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 | 일본 300년 장수기업의 오픈 마인드

일반의약품 판매로 먹고 살던 회사, 전문의약품 시대 맞자
돌연 R&D를 통한 신약 전문 제약회사로 180도 방향 틀어

출처=일본 오노약품 홈페이지
출처=일본 오노약품 홈페이지

2024년 매출 5000억엔(약 4조8000억원)에 도달한 일본 오노약품공업. 1717년 약의 거리로 불리는 오사카 도쇼마치에서 약종상으로 출발한 이 300년 기업은 자국에서 다나베파마, 다케다 등과 함께 가장 오래된 제약사로 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적일 것 같은 이 장수기업이 연구에서는 일본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회사로 손꼽힌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옵디보'(Opdivo)의 개발사라는 타이틀 뒤에는 60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30년 전부터 오노약품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 연구자들과 손잡고 신약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원 20명, 매출 43억엔에 불과했던 중소기업이 어떻게 노벨상 수상 연구를 신약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을까. 이 사례는 비슷한 규모와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 제약업계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건강보험이란 제도 변화로 찾아온 위기

체질 전환으로 대반전

오노약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제약사로 업종을 전환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했다. 1950년대에는 광고를 통해 일반의약품 사업을 확장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1961년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국민개보험'(国民皆保険) 체제가 확립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에 가입하면서 전문의약품 중심 회사는 성장한 반면 일반의약품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일반의약품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던 회사들은 정체 국면에 빠졌다.

10년 넘게 이끌어온 사업 포트폴리오가 흔들리는 순간 오노약품 역시 전문의약품으로의 전환을 고민했지만 내놓을 만한 제품이 없었고 신약 개발 경험도 거의 전무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오노약품에게 오픈 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수단이었다.

그나마 오노약품은 1956년부터 '노인병연구회'를 발족하며 전문의약품 연구에 관심을 보여왔다. 1965년 제9회 노인병연구회에 수네 베르그스트룀(Sune Bergström)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초청 연사로 참석했다. 그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PG)의 기초 구조와 인체 내 대사 메커니즘을 규명한 세계적 권위자였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지질대사를 개선하고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며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고 기관지 평활근도 확장합니다. 마이크로그램 단위의 극미량으로 매우 강력한 생리활성을 보입니다."

강연을 듣던 오노 유조 사장의 머릿속에서 영감이 번뜩였다. 회사가 1958년 발매한 콜레스테롤 대사개선제 '아테로'의 주성분 리놀레산이 체내에서 프로스타글란딘으로 변환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스타글란딘을 의약품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당시 오노약품은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매출 43억엔, 연구원 20명이 전부였고 연구진 역시 신약 개발 경험이 없었다. 오노 유조 사장은 회사의 명운을 걸고 '베팅'을 선택했다. 기존 길로 가다 굶어 죽느니, 밖에서라도 살 길을 찾겠다는 판단이었다.

오노약품은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를 위해 하야이시 오사무 교토대 교수와 협력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의 의약품화는 생소한 발상이었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돌파구는 미국에서 열렸다. 1968년 E.J. 코리(Elias James Corey) 하버드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연계에서 극미량으로 존재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을 합성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에 오노약품은 즉시 연구원을 하버드로 파견했다. 그 결과 오노약품은 세계 최초로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에 성공한 제약사가 됐다.

상업화 가능성을 확인한 회사는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의료용 의약품 연구를 위해 오사카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일반의약품 회사가 신약 개발사로 변신하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오노약품은 1999년까지 프로스타글란딘 계열 신약 12개를 출시했다. 혈관확장, 녹내장 등 적응증도 다양했다. 매출은 1000억엔대로 성장했고, 생존을 걱정하던 회사는 상위 제약사로 도약했다.

오노약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로스타글란딘 합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지질 화합물을 '화합물 라이브러리'로 축적했고, 특정 질환을 타깃으로 약을 설계하는 대신 보유 화합물에서 새로운 약효를 찾는 '화합물 오리엔트'(Compound Orient)라는 독자적 신약개발 방법론을 구축했다. 외부 기술을 단순히 들여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사의 핵심 역량으로 내재화한 것이다.

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던 베르그스트룀 교수는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코리 교수는 199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회사와 연구자 모두에게 퀀텀 점프였다.

