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국현장 속터지는 두 약사의 생생증언, 대명천지에 품절이라니
"A약사는 이제 밖에서도 핸드폰 알람을 기다리는 버릇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재고가 풀린 물품을 구매하는 모습은 유명 가수의 공연 티켓팅을 하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했다."
[끝까지HIT 10호] 약국에서 약을 못 구한다고? 약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약을 구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감기약을 구하기 어려웠던 일에서 시작해 엔데믹을 선언한 이후까지 의약품 품절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사무보조원을 포함해 4명 이상이 근무하는 이 약국. 이어지는 환자의 행렬 뒤 A약사는 품절 관련 질문에 '품절은 어쩔 수 없다'는 눈으로 조심히 말을 꺼냈다.
"코로나 때부터 해서 지금 몇 년 동안 이렇게 장기적으로 품절되는 경우는 처음이에요. 이전에도 품절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다국적 제약사 같은 경우에는 연간 성과를 달성하면(수입된 만큼 팔거나, 실제 사용량-약가 연동제로 인한 인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정도에 걸치면) 연말에 한 2주 정도 아예 수급을 안 해서 그런 경우는 있었는데 이렇게 길어지는 건 처음이에요. 그냥 일상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장기화된 품절약 문제로 인해 약사들의 업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보통 하루에 1~2번 약을 주문했던 것은 이미 옛날의 이야기. 그의 컴퓨터 화면에는 시도 때도 없이 의약품 구매 사이트 창이 켜져 있다. 품절된 의약품의 재고가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기본적으로 매일 품절약 재고가 들어왔는지 체크하는 루틴이 생겼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A약사는 이제 밖에서도 핸드폰 알람을 기다리는 버릇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재고가 풀린 물품을 구매하는 모습은 유명 가수의 공연 티켓팅을 하는 것과도 유사하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은 다른 약사도 유사하다. 하도 알람을 확인하고 온라인몰을 확인하다보니 이제 인터넷 쇼핑은 하기도 싫어졌다는 약사마저 있다.

또다른 품절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방문한 경기도 성남시의 B약국에는 비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 상자가 위태롭게 쌓여있었다. 언제 품절될지, 얼마 동안 약을 못 구할지 모르기 때문에 품절이 풀렸을 때 2~3개월 사용분을 미리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그는 설명한다.
하지만 구매량이 늘다보니 도저히 정리할 공간이 없는 상황. B약사는 결국 창고를 대여해 약을 보관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수급불안정으로 원래 구매하던 양보다 더 많이 구매할 때는 약국 사업자 입장에서 부담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소보다 많은 지출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에 창고를 빌리는 사례처럼 비용 부담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혹여 사용하지 못할 경우 100% 환불을 받을 가능성이 낮은 반품 문제까지 신경써야 한다. 그럼에도 B약사가 무리하며 약을 산 이유는 간단하다.
<끝까지HIT>가 찾아간 약국들은 어찌보면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기도 하다. 약사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조제에 필요한 단골약이 없어진 것은 이미 수 해를 넘기고 있다.
그리고 약사들은 방법을 찾았다, 늘 그래왔듯이.
계속 품절된 약이고 약국에 재고도 안 남았으면 어떤 방식으로 구할까가 궁금해졌다. 약사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약사 사이의 교품이다. 약사사회는 같은 행정구역 내 약사들간의 친분 혹은 같은 대학 출신의 동문을 통한 커뮤니티가 활발한 편이다.장부를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운 유통업체와의 거래 보다 약사들끼리의 직접 거래가 속이 편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말그대로 약국 사이의 '당근마켓'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거래명세서 등 청구불일치 문제를 피하려면 복잡하지만 이를 감수하고 이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택배비는 약사가 부담한다.
이마저도 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저희 약국이 안되니 다른 약국에서는 (조제가)될 거예요'라는 말을 전하는 것뿐이다. 그나마 건물 윗층 의원급 의료기관 원장과 사이가 좋은 A약사는 약을 구하지 못할 때 원장에게 '이 약이 없으니 처방을 내주지 않기를 혹은 대체를 부탁드린다'고 말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번화가나 일부 지역 등에서는 이런 말을 전할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한다.
A약사는 환자를 보내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은 감상을 이렇게 남긴다.
"줄거면 차라리 다주지 절반만 주면 뭐하는건데"

하지만 약사의 고민은 약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가령 특정 유통업체에 재고 수량이 5개가 있다고 해도 실제 주문량은 그에 못미치는 2개 선 등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또 품절 의약품 구매 수량을 1개로 제한한 후에 다른 의약품을 추가로 구매해 20만원을 채워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나마 따로 구매할 약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의 주거래 유통업체를 2곳 정도로 정해 두고 나머지 업체에는 없는 물건만 사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도대체 왜? 약이 왜 없는건데?
