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원희목이라는 인물'과 제약바이오산업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중압감이 큰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시원섭섭하겠다'는 주위의 인사에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30년 넘게 그의 일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보았던 입장에서 참으로 원희목 회장다운 반응이다 싶다. 1990년 서울시강남구약사회장을 시작으로 공적 업무를 시작한 이래 그는 ① 최초 직선제 대한약사회장 ② 제약산업 육성법을 제정한 국회의원 ③ 6년간 새 방향성 찾기를 모색한 제약바이오협회장 등의 직함을 달았다. 돌이켜 종합하자면, 그는 타이틀이 제공하는 권한과 명예보다 그 자리에 부여된 과업(課業)을 지독하게 열심히 수행하는데서 즐거움을 찾는 유형의 인물이다.

제약바이오협회장을 퇴임한 뒤 서울대학교 특임교수와 제약바이오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게 된것은 그의 서사에 있어 일대 패러다임 전환인데, 그는 "어떤 과업이 기다릴지 벌써 설렌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다가와 자신에게 의욕을 불어 넣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뜻을 모아 변화를 추구하게 될지 기대에 부풀었다고 했다. 연인을 기다리며 꽃을 들고 있는 수줍은 청년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그는 제약바이오협회장 임기를 나흘 가량 앞둔 23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총장 유홍림) 간 제약주권 확립 및 산학 협력, 우수 인재 양성, 연구 활성화 등 양 기관의 상생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비전을 높여 글로벌로 끌고 가고 싶은 그의 열정과 과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일하는 방식은 한결같다. 바닥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가 제시하는 목표란 '그저 피식 웃게 만드는 소품'처럼 안쓰러워 보이기 일쑤다. 현실과 목표간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닥 혹은 환경의 디폴트 값은 그가 제시했던 목표치에 근접해 있다는 점이다. 중과부적 상황에서 의약품 오남용 방지와 같은 대의명분을 앞세워 약사들의 미래의 문을 여는 의약분업을 해내겠다고 그가 설파하고 다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애초롭게 보았다. '할 수 있다'는 열의와 믿음으로 약사 사회 내부의 의견을 규합하고, 학자들과 시민단체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낡은 불판을 갈아치우던 그 만이 그 자신에게 겸손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존중해야 추진력이 꺼지지 않는다고 믿는 탓이다.

2017년 3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당시는 한국제약협회)에 취임해 그는 "제약산업은 국민산업"이라고 선언했다. 제네릭 비즈니스의 비중이 높은데다, 그의 나쁜 친구  리베이트가 만들어낸 이미지 등 산업을 둘러싼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선언은 뚱딴지처럼 들렸다. 2018년 1월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의 취업불승인 결정 논란에 자진사임했다가 이해 11월 복귀한 그는 인공지능(AI)신약개발지원센터 개소, 제약바이오산업 청년기자단 출범, 대한민국채용박람회 개최, 2020년 전통제약회사 주축의 오픈 이노베이션 드라이브, 미국 유럽 제약바이오기업 사절단 파견 등 명실상부한 발걸음을 차곡차곡 옮겨왔다.

그런가하면 미국 보스턴 캠브리지 이노베이션센터(CIC) 입주 기념식으로 오픈이노베이션과 글로벌 진출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고 산업사상 처음으로 첫 공동 출자한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을 출범시켰다. '제약산업은 국민산업'이라는 선언을, 코로나19시대를 관통하며 '제약주권 실현,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레벨업해 우리 사회에 제약산업의 역할과 소명을 소구했다. 그러면서 재미한인바이오산업협회(KABIC)와 업무협약 등 미국 현지 네트워크 강화에 힘을 썼다. 한국형 스위스 바젤론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미국보스턴 CIC 한국센터를 개소했다. 사회적 지지를 모색하면서 제약회사들이 글로벌로 건너가는데 필요한 정거장을 하나씩 만들었다. 원 회장은 풀을 찾아  양떼를 몰아가는 목동처럼,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목표로 지치지도, 길을 잃지도 않고 꾸준히 앞으로 갔다.            

그리하여 한 인물의 고군분투는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 원 회장이 점을 찍어놓은 목표점이나, 우리 모두 도달하고 싶어하는 목표점으로부터 아직 멀리 있다. 그러나 열패감보다 도전의식을, 기업들이 내수를 중시하면서도 글로벌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는 모습은 확연하다. 물론 모든 것을 그 혼자 했다는 것은 아니다. 원희목이라는 한 인물을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그의 삶의 태도와 정신을 제약바이오산업에 옮겨오고 싶어서였다. "삶은 느낌(자신감에 기반한 목표)이지, 상황(비루한 현실)이 아니다." 벅찬 목표를 설정해 놓고 차근차근 돌진해 마침내 성과를 내는 그의 태도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 전통제약기업들과 바이오벤처들이 높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달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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