남들이 주목않던 대학연구를 찜한 뒤 22년

항암제 시장 판도 바꾼 글로벌신약 '옵디보'

프로스타글란딘 성공 이후 오노약품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계속됐다. 그러던 1992년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 연구진은 면역세포 표면에서 'PD-1'이라는 분자를 발견했다. 이후 연구를 통해 PD-1이 면역세포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며 암세포가 이를 이용해 면역 공격을 회피한다는 기전이 밝혀졌다. 이 브레이크를 차단하면 면역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오노약품은 대형 제약사들이 주목하지 않던 시기에 PD-1의 가능성을 보고 혼조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공동 특허를 출원하고 신약 개발에 착수했지만, 개발은 장기화됐고 회의론도 커졌다. PD-1 억제제의 항암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오노약품은 한계를 인정하고 빅파마와의 협업을 선택했다. 2005년부터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계열사 메다렉스와 공동개발을 진행했고 이후 BMS가 메다렉스를 인수하면서 파트너십은 강화됐다. 2011년 일본·한국·대만을 제외한 글로벌 권리를 BMS에 부여했고, 2014년에는 해당 지역에서도 공동개발·상업화 계약을 확대했다.

2014년 7월 세계 최초 PD-1 억제제 '옵디보'가 일본에서 승인됐다. 이후 악성흑색종을 시작으로 폐암, 신장암, 위암, 간암, 대장암 등으로 적응증을 빠르게 넓혔다. 회사 매출은 2015년 1600억엔에서 2017년 2448억엔으로 52.7% 급증했고, 2024년에는 5027억엔으로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혼조 교수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기업이 깨어있는 이유

일본 의약품업계에서 오노약품의 성공은 단순한 행운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쉽게 하지 못하는' 일본 산업 문화 속에서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신약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연구가 실패할 경우 연구 책임자나 최고경영자(CEO)가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구조에서 라이선스 계약은 토씨 하나까지 검증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리스크를 감수한 결정이었다는 의미다.

오노약품의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 연구 초기 단계부터 협력한다는 점이다. 완성된 후보물질을 사오는 단순한 '라이선스 인'이 아니라 기초 연구 단계에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과 함께 출발한다. 프로스타글란딘 연구와 PD-1 연구 모두 발견 초기부터 오노약품이 참여했다. 리스크는 크지만 성공할 경우 핵심 특허와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협력 과정에서도 반드시 자사의 역량을 함께 축적한다는 점이다. 외부 아이디어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을 신약으로 완성하는 능력은 내부에 남긴다.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를 통해 화합물 라이브러리와 독자적 신약개발 방법론을 축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는 명확한 현실 인식과 분업이다. 오노약품은 옵디보를 자체 개발했지만 글로벌 상업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BMS와의 파트너십을 선택했다.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집착을 내려놓은 결과였다.

넷째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스템화다. 현재 오노약품은 국내외에서 300건에 가까운 연구·신약개발 제휴를 진행 중이다. 미국과 영국에 현지법인(ONO PHARMA USA, ONO PHARMA UK)을 설립해 대학, 연구기관, 바이오벤처를 발굴하는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경험을 쌓은 연구원들이 현지에 주재하며 유망 파트너를 찾는다. 조직 차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굴리는 구조다. 여기에 사내 벤처를 통해 초기 파이프라인을 발굴하려는 시도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했다.

이들의 60년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우리 개발 능력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자기 객관화다. 매출 5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이지만 연 매출 40조원이 넘는 다케다약품과 비교하면 연구개발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오노약품은 이미 프로스타글란딘 시기부터 한계를 받아들이고, 학계와 타 기업과의 협업으로 문제를 돌파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오노약품의 성장이 신약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포시가' 등 대형 품목을 코프로모션하며 매출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오픈 이노베이션 이후 기업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경영 체계는 과감히 바꿨다.

2008년부터 사장을 맡아 옵디보의 허가와 판매를 이끌었던 사가라 아키라 사장을 2024년 회장으로 올리는 동시에, 미국 현지법인 부사장을 지낸 다키노 도이치 전무를 새 사장으로 선임했다. 여기에 기존 집행임원인 츠지나카 사토히로 부사장을 더해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3인 공동대표 체제'를 도입했다.

이 같은 실험적 경영의 배경에는 옵디보의 위기가 있다. 옵디보의 특허는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만료된다. 불과 6년 뒤면 제네릭 경쟁이 본격화된다. 오노약품은 이를 대비해 이미 2017년부터 1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옵디보 비중을 줄이면서도 신약으로 글로벌에 직접 진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2026년부터는 옵디보의 직접 판매에도 나설 계획이다.

