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25일 희귀중증질환 치료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
“국내도 희귀·중증 치료제 근거개발·별도 재정 설계 필요”

해외 규제기관에서 희귀중증질환 신약의 신속허가를 통해 환자 접근성을 앞당겼지만 확증임상(3상임상)의 지연 및 실패로 이어지고 급여 결정의 부담을 키운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운영 방향이 조건부 근거개발(CED) 확대, 별도 기금 도입 검토, 급여기준 세분화 등이 제안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5일 서울성모병원에서 '희귀·중증 질환 치료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발제자인 심평원 약제성과평가실 이소영 실장은 "각국 규제기관은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에 대해 신속심사, 조건부 허가 등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신속한 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있다"며 "환자 치료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속가능한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큰 고가 신약에 대해 사후 근거를 축적하고 재평가하는 구조를 확립하는 동시에,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독립 재원을 마련해 환자 접근성과 재정 지속가능성을 함께 달성하자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 대상과 절차를 제도화하고 실사용자료(RWD)의 연계·수집·분석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조건부 근거개발과 성과평가를 상시 운영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초기 임상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면서 등재 이후 실사용 근거로 효과와 안전성을 재검증하는 방식이다.
이 실장에 따르면 실제 최근 10년간 미국 FDA에서 신속허가 등 별도 트랙으로 승인된 신약은 전체의 66%에 달했고, 국내에서도 2024년 신약 허가의 60% 이상이 희귀의약품이었다. 이 실장은 "희귀질환 치료제 비중이 예외가 아니라 이미 주류가 된 상황에서, 사후근거를 체계적으로 쌓아가는 장치가 없으면 재정과 안전성 관리 모두에 큰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건부 근거개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미국 FDA의 신속 허가를 받은 엘레비디스(Eleveidis) 유전자치료제가 언급됐다. 이 실장은 "해당 약제는 듀센 근이영양증 환자를 대상으로 대리지표인 단백질 발현 데이터를 근거로 승인됐지만, 확증임상시험에서는 주요 평가 지표 달성에 실패했고 사망 사례까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와 환자단체의 강한 요구로 허가가 유지됐으며, 이후 적응증까지 확대돼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 실장은 "이 사례가 신속허가가 반드시 환자의 장기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후 데이터 수집과 평가가 병행되지 않으면 환자 안전과 재정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재정 부담은 이미 통계로 확인된다. 국내 희귀질환 환자 수는 2020년 37만 명에서 2024년 47만 명으로 5년 사이 26% 증가했고, 같은 기간 요양급여 비용은 42% 늘었다. 건강보험 총 요양급여비에서 약제비 비중은 59.2%를 차지하며, 특히 희귀질환 치료제 약제비는 전체 약제비의 60%에 달한다.
또한 2023년에는 1인당 GDP(약 4300만 원)를 초과하는 연간 약가를 기록한 치료제가 44개, 총액 7447억 원 규모였고, 2024년에는 8844억 원으로 70% 증가했다. 1억 원 이상 초고가 약제를 투여받은 환자도 11개 품목에서 확인됐다.
이 실장은 또한 "영국 나이스(NICE)는 지난 20년간 조건부로 급여를 허용했던 183개 신약의 실제 환자 사용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 125만 QALY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며 "이는 기대했던 삶의 질 개선과 생명 연장이 실제로 달성되지 못했고, 다른 곳에 투입했다면 더 큰 편익을 얻었을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쓰였다는 의미다. 나이스는 이를 계기로 사후평가를 강화하고,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신약은 기금을 통해 조건부로만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별도의 재정 기금을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고가 희귀·중증 치료제를 일반 급여 재정과 분리해 별도 기금에서 지원하고, 재평가 결과에 따라 본 급여 편입이나 가격 조정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급여 재정의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하고, 제약사의 실사용자료 수집과 재평가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실장은 "희귀·중증 치료제가 주류가 된 현실에서 환자 접근성과 안전, 자원 분배의 공정성,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조건부 근거개발과 별도 기금, 급여기준 세분화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