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마스크 4백억원 재고 사태의 뼈아픈 교훈
지오영과 백제약품의 애물단지로 변해버린 팔다 남은 공적마스크(정부 조달품) 재고 사태에 관심이 뜨겁다.
두 유통업체의 처치 곤란한 공적마스크 재고는 수량으로 4300여만 개, 금액으로 400여억 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감장에 오를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마스크 사려는 국민들이 약국 앞에 진치고 긴 줄을 늘어섰던 일과 정부가 공개 입찰을 하지 않고 특정 유통업체를 선택해 수의 계약을 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었던 일 등이 엊그제 같은데, 불과 4개월여(지난 2월말~7월11일)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숱한 공적마스크 재고로 인해 곤란에 빠진 지오영과 백제약품에 여기저기서 동정론이 일고 있다. '장사를 넘어 밤잠 설치면서까지 몸 바쳐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을 다했다는데, 마스크 문제가 풀렸다고 두 업체의 경영을 심히 압박하고 있는 공적마스크 재고에 대한 관심을 별로 두고 있지 않으니, 정부를 믿고 행동한 기업체에게 이게 할 짓인가?' 라는 시각이, 특히 국회와 전문 언론 및 약사사회 지도부에서 팽배하다.

국감에서 의원들이 공적마스크 관리와 관련해 질책할 때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앞으로 최선을 다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도, 두 유통업체의 재고는 총 공급량 6억8556만 개 중에서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애써 재고율이 얼마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총 공급량(7억 개, 6650억 원)을 강조하는 말속에, 어떠한 시사점이 내포된 것은 아닐까.
공적마스크 재고 사태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계약서 건이다.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온 지오영의 김진태 사장은, 김미애 의원(국민의 힘)의 계약서 작성 여부에 대한 질의에 "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왜 조달청과 두 유통업체는 수많은 공적마스크 거래를 하면서 '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았을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필히 하도록 정해져 있는데도 말이다.
국가계약법 제11조(계약서의 작성 및 계약의 성립)제1항을 보면,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 (즉) 1. 계약목적 2. 계약금액 3. 이행기간 4. 계약보증금 5. 위험부담 6. 지체상금 7. 그밖에 필요한 사항을 명백하게 기재한 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계약서의 작성을 생략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단서 조항의 계약서 작성을 생략할 수 있는 경우는, 국가계약법시행령 제49조로 규정돼 있다. △계약금액이 3천만원이하인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경매에 부치는 경우 △ 물품매각의 경우에 있어서 매수인이 즉시 대금을 납부하고 그 물품을 인수하는 경우 △ 각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에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 전기ㆍ가스ㆍ수도의 공급계약 등 성질상 계약서의 작성이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 뿐이다.
계약서 작성은 거래의 기본이다. 계약서는 파는 자와 사는 자 간에 서로 필요한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반 조건들을 문서로 근거(증빙자료)를 남겨, 미래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계약과 관련된 분쟁거리가 발생될 때, 법률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작성된다.
정부의 물품조달 창구인 조달청은 물론, 국내 의약품 도매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거대한 쌍벽인 지오영과 백제약품이, 위에 언급된 내용들을 모를 까닭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 유통회사는 제약사들과 쥴릭 등과 거래하면서 '계약서'와 그 속에 담긴 문구 및 글자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했을 테고,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달라고 건의까지 한 대표 유통회사들 아닌가.
그런데도, 조달청과 선택받은 두 유통업체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공적마스크를 7억 개 가까이나 팔고 샀다. 금액으로 따지면 무려 6700억 원이나 된다. 참 의아하다.
만약, 조달청과 두 유통회사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 중에 반품에 관한 조항을 넣었더라면, 지오영과 백제약품이 오늘의 공적마스크 재고 문제로 골치가 아픈 일은 결코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회사가 다급히 대한약사회에 공문을 보내 협조해 달라고 하소연하지 않아도 될 사항이었다. 국감장에서 식약처가 곤혹을 치르지 않아도 될 사항이었다.
두 유통회사가 조달청과 공적마스크를 거래했으면서도, 거래 당사자인 조달청에 직접 재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이유는 전적으로 거래 계약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두 유통회사가 공적마스크의 약국 공급업체로 낙점·선택 받은 입장에서, 조달청에 '계약서 쓰고 거래 합시다'라고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약품 도매유통업종의 직속 관리·감독 기관인 식약처에 계약서 문제를 거론했더라면, 돌파구가 열렸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조달청이 국가계약법시행령 제49조제5호 '전기ㆍ가스ㆍ수도의 공급계약 등 성질상 계약서의 작성이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 중, '~~ 등 성질상 계약서 작성이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를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자의로 행정 해석해 계약서 작성을 해태(懈怠)한 것이라면, 조달청의 유권해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에 대해 반드시 판례를 통해 대법원의 사법해석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공적마스크 재고 사태와 같은 유사한 사건이 다시 재발돼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이번 '지오영과 백제약품의 공적마스크 재고 사태'는 두 업체에 한정된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의약품 도매유통업계 전체의 과제라고 판단된다. 앞으로 유통업계의 어느 누구라도 이번과 같은 유사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의약품 도매유통업계에 교훈으로 남아 유통업계가 '거래계약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