옵디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파이프라인 확충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2024년 6월 미국 바이오제약사 데시페라 파마슈티컬스를 인수해 소화관간질종양 치료제 '킨록'(Qinlock)과 건활막거대세포종양 치료제 '롬빔자'(Romvimza) 등 두 개의 글로벌 제품을 확보했다. 동시에 미국과 유럽에서의 자체 판매 역량도 갖췄다. 2025년 7월에는 미국·유럽 개발·판매 거점을 데시페라에 통합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대형 라이선스 계약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3월 미국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로부터 희귀 혈액질환 진성다혈증 치료제 '세파블러센'(sapablursen)의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계약금만 2억8000만달러(약 4140억원)에 달하며, 개발 및 매출 성과에 따라 최대 6억6000만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대형 거래다. 같은 해 6월에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IgA신증 등 B세포 매개 질환 치료제 '포베타시셉트'(Povetacicept)의 일본·한국 독점 개발·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기업과의 협업도 확대됐다. 2024년 10월 리가켐바이오와 'LCB97' 라이선스 계약 및 '콘쥬올' ADC 플랫폼 기반 공동 신약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그보다 앞선 3월에는 넥스아이의 항암 신약 후보물질 'NXI-101'을 도입했다. 품목 기준으로는 SK바이오팜의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 일본 상업화 계약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같은 확대로 2025년 7월 기준 오노약품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은 임상 1상부터 허가 신청 단계까지 총 33개다. 다이이찌산쿄(52개), 오츠카제약(32개)과 비교하면 절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업 규모가 더 큰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다만 공격적 투자는 단기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2024년 매출은 4868억엔으로 전년 대비 3.1%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97억엔, 순이익은 500억엔으로 각각 60%대 감소했다. 10년 만의 감소세다. 옵디보 약가 인하와 함께 공격적 투자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60년의 역사가 남긴 6개의 질문

그 끝은 '무엇을, 누구와, 얼마나'

오노약품은 일본 최고의 제약사는 아니다. 다케다, 아스텔라스, 에자이, 오츠카, 다이이찌산쿄 등에 비해 매출 규모는 작다. 그만큼 연구의 '머니게임'에서는 불리한 위치다. 옵디보 이후 자사 개발 혁신 신약이 아직 없다는 점에서 '원툴 회사'라는 비판도 받고 실험적인 시도와 고집이 센 회사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그럼에도 오노약품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제약업계가 '11.28 약가개편'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충분한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한국 제약업계 역시 글로벌 빅파마 대비 연구개발 자원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은 약가 인하 압박으로 성장이 제한되며, 자체 신약 개발과 글로벌 상업화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천억원대 기업조차 단일 기업으로 글로벌 경쟁에 나서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부 상위사나 도전적인 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기업 간 협력은 여전히 완성된 제품의 코프로모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오노약품처럼 연구 초기 단계에서 세계 최고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시작하고 그 성과를 자사의 신약 개발 역량으로 연결하는 사례는 드물다.

오노약품을 들여다보며 던질 첫 질문은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이다. 두 번째는 협력 과정에서 자사만의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있는지다. 무에서 유를 만든 기업조차 그 역량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오노약품이 단순한 중개자에 머물지 않은 이유는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를 통해 화합물 라이브러리와 독자적 신약개발 방법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렉라자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역시 제노스코-유한양행-얀센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각자의 역량이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질문은 우리만의 강점이 무엇인지다. 모달리티의 유행을 좇기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 회사가 ADC로 투자받았으니 우리도 해볼까'라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

네 번째는 10~20년을 내다볼 수 있는지다. 중견 제약사들 사이에서 '신약 얘기만 꺼내면 역적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분기 실적과 단기 성과 압박 때문이다. 그 결과 개량신약, 복합제, 비급여 중심의 전략으로 쏠린다. 오노약품은 프로스타글란딘 연구 시작부터 성과까지 30년, 옵디보 역시 22년이 걸렸다.

다섯 번째는 자기 파악이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파트너에게 맡길 것인지를 냉정하게 구분했기에 옵디보가 가능했다. 국내 제약사들이 모든 것을 직접 하려는 태도가 과연 옳은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 질문은 위기에서 얼마나 베팅할 수 있느냐다. 1960년대 오노약품은 안전한 길 대신 미지의 프로스타글란딘 연구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11.28 약가개편' 이후 한국 제약업계가 이 위기를 방어에만 쓸지, 도약의 계기로 삼을지는 결국 경영진의 결단에 달려 있다.

300년 기업, 연구원 20명에서 출발한 오노약품의 60년 오픈 이노베이션 여정은 한국 제약업계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며, 누구와 손잡을 것이고, 얼마나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