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량 이사, 3일 '로슈 오픈 이노베이션' 소개
"모달리티-타깃 밸런스로 위험 완화해야"
"엄밀한 데이터 통한 매끄러운 소통 중요"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좋은 아이디어 만으로는 부족하고, 준비 없는 도전은 쉽게 문전박대를 당하기 마련이다.
정회량 로슈(Roche) 사업개발(BD) 이사는 3일 서울특별시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려대학교가 주최하고 서울바이오허브가 주관한 '2024 서울 바이오·의료 오픈 콜라보'에서 혁신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발표했다. 정 이사는 이 자리에서 한국 바이오텍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할 사항과 로슈가 협력 파트너를 선택하는 실절적 기준을 제시했다.
로슈는 127년 역사를 보유한 스위스 기반 글로벌 제약사로, 제넨텍(Genentech)을 인수하며 바이오텍 분야에서도 강력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매년 약 9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이 중 20조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정 이사는 로슈와 협력을 꿈꾸는 바이오텍들에게 철저한 준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로슈와의 딜(Deal)은 높은 기준을 만족해야만 가능하다"며 작년 로슈는 약 6500개의 협력 기회 가운데 1% 수준인 단 71건만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술수출(L/O) 등 계약 체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줬다는 게 정 이사의 설명이다. 바이오텍이 어떻게 하면 빅파마와 딜을 체결할 수 있을까? 그는 4가지 주요 전략을 소개했다.

리스크를 균형 있게 관리하기
정 이사는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리스크를 완화(de-risking)하지 못한다면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달리티(Modality, 치료 접근법)가 새로운 경우(novel)라면 검증된 타깃(Validated Target)과 결합시키고, 반대로 타깃이 새로운 경우라면 이미 특성화된 모달리티를 선택하는 것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제 BD를 시작해야 할까?
협력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협상을 시작하는 적절한 시점이다. 정 이사는 "치료 영역마다 협상을 시작할 최적의 시점이 다르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항암제 분야에서 항체약물접합체(ADC)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임상 단계에서 유망해 보였던 ADC가 임상에서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프리클리니컬 단계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전임상 데이터와 임상 결과 간의 전환(Translation)이 특히 어려운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이 또 다른 예로 제시됐다. 정 이사는 "알츠하이머는 생체검사(바이옵시)가 어렵기 때문에 동물 모델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기 힘들다"며 "임상 1상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효과를 확인할 수 없어 임상 2상까지 진행해야 유효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소요되는 분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최근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기반 세포주(Cell Line)와 같은 기술이 도입되며 전임상 단계에서 전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정 이사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전임상 데이터를 더 견고하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준비해야 충분할까?
협력 논의를 시작할 때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주요한 관심사로 거론됐다. 혁신을 위한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뢰와 소통이다.
정 이사는 "제약사 간 협력을 논의 과정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뢰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며 "로슈와 같은 제약사는 협력 논의 과정에서 데이터를 철저히 검토하며,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소통이 가능해야 거래가 급물살을 탄다"고 했다. 이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협상 의제와 관련된 질문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야 할까?
마지막으로 협력의 기회를 찾고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장소와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정 이사는 "국제 콘퍼런스와 같은 네트워크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며 "로컬 이벤트에서도 글로벌 제약사와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처럼 까다로운 과정 속에서 한국 바이오텍이 성공적으로 협력을 이끌어 낸 사례도 소개됐다. 진에딧(GenEdit, 대표 이근우)은 한국 연구자와 투자자가 창업한 바이오텍으로, 뛰어난 데이터로 로슈그룹의 제넨텍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 이사는 이와 관련 "한국 바이오텍들이 글로벌 파마의 높은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