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내과 교수

"BTK 억제제, 표준요법 자리잡아 …브루킨사 급여로 치료 환경 개선"
"서울 통원 고집할 필요 없어 …지역서도 충분히 좋은 결과 기대 가능"

만성림프구성백혈병(CLL)은 진행이 느린 희귀암으로, 경과 관찰(Watch-and-Wait)이 고려된다. 의료계에서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지역 거점병원에서의 치료와 장기 관찰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여기에 BTK 억제제 같은 경구 치료제의 급여 확대라는 요소가 더해져 치료 환경을 개선시키고 있다.

히트뉴스는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내과 교수를 만나 CLL 질환 특성부터 BTK 억제제 급여로 인한 국내 치료 환경 변화 그리고 혈액암 치료에 있어 지역 거점 병원의 역할 등을 들어봤다.

 

만성림프구성백혈병/소림프구성림프종은 생소한 혈액암입니다. 
어떤 질환이며, 두 질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내과 교수

"백혈병은 진행 속도에 따라 급성/만성으로, 세포의 종류에 따라 골수성/림프구성으로 나뉩니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유형은 급성골수성백혈병, 가장 드문 유형은 만성림프구성백혈병(CLL)입니다.

CLL과 소림프구성림프종(SLL)은 발생하는 세포가 림프구로 동일하지만, 골수에서 생기면 CLL, 림프절에서 생기면 SLL로 구분합니다. 임상적으로 두 병명을 구분하고 있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두 질환을 같은 범주로 보며 치료도 유사합니다. 주로 60~70대 고령층에서 많이 진단되며, 국내는 서양에 비해 50대 이하 젊은 환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무증상인 상태에서 진단되며, 질환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발열, 체중 감소, 야간 발한 등 소위 'B증상'과 피로감, 소양감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질환 병기에 따라 어떤 치료 여정을 거치게 되나요?

"혈액암은 암세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진단되기까지 보통 5년에서 8년 정도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환자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내다가 건강검진을 통해 진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CLL은 진단됐다고 해서 무조건 치료를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고 예후가 좋은 질환이기 때문에,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경과 관찰만 해도 10년 생존율이 일반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치료를 시작하는 기준은 B증상이나 소양감이 나타나는 지, 진단 당시 병기가 3기/4기인 경우 림프구 증식 속도(doubling index)가 증가하는 지 등을 고려합니다. 고형암과 달리 3기/4기라고해서 예후가 급격히 나타지는 것이 아니며, 17p 결손이나 TP53 변이, 미세잔존질환(MRD) 등 예후 인자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고위험군은 치료 후에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생존율이 낮습니다. 

만성 백혈병의 치료 목표는 다른 암종과 달리 완치보다는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병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는 지켜보다가, 활성화되면 치료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보니 암의 완전 관해(CR) 여부와 장기 생존율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어떻게 CLL 치료를 권고하고 있나요?

"미국암종합네트워크(NCCN)는 최근 나이 구분 없이 예후 인자를 기준으로 치료 방침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국내는 보험 급여 등의 문제로 여전히 과거 가이드라인에 기반해 65세를 기준으로 설정돼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1차 치료제는 65세 이상에서는 오비누투주맙+클로람부실(GC) 병용요법, 65세 미만에서는 리툭시맙+플루다라빈+시클로포스파미드(RFC) 병용요법이 사용돼 왔습니다. 이들은 독성이 크고 생존율도 떨어져 해외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치료제입니다.

최근에는 세포독성 항암제 대신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BTK 억제제는 기존 치료제 대비 생존 기간과 안전성 프로파일 측면에서 상당 부분 개선을 입증했습니다.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BTK 억제제로는 1세대 BTK 억제제 임브루비카(성분 이브루티닙)과 2세대 BTK 억제제 브루킨사(성분 자누브루티닙)가 있습니다. 

다만, 1세대 BTK 억제제는 출혈 위험, 심장 독성, 고혈압 등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반해 2세대 약제인 브루킨사는 심장 독성과 출혈 위험이 1세대에 비해 적고, 고혈압도 잘 나타나지 않아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가 높은 편입니다. 1세대 약제와의 직접 비교 연구(Head-to-Head)에서도 생존율 측면에서 우월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작년 6월 브루킨사가 CLL/SLL 1~2차 치료제로 급여됐습니다. 
치료 환경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브루킨사 제품 / 사진=비원메디슨
브루킨사 제품 / 사진=비원메디슨

"작년 브루킨사가 CLL/SLL뿐 아니라 외투세포림프종(MCL)과 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WM) 2차 치료에서도 급여가 적용돼 치료 옵션이 부족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다소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브루킨사가 다양한 혈액암 적응증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치료 환경에 숨통이 트였습니다. 실제로 환자들의 예후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혈액암 치료를 위해 많은 환자가 빅5 병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부산대병원과 같은 지역 거점 병원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CLL/SLL 치료가 가능한가요? 

출처 = 부산대병원
출처 = 부산대병원

"많은 환자들이 수도권 빅5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치료가 잘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CLL은 만성 질환처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하는 질환입니다. 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표준화되어 있어 부산 지역에서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면, 굳이 힘들게 서울을 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내에서 치료를 받아도 충분히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저희 병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부산대병원은 작년 10월 ‘지역완결형 글로벌 허브 메디컬센터 구축사업’을 기재부 제7차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습니다. 예타를 통과할 경우 약 7000억원의 예산이 확보될 예정인데, 향후 △노인전문질환센터 △어린이통합진료센터 △통합암케어센터 △재활의학센터 △국제진료센터 등 최신 의료센터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부산대병원은 이 중에서도 암센터와 혈액암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빅5 병원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역량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실제로 부산시민들도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9월 부산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부산대병원에 글로벌 허브 메디컬 센터가 설립되면 ‘서울보다 부산에서 치료받겠다’는 응답 비율이 약 81%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역 거점 병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치료를 앞둔 CLL 환자분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CLL은 불치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큰 문제가 없을 때는 경과만 관찰하며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혹, 의사가 ‘그냥 지켜보면 된다’고 말하면 혼란스러워하는 환자 분들이 있는데, 이는 CLL이 가진 특성일 뿐입니다. 

CLL은 예후가 좋은 질환입니다. 최근에는 브루킨사를 포함한 1~3세대 BTK 억제제가 등장했고, 다양한 치료 옵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CLL을 진단받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식이 조절과 운동 관리 등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충분히 원하는 수명만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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