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실마리는 "우리들 탓이었소" 자성하는 일 

의약품유통협회가 19일 국공립병원 의약품 입찰질서 난맥상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특히 제약바이오협회와 공조할 것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책 마련을 위해 유통협회는 오는 28일 회의를 개최한다. 

최근 충북대병원 의약품 입찰에서 대구지역 유통업체인 '대구부림약품'이 5개 그룹을, 서울지역 업체인 '뉴메디팜'이 2개 그룹을 낙찰 받는 것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부산지역을 시작으로 서울지역, 전북지역 및 강원지역 병원들의 의약품 입찰에서 지역 업체와 타 지역 업체들 간의 극심한 경쟁으로 갈등이 곪아터지기 직전이었다. 유통업계의 한 인사는 "제살 깎아먹기 식 경쟁으로 인해 업계의 체질이 악화되고 있다"며 심히 우려했다.

이번에도 문제의 키워드(key word)는 △지역월경(越境)과 △저가낙찰이다. 

1992년 5월25일, 당시 제약협회가 충북대 의약품 입찰에서 물의를 빚은 9곳의 도매유통업체들(대성약품, 신한약품, BJ약품, 대동약품, KY약품, 신진약품 등)에게 의약품 공급중단 조치를 단행한 사례가 있다. 

그때의 문제도 △사전계약 가로채기 저가낙찰과 △월경 등이었다. '사전계약 가로채기'란, A제약사와 B도매유통사가 A사의 C약품을 얼마의 가격으로 입찰하기로 서로 묵계(증거를 남기면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법에 저촉됨)를 했는데, 제3의 D유통사가 치고 들어가 그 C약품에 대해 A사와 B사의 묵계된 가격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해 낙찰을 받는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 간혹 제약사가 입찰시 도매유통사를 배후에서 조종하듯, 복수 이상의 유통사와 서로 다른 약가 묵계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유사한 문제는 그 전부터 지금까지 매년 입찰 때마다 끊임없이 부지기수로 발생돼 왔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업계가 공급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았으나 효과는 별무신통해, 이제 '의약품 입찰질서 과제'는 업계가 아예 달고 사는 고질병이 돼버렸다.

그 이유가 무얼까. 왜 긴 시간 치유되지 않는 고질병이 됐을까. 한참 때 늦은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이제까지의 지역월경과 저가낙찰이라는 문제 인식과 공급중단이라는 처방이, 과연 타당성과 정당성이 있는지 심도 있게 새삼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매년 헛바퀴만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첫째, 지역월경 문제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타당성과 정당성이 없다. 이제는 사고(思考)의 전환이 필요한(깨끗이 버려야 할) 문제 인식이라고 판단된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월경을 본사 주소기준으로 행정구역인 시(특별, 광역 등)·도(道) 지역을 벗어나 영업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대구지역 업체가 충북지역의 병원 입찰에 참여하면 업계가 주장하는 월경입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월경을 일반화시켜보면 현실은 딴판이다. 예컨대 서울 업체가 경기도인 분당이나 의정부 등에서 날마다 약품을 팔고, 부산지역 업체가 경상남도인 김해시나 양산시에 내 집처럼 들어가 영업을 한다. 전북지역 업체가 충남·대전 및 전남이나 광주 등을 누비고, 인천지역 업체가 경기도에서 거리낌 없이 장사를 한다. 서울지역 업체가 전국 방방곡곡에 지점을 개설해 영업을 한다. 이 모두가 당연한 일상사다. 업계 아무도 이를 들어 내놓고 탓하지 않는다. 탓할 거리가 못된다. 

그러면서 유독 병원 입찰에서만 월경 문제를 이슈(issue)로 삼는다. 이게 과연 타당한 생각일까. 업계가 1960~70년대식 발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혹자는 당국의 동내상권 보호 사례를 원용하며 '월경입찰 금지'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일반영업 월경 문제도 입찰 문제와 동일한 성격의 문제이므로 함께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동내상권은 글자 그대로 집근처 상권을 말한다. 행정구역 시·도의 범위가 집근처(동내) 범위 개념과 동일한가 묻고 싶다. 물론 업계가 어떠한 것을 논의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업계의 자유이고, 오죽 답답하고 어려우면 월경 문제까지 들고 나올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때문에 입찰월경을 죄목 삼아 업계(제약 및 도매유통)가 단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당연히 현재까지 의약품 입찰 월경 문제를 규정하는 법률 조항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둘째, 저가입찰 문제다. 이 문제는 매우 크고 아주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다.

