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바이오산업 자국화와 신약 R&D 적정 보상
감사원장 출신인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6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제네릭 의약품 급여로 8조원 이상 지출한만큼 (약가를) 20%를 인하한다면 약 1조6000억원의 재정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약가인하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러자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바로 전날 취임한 조규홍 장관은 "제네릭 약가 인하는 건보재정 절감 외 국민 의료비 지출 부담을 줄인다는 면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단계적 조정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최 의원이 사칙연산으로 도출한 결과 값을 근거로 약가 인하 문제를 제기한데 대해,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단계적이라는 포장지로 둘둘말은 약가 인하 욕망을 드러냈다. 꽃밭 생태계는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면서 꽃송이만 탓하는 정책 관계자들의 말과 정책 앞에서 제약산업계는 늘 복장이 터진다. 최 의원 지적대로 1조원 이상 재정을 절감하면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 의료비 지출(환자부담금) 면에서는 좋겠지만, 상대적으로 직접적 이익감소를 겪는 제약기업들에게는 재앙이다.
모든 정책들은 이해 혹은 규제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고차방정식이며, 약가제도나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제네릭의약품의 약값이 높다'는 문제는 제약산업과 산업을 둘러싼 환경, 국내 기업들의 총체적 역량을 도외시한 채 건강보험재정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에 방점을 찍으면 필연코 산업을 쥐어짜는 무모한 정책들(예컨대 일괄약가인하 같은)이 나와서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는데도, 정치인이든 정책관계자든 이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것은 다른이의 몫이라 여길 따름이다.

수입국 전략 약가정책 아래 신약강국은 어불성설
또 다른이들이 신성장 산업, 글로벌 블록버스터 몇 개, 세계 30위권 제약회사 몇 곳 등 제약강국, 신약강국을 향한 높은 구호를 외치지만, 대세가 약가인하라서 기업의 신약개발 R&D 가치를 적정하게 보장하지 않는 오래된 모순이 방치되고 있다. '경제성평가라는 도구'를 마치 사냥개처럼 앞세운 건강보험급여 당국은 약가를 깎는 일만 지고지순하게 여기는지라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이처럼 엇갈리는 정책 방향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대상은 국내 제약회사들이 개발한 소위 '국내신약 혹은 국산신약'들이다.
약가를 깎는데 몰두하다시피하는 정부 정책들이란 게 거의 모두 '수입국 전략'이라는 운영체계(OS) 위에서 구동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이다. 수입국 전략이란, 글로벌 빅파마의 혁신 의약품을 가급적 싸게 들여오려는 것으로, 환자를 품은 정부가 사실상 을의 입장이 돼 외국 신약 가격을 충분히 깎지 못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재정부담을 국내신약, 개량신약, 제네릭의약품 가격을 쥐어짜 벌충하는 개념이다. 이 시스템 아래서 국내신약은 제네릭 취급을 당하기 일쑤여서 제약회사 CEO들에게 '신약개발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연간 수억원씩하는 글로벌 빅파마의 신약 도입은 환자를 위해 다행스럽지만 신약강국, 제약강국의 꿈을 키우고 있는 제약바이오산업계에는 오금 저리는 일이다. 큰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어린나무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빅파마 신약에 최적화된 국내 약가 정책 아래서라면 국내 신약의 활로는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 임상적 유용성 같은 잣대를 들이댈수록 국내 제약기업들의 신약개발 노력은 의미를 잃게 된다. 기술 진보와 혁신을 적정히 보상하지 않으면 R&D 선순환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미국의 제약바이오 자국화, 우리는 무엇을 하지?
제약산업계의 국내 기업 개발 신약 등에 대한 적정가치 보상 요구와 관련해 현행 시스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통상과 재정, 모범생론에 기반한 두 가지 입바른 소리를 한다. 통상문제에 기반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는 논리다. 만약 100개 신약이 급여등재됐는데 그 중 99개가 빅파마 것, 나머지 1개가 국내 기업 것일 때 국내 기업 하나 살리자고 재정을 더 들일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다. 다음은 국내기업도 글로벌 빅파마처럼 FDA서 혁신신약을 승인받으면 되지 않냐는 주장인데, 얄밉지만 장기적으로 맞는 말이다. 다만,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꽃등심 맛있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R&D를 통해 신약 가능성을 높인 기업들에게 지금당장 그렇게 하라기엔 매몰찬 이야기다.
대한민국이 제약바이오(바이오헬스)를 신성장산업으로 선정, 육성하려한다면 명확한 방향성이 필수다. 기술의 혁신을 철저히 보상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이 환경 아래서 국내 전통기업들의 R&D 역량이 높아지고,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이 종종 나올 때라야 최재형 의원의 소원대로 제네릭의약품 가격도 낮출 여력도 생긴다. 혁신신약이 많은 미국이나 독일같은 경우 신약에 대해 제약사가 원하는 만큼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R&D 성공의 보상이 겨우 이약 저약의 가중평균가로 결정되는 끝에 제네릭 가격으로 추락하는 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 R&D에 대한 모욕이다. 기술혁신 R&D를 어떻게 보상할지 논의가 시작해야 한다.
K문화 콘텐츠가 비약적 발전을 한것처럼 국내 제약기업들의 신약 R&D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보령제약 카나브, LG화학 제미글로, HK이노엔 케이캡, 대웅제약 펙수클루 등이 의사들의 신뢰를 받으며 상업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가하면 파머징 마켓 등을 중심으로 수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다만, 수출에서 성과를 내려면 국내서 신약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 적정한 약값을 받아야 성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통상문제라며 산업계의 요구를 늘 회피하며, 건보 재정 관점에서 국내 기업을 마른 수건 짜듯 하는 사이 미국은 바이오산업 자국화를 대놓고 꾀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공무원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신약강국 기조 아래 메가펀드 조성을 통한 글로벌 임상과 블록버스터를 되뇌이겠지만, 제일 근본적인 디폴트 값은 R&D는 약가로 보상하고, 이를 통해 기업들이 R&D에 재투자하도록 선순환 벨트를 구동시키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5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질의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드러냈다. "제약산업 육성법을 개정해 혁신형 제약기업 신약 약가 우대 규정을 마련했지만, 정부가 4년이 되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후속 입법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