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환경·제조공정 기준 준수가 품질의 요건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11]  의약품의 품질[1] 

식약처는 의약품을 허가할 때 안전성, 유효성 그리고 품질을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한다. 1 안전성과 유효성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짐작한다. 안전하다는 것은 쥐나 닭에게 약을 먹여도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약을 복용하면 병이 치료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자료는 가짜 약을 투여한 대조군과 진짜 약을 투여한 시험군을 비교 관찰한 자료라고 설명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의약품의 품질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족하는 의약품의 품질이라고 하면 더욱 막연해진다. 일상생활용품과 다르게 의약품의 경우 품질이 좋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활용품의 경우 기존 제품이나 다른 유사한 제품과 비교할 수 있지만 의약품의 경우는 비교할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3세기 초 중국의 장준경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금궤요략에 "반하후박탕"의 효능과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2 목구멍에 이물감이 느껴질 때 반하, 후박 등 5종류의 약재를 달여 복용하면 치료된다는 내용이다. 중국산 약재를 중국인에게 처방하여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임상시험을 통하여 얻은 정보이다. 

우리 조상은 중국산과 품질이 동일한 국내산 약재를 사용하면 안전할 뿐 아니라 금궤요략에서 주장하는 효능・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었다. 민족적 요인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오직 약효를 결정짓는 것은 중국산 약재와 품질의 동등 여부라고 믿었다. 세종 때에는 중국산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약재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였다. 신약을 대체하기 위한 제네릭 의약품의 개발인 셈이었다.

"반하후박탕"에 들어가는 후박을 대용할 약재를 찾아 조선 팔도를 뒤졌다. 하지만 후박3의 기원 식물인 Magnolia officinalis는 국내에 자생하지 않았다. 중국산 후박과 수피의 형태가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는 심봤다고 외쳤을 것이다. 

어렵게 발굴한 약재였지만 모두 향약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쳤다. 조선왕조실록에 "1423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 62종 중 14종을 중국산 약재와 비교하여 새로이 진짜 종자 6종을 얻었고, 중국산과 같지 않은 후박 등 7종은 이제부터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약재의 형태, 맛, 냄새, 촉감 등을 서로 비교하여 판단했을 것이다. 정약용의 "아언각비"를 읽어보면 당시의 관능검사가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옛날 북경 시장에서 후박을 사서 맛을 보니 살짝 매운맛이 강해 증기를 소통시키고 기운을 내렸다. 제주도에서 온 것은 맛이 조잡하고 씹으면 소의 침 같은 거품이 난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정약용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밝혔다. 1817년 겨울 북경의 상인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우리나라 상인이 조선 후박을 1000냥 어치 사서 북경에 갔지만, 후박이 아니라 퇴짜 맞았던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5

당시에도 향약으로 인정할 때는 품질을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했을 것이다. 중국산 약재와 새롭게 발굴한 국산 약재를 비교한 관능검사성적서를 요구했을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사용된 중국산 약재와 품질의 동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의약품을 허가할 때 시제품의 품질을 입증하는 자료를 요구한다. 임상시험에 사용된 의약품과 시제품의 품질을 비교한 이화학적 시험성적서를 요구한다. 임상시험용의약품과 시제품의 품질이 동등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약재는 자연에서 채취하고, 의약품은 제조시설에서 생산된다. 약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물에서 어느 부위를 채취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건조했는지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을 것이다. 동일한 품질의 약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의약품도 마찬가지이다. 제조환경과 제조공정에 대한 기준을 요구한다. 일관된 품질의 의약품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도록 유도하는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제조시설에서 임상시험용의약품과 시제품이 생산되었음을 밝히는 것도 품질을 입증하는 자료이다. [계속]

1. 식약처 고시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규정」 제5조(심사자료의 종류) 1항
2.한의학고전DB, 한국한의학연구원, 2021.06.25 접속, 
https://mediclassics.kr/search/result?search=%EB%B0%98%ED%95%98%ED%9B%84%EB%B0%95%ED%83%95
3. 대한민국약전, 의약품안전나라, 2021.06.25 접속, https://nedrug.mfds.go.kr/pbp/CCEKP23
4. 중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향약인 단삼·방기·후박·자완 등을 쓰지 못하게 하다, 조선왕조실록, 2021.06.19 접속,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503022_004.
5. 정약용, 「아언각비」, 박상수 역, (서울:지식을만드는지식,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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