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도 임신동물실험 검증 안해...켈시박사 덕본 미국
강신정 박사의 의약품 허가&등재 [8] 의약품 안전성 ②
서독에서 최초의 기형아가 태어난 것은 탈리도마이드가 허가되기 전이었다. 1956년 12월 25일 그뤼넨탈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부인이 귀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하였다. 회사에서 탈리도마이드가 임신오조에 특효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아내의 입덧이 심하지 않았더라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팔이 없거나, 손가락이 세 개이거나, 엄지 손가락의 관절이 세 개인 다른 희생자보다는 다행이었다.
마지막 생리 후 35일과 49일 사이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부는 기형아를 출산하였다. 35일에서 37일 사이에 복용한 임부는 귀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하였고, 39일에서 41일 사이에 복용한 임부는 팔이 없는 기형아를 출산하였다. 팔이 없는 기형아로 태어난 독일인 마깃 훈데마이어는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복용한 한 알의 약이 문제가 됐다고 하셨습니다." 1
FDA 켈시 박사가 탈리도마이드의 신경 손상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 동안 서독에서는 기형아의 출산이 유행병처럼 심각하였다. 탈리도마이드가 허가되고 3년이 지나자 기형아 출산의 빈도가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출산을 앞둔 임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때 서독의 소아과 의사인 Widukind Lenz는 탈리도마이드를 지목하였다. 2 탈리도마이드가 허가되지 않은 동독에는 기형아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소련에서 시작된 은밀한 화학전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서독에만 기형아가 나타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호주의 산부인과 전문의 William McBride는 탈리도마이드가 임부의 구토증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고 처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처방한 임부에서 기형아의 출산을 직접 목격하고, 1961년 4월 영국에 있는 Distillers 본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3탈리도마이드가 기형의 원인이 확실하다고 강조했지만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지하지는 않았다. Distillers는 영연방 시장에 탈리도마이드 판매권을 획득한 영국의 제약회사였다.
당시의 상황을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기형의 발생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과학자들은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기형발생을 다양한 동물에게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동물실험에서 탈리도마이드와 관련된 어떠한 문제도 나타나지 않자, 탈리도마이드의 사용은 다시 허가되었다. 동물실험으로 인해 기형 발생 물질이 함유된 약품의 리콜은 당연히 지연되었다." 4
하지만 한편에서는 동물실험이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음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와전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뤼넨탈사는 임신한 동물에 탈리도마이드를 투여한 실험을 수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탈리도마이드가 태아 기형의 원인으로 의심되어 시장에서 철수된 후 동물실험을 시작하여 불과 5개월 만에 태아에 발육 이상이 관찰된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과학자들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 6

그뤼넨탈사는 1960년 12월 British Medical Journal에 게재된 말초신경염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1961년 5월 탈리도마이드를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변경을 신청했다. 물론 판매는 중단하지 않았다. 같은 달에 영국의 Distiller 회사는 탈리도마이드의 포장에 들어있는 첨부문서에 신경손상에 대한 경고의 문구의 추가하였다. 하지만 정작 서독의 본사 그뤼넨탈사는 3개월이 지난 1961년 8월이 되어서야 추가하였다.
1960년 3월 영국의 Distillers 회사의 약리학자 G. B. Somers가 게재한 논문에 탈리도마이드가 독성이 낮은 것은 체내 흡수가 제한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7 생쥐에서 치사량을 찾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 그뤼넨탈사와는 약물의 흡수와 배설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 이런 차이점이 3개월이라는 시간의 차이로 나타났다고 해석하면 무리일까?
1961년 11월 15일 서독의 소아과 의사인 Lenz는 그뤼넨탈사에 임신 초기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부와 기형아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탈리도마이드를 시장에서 완전히 회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기형아를 출산한 46명의 여성과 정상적인 아이를 낳은 300 명의 여성을 확인하였더니, 기형아를 출산한 46명의 여성 중 41명은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반면 다른 그룹에서는 임신 4~9 주 동안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8 이 때 그뤼넨탈사는 이미 2500건의 신경 손상에 대한 보고서를 받았고, 900명의 의사와 약사로부터의 항의에 직면해 있었다.
결국 그뤼넨탈사는 1961년 11월 27일 시장에서 탈리도마이드의 철수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1961년 12월 16일 William Mcbride가 보낸 편지는 Lancet 잡지에 게재되었다. 탈리도마이드에 의하여 태아의 기형이 발생했음을 의사가 관찰한 최초의 보고서였다.
켈시 박사의 예측은 정확했다.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전 세계 46개국에서 약 1만 명의 기형아가 출산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서는 신약으로 허가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17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임의로 배포한 것이 원인이었다. 적어도 207명의 임부에게 투약 되었지만, 이들을 추적한 의사는 거의 없었다. 당시 미국의 임상시험은 이런 식으로 행해졌다. FDA의 허가 사항도 아니었고 또한 감시 대상도 아니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미국은 의약품의 부작용으로부터 더욱 안전한 나라가 되고 싶었다. 의약품의 시판 전에 더욱 강화된 비임상시험자료를 요구할 수 있고, 의약품의 시판 후 임상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의 보고를 의무화하는 Kefauver-Harris 개정법을 1962년 통과시켰다.
그뿐 아니었다. 의약품의 시판 전에 유효성을 입증하도록 하였다. 또한 FDA는 GMP 규정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 그리고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기준이 마련된 것이었다. <계속>
1. 최예웅, 탈리도마이드 한 알의 비극¸ 한겨레 (2013.02.12).
2. Fictional Thalidomide Victim Haunts Germans After 50 Years, www.DW.com (Dec. 11, 2007).
3. Bara Fintel, Athena T. Samaras, Edson Carias, THALIDOMIDE TRAGEDY: LESSONS FOR DRUG SAFETY AND REGULATION (Jul 28, 2009).
4. 김익현 옮김,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다른세상) 67 (2005).
5. Jack Botting, ed. Regina Botting, Animals and Medicine: The Contribution of Animal Experiments to the Control of Disease. Cambridge, UK: Open Book Publishers, 183-198 (2015).
6. Somers, G F., Thalidomide and congenital abnormalities. The Lancet 1 912 (1962).
7. Somers, G F., Pharmacological properties of thalidomide (α-phthalimido glutarimide), a new sedative hypnotic drug. Brit. J. Pharmacol. 15(1) 111-116 (1960).
8. Jerry Avorn, Learning about the Safety of Drugs — A Half-Century of Evolution Jerry Avorn, N Engl J Med 365:2151-2153 (Dec. 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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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이 늦고 조치가 취약했네요. 소개하신 참고문헌을 더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정성어린 기사 고맙습니다, 강신정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