그 원인은 '경쟁'과 '제도'에서 찾아진다. 경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공급자 입장이고 또 하나는 사용자(소비자) 입장이다.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경쟁은 죽을 맛이다. 사용자로부터 선택받지 않으면 업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고 기를 쓰며 경쟁에서 이기려고 한다. 입찰 경쟁에서 선택 받으려면 가격 할인은 필수 항목이 된다. 입찰의 첫째 목적이, 보다 낮은 가격의 제품을 얻기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사용자(수요자, 소비자) 입장은 공급자와는 정반대다. 공급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가격도 떨어지고 품질도 좋아지는 두 가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의약품 입찰에서 공급자들의 저가경쟁은 사용자로부터 선택받기 위한 처절한 생존 욕구의 발로라고 판단된다. 게다가 이를 관리해 줘야 할 정부까지 나서서 도리어 저가경쟁을 부채질하고 북돋우고 있다. 이점들이 저가낙찰 문제가 고질병이 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기획재정부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제10조제2항제1호 및 동법시행령 제42조제1항을 통해, 예정가격 이하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결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장려금의 지급에 관한 기준' 제17조(처방·조제 장려금 지급 등)를 통해, 요양기관(의료기관 및 약국)에 의약품 저가구매 장려금(인센티브)을 지급한다. 

또,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제8조제2항제11호 관련 [별표6]의 2호나목1)에 의거 국민건강보험법시행규칙 제12조에 따라 설립구분이 국립 또는 공립으로 신고된 요양기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실거래가 조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규정을 통해, 1원짜리 등 초저가 낙찰 품목이 계속 나오도록 적극 유도하고 있다.

감사원은 2012년 의약품 1원 낙찰의 중심에 섰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과 그 공단 소속 5곳의 보훈병원을 감사하고서도 1원 등 초저가낙찰을 초래케 한, 낙찰자 선정 방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거론하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35곳 도매유통업체들이 보훈의료공단 입찰에서 84개 품목에 대해 1원을 써내 낙찰을 받은 것에 대해 제약협회가 이들 품목들의 공급중단을 결의하자, 이를 저가 입찰을 방해한 사건으로 보고 2013년2월3일 제약협회를 검찰에 고발함과 아울러 과징금 5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를 보면, 공급중단 해법은 협회나 업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근이 되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공급중단 행위는 공정거래법 제19조(부당한 금지행위의 금지)제1항의 제1호와 제3호 및 동법 제26조(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 제1항에 위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의약품 입찰 시장 난맥상을 대표하는 두 키워드 중에서 '월경 문제'는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니라고 봐진다. 

하지만 '저가입찰 문제'는 월경문제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난해한 과제다. 경쟁과 선택의 문제, 수요자와 공급자의 문제, 법률상의 문제, 건보재정 안정 문제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앞서 언급한 사항 이외에도, △원내와 원외의 제품 단일코드 적용, △그룹별단가총액제 등도 저가투찰을 심히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3년 2월초 당시 제약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보훈병원 1원 낙찰 사건으로 과징금을 부과 받았을 때, 보건복지부가 해법으로 내세운 '적격심사(적정가) 낙찰제'도 의약품 저가낙찰에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년 7월27일 실시된 보라매병원 입찰에서 보건복지부의 대안인 적격심사 낙찰제가 적용됐지만 여전히 1~2 낙찰이 재현됐다.

기획재정부가 국가계약법을 통해 최저가입찰제를 기저 원칙으로 삼고 있고, 보건복지부가 저가구매인센티브제와 국공립병원 낙찰가격을 약가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업계의 공급중단 결정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단죄하고, 감사원이 1원 낙찰 등 초저가 낙찰에 대해 위법 사항이 아니라고 보고 방치하는 한, 유효한 저가낙찰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 게다가 입찰 국공립 병원 다수가, 보다 싼 값에 의약품을 구매하기 위해 '원내·원외 제품 코드 단일화 정책'과 '그룹별단가총액제' 전략을 계속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코앞으로 다가온 유통협회의 대책 회의에서 과연 어떤 묘책들이 강구될까. 유통협회가 심히 답답할 것 같다. 저가 낙찰 과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도매유통업계와 제약업계가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 측면이 절대적인데 말이다. 솔직히 낙찰자로 선택 받기 위해 저가입찰을 지금까지 밥 먹듯 해 왔지 않은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위한 결의에 찬 각오가 이번 회의에서 과연 표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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