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신약 접근성 향상 위한 정부의 역할이 ‘재정 3중 필터링’ 뿐?

"3중 필터링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가능할 수 있다면 필터를 더 만들고 싶다. 이번에 면역항암제에 대해서는 재정분담안을 제약사에 가져오도록 주문했는데, 어쨌든 좀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는 있을 듯 하다."(양윤석 보건복지부 신임 보험약제과장)

"보험평가를 하면서 각 단계마다 비용효과성을 안 볼 수는 없다. 또 심사평가원 평가 때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추정됐던 게 건보공단 단계에 넘어가서 (추정비용이) 더 크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이런 걸 그대로 놔둘 수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우리제도에서) 비용효과성을 감안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봐야 한다."(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지난 5월 전문기자협의회 소속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암질환심의위원회 재정개입 '3중 필터링' 지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됐다.

이로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임상적 유용성 뿐만 아니라, 재정 영향까지 보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업계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와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에서도 이미 재정 영향을 보는데, 암질심까지 재정 영향을 보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결국 암질심에 재정전문가가 5명이 포함되면서 사실상 업계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와 타그리소(오시머티닙)는 암질심 재정분석으로 인해 번번히 암질심 문턱을 넘지 못 하고 있다. 지난 14일 7차 회의를 가진 암질환심의위원회는 한국MSD가 제출한 키트루다 재정분담안을 다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여기에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 쪽에서 원하는 것은 현재 항암제 보험재정에 담을 수 있는 재정분담안을 제약사 쪽에서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전체 1조원 수준의 항암제 보험재정 내에서 앞으로 나올 고가 신약들이 모두 편입되는 것이 정부가 그리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그러나 면역항암제를 비롯해 향후 CAR-T 치료제를 비롯한 맞춤형 신약을 모두 현 보험재정으로 충당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암관리 기금 신설, 중증희귀질환치료제의 선등재 후평가 도입 등이 논의됐지만, 복지부는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의 국정감사 관련 질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결국 복지부는 앞으로 나올 고가 신약에 대해서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내에서, 재정분석만 충실히 보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앞서 양 과장과 최 사무관의 말대로 더 많은 필터링을 만들어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일도 필요하고, 정부가 신약의 비용효과성을 보지 않는 것도 직무유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정부와 제약사는 급여 등재를 위해, 일종의 '협상'을 하는 주체다. 서로가 제시할 수 있는 안을 내고,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협상 이후,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면 누구도 다시는 그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제약사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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