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를 다니며 제일 자주 다짐했지만, 가장 지켜지지 않은 것은 '운동'이다. 미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말 운동을 시작하겠다' 선포하고, 강제로 헬스장 결제를 하고 나서야 겨우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됐다. '내 삶의 쉼표' 코너를 맡아 고민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여성축구동호회 'FC 나리'를 알게 됐다. 적막했던 기자실을 나서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밝은 웃음소리와 활기찬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깁스를 착용한 경영지원실 ESG관리부 이슬비 대리의 오른발이 눈길을 끌었다. '혹시~'라고 말하자 "맞아요, 축구하다 다쳤어요"라며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다리를 다쳐가면서도 퇴근 후 시간으로는 모자라 주말까지 축구를 한다는데, 주말엔 침대에서 요양하는 내가 문득 궁금해졌다. 축구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회장 빼곤 운동 경험 없어…
'해볼까?' 한마디에 만들어진 동호회
FC 나리의 '나리'는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따온 이름이다. 2021년 건보공단 내 친한 직원들끼리 울릉도에 놀러갔다가 '우리 축구나 해볼까?', '여기가 나리분지니까 이름은 FC 나리로 하자'는 가벼운 대화가 동호회를 만든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고작 4명으로 시작을 했는데, 각자 한두명씩 끌고 와 금방 10명으로 늘어났다.
많은 팀 스포츠 중에서 축구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홍보실 이가은 과장의 대학생때 경험 덕분이다. 그녀를 제외하고 모든 팀원들은 운동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접근하기 쉽고, 이 과장이 가르쳐줄 수 있는 종목이 축구였다.
이가은 과장은 "대학교 때 체육행사나 단과대학별로 대회를 했던 종목이 축구였는데, 대회가 없을 때도 우리끼리 공을 한번 차보자고 주체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었다"며 "무언가를 나서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끝까지 HIT>에 실린 '내 삶의 쉼표'를 봤을 때 '우리 동호회는 이만큼 대단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겸손한 말과 달리 이 과장의 두 눈엔 동호회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했다. 취미랑 놀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라인을 넘어가면 안 된다' 등의 간단한 규칙만 가지고 시작했지만, 팀원들의 열정은 현직 축구선수 못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퇴근 후와 주말 운동에는 외부에서 섭외한 코치에게 운동을 배우기 위해 거의 100% 참여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누구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맞았다. 친한 직원들과 즐기면서 꾸준히 운동한 결과 FC 나리는 동호회 창립 8개월 만에 '모두의 풋살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얻어낸 골이 우승을 안겨 줬다.
하지만 그 뒤로 다른 대회도 도전했는데, 이렇다 할 성적은 얻지 못했다. 큰 성공 뒤에 이어지는 아쉬운 결과들은 FC 나리를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왜 골이 들어가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고, 운동하는 방식도 바꾸면서 지속적으로 연습했다.
즐거움에 노력까지 더해져 지난 4월 '공주금강배 전국 풋살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이 과장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계단식으로 성장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랑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습하면서 다치는 순간도 정말 많다. 하도 많이 다치다보니 부상자가 깁스 디자인을 보고 고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쌓였단다. 깁스를 착용하면 옆에서 "내 깁스가 더 예쁜데?"라는 대결이 일어날 정도다.
동호회 매력은 '함께하는 즐거움'

FC 나리는 어느새 팀원이 너무 많아 신규회원을 받지 못하는 '인기쟁이' 동호회가 됐다. 직원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이 뭐냐 묻자 두 사람은 '공통 주제로 함께하는 즐거움'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슬비 대리는 "얼마 전에는 격려금도 받았다"고 말했다. 또래 직원들의 관심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상급자분들의 관심은 의외였다. 지금이야 TV 프로그램도 흥하고, 많이 익숙해졌지만 동호회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여자 축구'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 우승 소식이 사내에 알려지면서 실장님, 부장님이 먼저 운동은 잘 되는지, 도와줄 일은 없는지 물으며 다정하게 다가왔다.
이슬비 대리는 "동호회를 통해서 연령과 직급의 차이로 어렵다고 느꼈던 분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뿐만 아니라 복도를 지나가면서 마주쳤을 때도 응원을 건네준다"고 했다.
눈에 띄게 좋아진 건강도 열정적인 동호회 참여의 이유다. 이 대리는 "축구를 시작하고 인바디를 쟀을 때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근육량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신체의 변화는 물론 공을 차는 순간 쌓인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동호회가 만들어진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했다. 운동 후 친목 도모는 커녕 서로 마스크 벗은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팀원 모두가 공을 차기 위해 모였다. 그만큼 사무실에 갇혀 있던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들은 막 운동을 시작했거나 운동의 재미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함께하는 팀 스포츠 종목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이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옆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주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도 즐겁게 운동할 FC 나리
이 과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여성축구동호회가 있다고 알고 있어요. '건심전' 같은 친선전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재미있게 운동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FC 나리는 하반기에도 다양한 대회에 출전하며 취미생활을 즐길 예정이다. 인터뷰 내내 웃으며 축구 얘기를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운동은 절대 쉼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바뀌게 됐다. FC 나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는 운동 얘기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번 주말부터는 부지런히 일어나 헬스장에 출석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심평원의 여성축구 동호회도 소개 부탁드려요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