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생산중단 후 갱신 미신청으로 품목 취하
글로벌 빅파마·항암치료 유행 등 밀려

국산신약 1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야심차게 발매됐지만 개점휴업 상태였던 SK케미칼의 '선플라주'가 결국 쓸쓸히 무대를 떠났다. 품목 유지를 위한 허가갱신 신청을 하지 않은, 사실상 자진 취하다.
더욱이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제품마저 생산하지 않았던 터라 퇴장은 이미 예정됐다지만 '신약 개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산업계에 던진 상징적 의미가 컸던 만큼 퇴장이 시사하는 의미 역시 커 보인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의약품 승인 현황을 보면 식약당국은 2023년 1월 1일부로 의약품 갱신신청을 하지 않은 253건의 의약품을 취하했다.
눈에 띄는 품목은 단연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다. 1999년 허가받은 위암 치료제로 10년의 개발기간과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인 연구개발비 81억원이 투입됐다. 이같은 수식어보다 업계에서는 '국산 신약 1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SK케미칼과 SK제약은 1990년 5월 이른바 '제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 개발에 돌입했다. 지금도 항암치료에 쓰이던 백금착체 항암제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시스플라틴을 대체하면서도 시스플라틴의 단점 중 하나인 독성 문제를 해결하는 약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SK케미칼은 120여개 신약후보물질을 선정해 1993년 국산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임상까지 진행했다. 특히 2상 시험 결과 항암효과는 시스플라틴과 동등 혹은 이상 효과를 보인 반면 부작용은 더욱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며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신약이라는 이름을 거머쥐었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등으로 어려웠던 상황에서 제약업계가 그동안 개발하지 못한 신약을 개발하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서 대한민국신약개발상을 받는가 하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우리나라 신약의 큰 형님'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매출은 아쉬웠다. 시장 내 경쟁자가 다수인 상황에서 임상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성을 입증하는 품목이 많았던 데다가 2000년 초반 이른바 '표적항암제'가 등장하며 항암치료의 유행이 바뀐 탓도 컸다.
결국 SK케미칼은 2009년경 선플라주의 생산을 멈췄다. 타이틀만 남은 신약이 되고 만 셈이다.
문제는 2018년부터 시행된 의약품 품목허가 갱신제였다. 품목을 허가받은 채 5년간 생산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제품을 유효기간 만료로 취하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선플라주 역시 취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선플라의 품목 유효기간은 지난해 말. 갱신을 위해서는 지난해 6월 말까지 자료를 제출해야 했지만 6월 30일까지 갱신신청은 없었고 품목은 자연스레 취하된 것이다.
이로써 선플라는 HK이노엔(당시 CJ제일제당)의 신약 7호 '슈도박신주'가 2009년 자진 취하된 이해 2012년 동화약품의 '밀리칸주', 2020년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 그리고 연골세포 이슈로 허가취소된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에 이어 다섯 번째로 취하된 국산 신약이 됐다.
국산 신약 1호라는 명예에도 결국 시장성을 이유로 사라진 선플라의 경우 그만큼 상징성이 있었던 탓에 사실상의 자진 취하인 이번 조치가 가지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