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송윤주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부대표
우리 아이 바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없어 아직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본 적이 없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가 손끝으로 세상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매일같이 "언젠가 우리 아이도 빛을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되뇌곤 한다. 희귀난치 소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이미 한국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이 아이에게 도달할 수 있는 제도와 임상, 예산이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1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첨단재생의료 환자 치료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입법과제 토론회'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희귀·난치 질환자에게 줄기세포·유전자치료 적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직접 지시한 흐름과 맞물려, 국회의 여야 의원들이 "기술의 속도를 환자의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었고, 이제 국가가 환자에게 도달하는 길을 열 차례다." 국회·정부와 산·학·연·병이 모여 한 방향으로 뜻을 모은 보기 드문 자리였다. 대통령의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 발언, 국회 여야의 초당적 공감대, 전문가들의 기술·임상 제안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복지부는 토론 과정에서 환자 중심 R&D 체계 전환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과기부와 생명연은 국가 단위 실증 플랫폼 구축 필요성에 공감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안과 교수는 "망막세포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치료 기회가 사라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토론회 직후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즉시 발의한 것을 보더라도 국회가 현장의 절박함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김현 의원과 외교통일위원회 김영배 의원도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재생의료진흥재단 박소라 원장은 미국의 BGTC, PCORI, n-Lorem 모델을 분석하며 한국형 환자 기반 임상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해외 혁신 모델을 참고하되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환자 수요 기반 R&D 생태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회와 정부, 전문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현장에서 한국이 이미 기술을 갖추고 있고 필요한 것은 '실행'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지부는 지난 수년간 첨단재생의료 기반을 묵묵히 쌓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가 실제 환자의 치료 기회로 이어지도록 뒷받침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환자 중심 임상 정책연구와 실증 기반 연계는 복지부의 후속 조치가 있어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첨단재생의료 기술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낸 과기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국은 유전자·세포치료 원천기술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높다. 이제는 기초연구의 성공을 임상과 치료로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완성해야 한다. R&BD 실증플랫폼과 한국형 임상 프로젝트, 이들의 혁신적 사업에서 밑거름이 될 정책연구 또는 설계를 위한 투자는 한국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생명과학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기반이다.
첨단재생의료는 한 아이의 치료 기회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세계적 수출 산업이 될 재생의료 산업에서 주도권을 가진 국가는 기술적 자립과 경제 안보를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미국·유럽·일본이 유전자·세포치료에 투자를 쏟아붓는 이유도 이것이 미래의 국가 패권을 좌우할 핵심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우리나라 특성에 맞는 해결책—실증 플랫폼과 환자 중심 R&D 구조—가 바로 지금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선제적 투자가 없다면 향후 발생할 국가적 비용이 훨씬 커질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희귀난치질환은 조기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평생 의료비와 사회적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영역이다. 현재 첨단기술 패권에서 우리나라가 추격자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적기에 투자하는 것이 국가가 부담해야 할 장기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 전문가들이 논의해온대로, 이 작은 연결점이 있어야 전체 정책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지금 국가적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가시적인 성과를 당길 수 있다. 환자와 연구자, 기업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고, 연구·임상·실증의 선순환 구조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재부에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기재부는 그동안 재정 건전성과 국가전략기술 투자를 균형 있게 이끌어 온 부처로 그 중심을 굳건히 지켜왔다. 그래서 이번 사업은 기재부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중심 임상·실증 체계를 열고 첨생법 개정의 취지를 현실화하며, 한국형 임상 플랫폼을 가동시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이 미래 생명과학 패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첨단재생의료는 나라 살림을 무겁게 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이 직접 체감할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투자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희귀난치 아이들에게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망막세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 아이들의 생명과 삶은 빠르게 흘러 간다. 우리는 매일 아이의 손을 잡고 희망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부모의 힘만으로는 이 길을 열 수 없다. 바름이가 언젠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희귀질환 아이들이 더 이상 시간을 잃지 않도록, 복지부·과기부·기재부가 함께 미래를 완성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삶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호소한다.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지켜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