원인도 못찾으니 대안도 없다
약사는 물론 환자의 불신과 불만을 쌓고 있는 품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는 약업계 내에서도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약사들 역시 이번 사태의 시발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라고 인식한다.
먼저 제약사의 생산 문제가 첫 번째다. 이 역시 여러 개로 나눠지는 데 첫 번째는 단연 원료수급 문제다. <끝까지HIT>가 지난 1분기에 3년간 등록 혹은 갱신돼 새로 이름을 올린 식품의약품안전처 내 DMF(Drug Master File·원료의약품 등록 제도) 목록을 확인해 분석한 2021~2023년 전체 등록 건수 내 인도산 원료의약품은 같은 기간 2021년 382건, 2022년에는 223건, 2023건에는 229건으로 불과 2년 만에 37.7%에서 47.0%까지 올랐다. 문제는 2020년 이후 인도에서 해외로 나가는 전반적인 원료의약품의 공급량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 타격은 우리 제네릭에겐 직격탄이었다.
의약품 공급 문제에서 또 하나 불거지는 것은 약가와 생산단가 문제다. 원료의약품 공급이 어렵다보니 제2선이나 제3선의 원료의약품을 받아 사용하는 곳은 생산단가가 더욱 늘어난다. 이 경우 수익성이 낮은 제품들은 자연스럽게 생산을 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들 의약품 중 상당수는 보험상한금액이 낮은 기초약제일 가능성 즉 의도적 품절의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유통업체와 영업대행조직(CSO)이 국내 의약품 공급불균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유통업체의 경우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거래 관계가 깊은 약국에 어느 정도 물량을 추가 배정하거나 품절 소식 등을 알리는 것은 오랜 관행이지만 정작 이로 인해 나머지 약국은 품절 상황에서 더욱 큰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또 하나는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제약사의 영업 분리로 인한 과정이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영업사원들을 CSO로 전환한 회사가 늘어난 가운데 이들 제약사가 직접 CSO를 관리하거나 CSO에 유통업체에 품목출하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통업체에 압력을 행사하고 빠르게 현금화가 가능한 업체에 물건을 선행적으로 지급하는 과정이 곳곳에서 포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선 약사들은 소위 균등공급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슈도에페드린이나 아보카도-소야 추출물 등은 균등공급으로 어느 정도 약국의 재고 문제에 해결이 됐다고 하지만 필요한 약국이 더 많은 양을 필요할 경우에는 교품 외에는 사실상 구할 방법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정부와 대한약사회 등이 만든 민관협의체가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타는 목에 물방울 축이는 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결하려는 시도는 많다 그저 '한 걸음'이 부족할 뿐
그렇다면 의약품 품절 문제 이해관계자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일선 약사들은 그 대답으로 '대체조제'가 가능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말한다. 자주 처방되는 약과 동일한 성분명의 약을 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의 약이 품절될 경우 또 다른 제약사의 약을 구매할 수 있기에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재고 문제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현행법상 대체조제는 조제 이후 사후 통보가 가능하다. 즉 시행을 위한 기반은 이미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다만 약국가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실제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현실적으로 의료기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대체조제 불가'의 남발 가능성이다. 특정 회사의 제품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 한해 대체조제 불가를 활용하지만 대체가 가능한 수준의 약제 역시 의료기관으로부터 대체조제 불가 처리가 내려지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다만 이 역시 한 걸음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는 의료진과의 소통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비자의 인식 전환이다. 실제 최근 열린 한국보건사회약료학회에서 연자로 나섰던 박혜경 차의과학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제네릭과 오리지널이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이의 비중은 52% 수준에 불과했다. 그만큼 국민의 인식개선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채산성 문제나 마진 등의 이유로 제약사가 생산을 안 하는 제품 같은 경우에는 약가 인상 등을 통해 의약품의 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어 달라는 입장도 밝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부족했던 해열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의 경우 약가를 기존 50원에서 70원으로 올렸는데, 이후 약사사회 내에서도 공급이 매우 원활해졌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또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등을 통해 생산원가를 보전해 주고 사용을 장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정부도 의약품 품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도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기관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약사회, 대한의사협회,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의약품유통협회, 한국병원약사회 등 관련 단체가 포함된 의약품 수급불안정 대응 민ㆍ관협의체가 운영 중이다. 다만 수급과 관련한 사후 조치 및 감시 등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증산조건부 약가 인상, 대체의약품 처방 협조, 의약품 균등공급, 국가필수의약품 지정제도, 의약품 생산ㆍ수입ㆍ공급 중단 보고 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는 유통 및 공급 측면에서 수급불안정 의약품 사재기 현장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다만 약사사회를 잠재적 사재기의 피의자로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르포를 마치면서 의약품 품절 문제는 코로나19 이후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부, 관련 단체, 제약사에서 나서고 있지만 그에 비해 아직 수급 안정화까지는 시간 및 제도, 원료 수급 상황 등 과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이 문제를 '히트'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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