만큼 산업육성을 자주 말하는 식약처지만 종종 기업과 산업의 속성을 도외시한 채 변덕스럽거나 막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들에게는 일상 업무인 '품목 허가와 취소'가 기업들에게 현실이자 미래라는 점을 식약처가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다. 품목 허가 취소가 보툴리눔 톡신 제제 수출 기업들에게 막대한 손실과 심각한 대외 이미지 하락을 불러올 리스크로 공감할 수 있었다면, 식약처는 응당 정책 개선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현재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장 규모는 대략 2000억원대며, 글로벌 시장은 7조원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내수에서 시작해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고 상업적 성취도 높게 예상되는 상황인데 기업과 기업, 당국과 산업 간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과도한 경쟁과 행정의 일관성 유지 강박 내지 과도한 단호함으로 인해 서로를 못살게 굴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어부지리(漁夫之利), 아니 '글로벌사지리'다. 해서 관리 감독 당국인 식약처가 품목 허가취소라는 '쎈 행정조치'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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