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곁 눈질 없이 달려온 78년... 3세경영 돌입

대한민국 최초 수액제 제약회사, 대한약품이 창업 3세 경영에 들어갔다. 故 이인실 선생이 도전과 모험을 자산 삼아 세우고, 아들 이윤우 회장(79)이 창업인의 뜻을 온몸으로 받들어 유지 발전시킨 회사의 미래는 이제 창업인의 손자 이승영 대표(49)가 디자인 하고 이끌어 간다. 대한약품은 1945년 10월 14일 서울 중구 명동 2가 97번지에서 앰플주사제 생산시설을 갖춘 '조선약품화학공업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당시 사회 인프라와 기술 수준에서 매우 난이도가 높았던 앰플주사제를 선택한 것은 약사였던 이인실 창업주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의학지식을 배우고 익히면서 필수의약품이자 기초의약품인 수액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기업 대한약품은 수액과 주사제를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긴 창업주의 정신을 꼿꼿하게 지켜온 전문기업이다. 수액 주사제 사업 말고 다른 쪽엔 한눈 한번 팔지 않고 70여년 간 수액·주사제를 안정적으로 생산, 공급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대한약품은 국민 건강의 버팀목이자, 우리나라 수액 주사제 발전 과정을 품고 있는 숨쉬는 박물관이라고 할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사업보고서로 대한약품을 들여다 보는 것도 심플하다. 수액 주사제 외 다른 품목은 거의 없다. 2022년 매출 1842억원 가운데 수액제품이 1411억원, 앰플 및 바이알제품이 401억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수액 주사제 전문회사로 경영활동에서 얻은 이익은 공장에 재투자되고 있다. 본사는 엘리베이터 없는 고색창연한 5층 건물인 반면 안산 생산공장은 첨단 생산시설이 반짝인다. 이것이대한약품의 컬러와 기업의 지향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창업주 이인실 선생은 1934년 경성약전을 4회로 졸업해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근무했다. 1935년 금강제약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가서 동료들과 같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병 매독균 치료제 살바르산(Salvarsan) 합성에 성공했다. 1938년 일이다. 그가 일한 금강제약소는 유한양행에 이어 한국인이 설립한 두 번째 제약회사였다.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1945년 창업한 조선약품화학공업사는 이인실 선생을 비롯해 10여명이 '포도당 주사제(오늘 날 링거와 다름)' 등을 생산하며 제약회사의 모습을 갖춰갔다. 1948년 미 군정이 끝나고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정해지자 회사 이름도 '대한약품화학공업사'로 변경했다. 한국전쟁은 대한약품에게도 위기였다. 모든 생산시설을 버려두고 충남 서천으로, 군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드디어 1952년 군산시 영화동에 뿌리를 내려 한국 최초의 수액제를 생산했다.

한국 최초의 수액제 전화당(포도당과 과당의 혼합물) 성분의 인베톤을 생산하기까지 난관은 끝이 없었다. 전쟁의 폐허로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어 필요한 것은 만들어 쓰던 시절이니 말이다. 막상 수액제를 만들려고 보니 수액을 담을 유리용기를 구할 길이 없었다. 이인실 선생은 좌절하는 대신 직접 수액용 유리병을 만들기로 했다. 서울공대 교수이자 친형인 故 이인욱 박사의 도움을 받아 1953년 '한국특수초자공업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산넘어 산이었다. 유리병 공장이 돌아가니 이번에는 부족한 원료가 문제로 떠올랐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를 위해 전화당(invert sugar)을 직접 만들었다. 1959년 끝내 인베톤을 생산했다. 경영인이자, 연구자였던 이인실 선생의 포기할 줄 모르는 도전정신은 우리나라 수액제 역사의 새 문을 열어 젖혔다. 이 시절 주요제품은 링겔주사액, 당링겔, 5% 포도당 주사, 멸균생리식염수, 주사용 증류수, 인베톤 등이었다.
벤처사업가 이인실 선생은 격무로 건강을 해친 탓에 1963년 4월 28일 군산에서 향년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피난처 군산에서 서울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들인 현 이윤우 회장이 1944년 생이니 성균관대학교 약대생 무렵이었다. 대한약품은 1968년 서울 방화동으로 돌아왔고, 창업 2세 이윤우는 1969년 7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이 늘어난 회사에 입사했다. 사업가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부친의 존재감만 느꼈지 회사에 대해, 사업과 경영에 대해 배운 것이 없었던 그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떠올렸다. 이같은 아버지와의 대화는 대한약품의 창업정신을 되새겨 주었고, 수액주사제에 천착하도록 이끌었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반면교사가 되었을까? 그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아들 이승영 현 대표이사를 일찌감치(2002년 3월) 입사시켜 생산현장부터 회사 구석구석을 배우며 통찰력을 얻도록 했다.
코스닥상장기업 대한약품은 78년 간 곁눈질 한번없이 제약회사 본연의 길을 걸어왔다. 학생이 학생답게 공부하는 것처럼 대한약품은 제약회사 다운 길을 걸었다. 내실경영으로 이익이 남으면, 생산시설 업그레이드가 R&D가 되는 수액주사제 공장을 효율화하는데 투자했다. 2022년만해도 매출 1842억원에 영업이익 329억원, 순이익 249억원을 시현했다. 결코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기업의 면모를 갖춘 곳이 바로 대한약품이다. 5월 1일 기준으로 국내 퇴장방지약 627개 가운데 포도당주사액을 비롯해 92개가 대한약품 품목이다. 저가 필수의약품 퇴출방지와 생산 장려를 위해 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퇴장방지의약품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필수의약품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故 이인실 창업자의 정신과 맞닿는다.
대한약품은 JW중외제약, HK이노엔과 함께 우리나라 기초 수액제 부문 3대 회사 중 한 곳으로 우뚝 섰는데, 회사의 미래 모습은 이제 창업 3세 이승영 대표이사의 몫이 됐다. 이와 관련해 이윤우 회장은 "신임 대표가 자율적으로 경영적인 판단을 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새 대표가 1 순위를 수액, 2순위를 의약품, 의료기기, 디지컬헬스 등에 뒀으면 한다"면서 "대한약품의 정체성과 무관한 다른 사업으로 넘어가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표이사가 된 이래 매주 1~2회 생산시설을 점검차 방문했던 이윤우 회장은 "이제 이것도 줄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4월 대표이사 등기이전을 하며 "아버님이 세운 기업을 수성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믿음직한 아들 이승영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밀려왔다"고 이윤우 회장은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