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KSV Global 대표 스펜서 남 (spencer Nam)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B형 간염 가능성 있어"

히트뉴스가 작년 초 연재한 '글로벌 한국인'의 열독자 중 한명으로, 우물 안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그런 멋진 인터뷰이를 만날 기회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 내가 아닌 인터뷰이의 삶을 통해 또다른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니 말이다. 그러다 기회는 불현듯 찾아왔다. 보스턴에 있는 KSV Gloval의 대표 펀드매니저 스펜서 남(Spencer Nam)이 바이오USA 참석 차 샌디에이고에 온다는 것이다. 그와는 히트뉴스 기고를 통해, 사람보다 글과 먼저 만났다. 통찰력 있고, 위트를 겸비한 그리고 맛깔나는 글을 쓰는 그가 궁금했다. 샌디에이고에서 랜선이 아닌, 대면한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엉뚱하게도 나의 첫 마디는 "한국에 계셨었다면서요?"였다.
한국과 미국의 의료/바이오, e-커머스 등 고성장기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는 그는 1년에 2~3번 한국을 방문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가 서울 하늘 아래 있었다는 사실에 내적 친밀감은 한층 더해졌다.
"업무 때문에 한국에 있다가 보름일정으로 미국에 들어왔어요. 보스턴 CIC에 위치한 C&D 인큐베이션 센터의 개소식에도 참석했고, 바이오USA때문에 샌디에이고에 왔죠. 이 곳에서 일정이 마무리되면 저도 한국으로 가요. 현재 펀딩을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투자자를 만나야 하거든요."

대학원 진학, 계획과 어긋나면서 새로운 길 열려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고등학생은 어떻게 1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됐을까?
"고등학교때부터 저는 줄곧 물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 복수전공을 했고요. 그런데 대학원 진학이 계획과 어긋나면서 저에게 다른 길이 열린 것 같아요. 컨설팅 회사로 일단 취업을 했죠. 미국 컨설팅회사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보는데, 수학을 전공했으니 취업에 유리했겠죠. 그렇게 2년간 근무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MBA를 해야겠다 생각했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어요."
"MBA 후 다시 컨설팅회사에 갔는데, 경기불황을 맞닥뜨렸죠. 미국 인력시장(job market)에서는 학벌보다 전문성을 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대학원 전에도 컨설팅을 했고, 졸업 후에도 컨설팅을 했으니 전문성이 ‘0’에 가까웠죠. 그래서 월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겼어요."
의료/진단기기 애널리스트를 선택해 취업하면서 그는 헬스케어산업과 인연을 맺게 된다.
"사수에게 왜 나를 뽑았냐고 물었더니 이 분야 경험이 없어서 신선해서 선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닿은 인연으로 헬스케어 분야에서 10년간 애널리스트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자금난으로 회사가 문을 닫으면 스카우트 돼 회사를 옮기고, 또 옮기고 40대 중반이 되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HBS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운영하던 파괴적 혁신 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변신했다. 그리고는 SV인베스트먼트 박성호 대표를 만나게 된다.
"제 리포트가 인상적이었는지, 교수님이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2년 반정도 미국 의료산업에 대한 연구를 하다 박성호 대표를 만났죠. 대학원 졸업 즈음, VC에 관심이 있었지만 한국이나 미국 VC업계가 모두 폐쇄적이에요. 기회를 찾지 못하고 20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박 대표가 손을 내민거에요. VC는 스스로가 결정권을 갖고, 투자를 통해 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교류 뜸했지만, KABIC 활동하면서 한국바이오산업 빠르게 이해
생각해보면 남 대표는 어려서부터 주도적인 기질이 있었다. 고등학생때 학교에 좋아하는 물리학 클라스가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그는 교육원에 알아봐 클라스를 열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컨설팅 클럽을 만들었다는 일화에서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보스턴에서 KABIC(Korean American Bio Industry Council, 보스턴지역 첨단과학 및 전문가 단체)을 발족시킨 예도 있다.
"저는 사실 2011년까지 한국과 교류가 없었어요. 보스턴에서 몇몇 분들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신약개발 1세대 연구자이자 제노스코 대표이신 고종성 박사님이 그 중 한분이셨죠. 여럿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 미국에서도 한국 바이오산업이 부흥했으면 좋겠다면서 비영리 단체를 만들자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KABIC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죠. 그러면서 한국은 물론 한국 바이오산업에 대해 급속도로 이해하게 됐어요."
"SV인베스트먼트가 2017년 미국 진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제가 발탁됐어요. 언어, 문화, 산업에 대한 이해, 감정적 교류 등 다각도로 보고 판단했다고 하셨어요. 2017년 한국 정부로부터 일부 투자를 받고 SV에서도 투자해 KSV 1호 펀드를 만들었고, 2018년 펀드를 발족, 2019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네요."
지금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VC가 늘었지만, 7~8년 전만해도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때 미국에 와서 벌써 40년 가까이 살았죠. 제 경쟁력은 언어장벽이 없고, 양쪽 문화를 다 이해하는 거에요. 한국분들이 미국에 와서 부딪히는 것이 첫 번째 언어장벽이고 두번째 문화 장벽이에요. 영어를 곧 잘 하더라도 미국에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야 되는지,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니까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눈코 뜰 새가 없었다는 그는 2년간 무려 6곳에 투자를 결정했다. 하나의 투자 회사를 찾기 위해 100여곳을 살펴봐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바빴을지 눈에 선하다.
"코로나 시기가 힘든 것은 정신건강이 피폐해지기 때문이에요. 사람들과 직접 마주해 소통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던 일상이 제한되니까요. 저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라인으로 계속 미팅을 했어요. 대면미팅보다 3배는 많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사람을 보기가 싫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세상이 가능하구나라는 걸 경험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돌아서면 미팅, 미팅, 미팅...일과 후 넷플릭스로 소확행
미팅에 치였다는 그의 하루일과는 예상만큼 단조로웠지만 다행이 그 안에서 넷플릭스와 함께 소확행을 누리기도 했다.
"하루 일과라...예전에는 활동적이었는데, 지금은 단조로운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고, 랩탑보면서 하루 스케줄 정리하고, 그리고는 계속 미팅이에요. 저녁에 시간이 나면 독서를 하거나 넷플릭스를 봐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오징어 게임'도 봤어요. 저에게는 신문, 드라마, 예능 등이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에요. 사극을 볼 때는 포털에서 역사를 찾아보기도 하는데,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해요."
"여가시간에 하는 운동은 골프정도요? 미국은 카트보다는 18홀을 모두 걸어다니는데 여유를 즐기면서 자연에서 힐링하는 거죠. 아, 제가 독서도 좋아하는데 전공이라서 그런지 수학, 물리관련 책을 많이 읽어요. 주변에서 의아해하지만, 저는 그런 책들이 재미있어요. 교양서적이든, 대학원 교과서든 가리지 않아요. 다독하는 편이에요."
남 대표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한국인의 밤’에서 한국 바이오기업에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에, 3여년에 걸쳐 소진해야 하는 투자금 230조원이 쌓였고, 헬스케어산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투자금이 30~50조원이라고.
"'한국에 투자한다'라는 약속은 없지만, 한국 기업도 그 투자금에 근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맞아요. 1년간 그 돈을 집행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인데, 하지만 사람들이 상당히 까다로워요. 무슨 의미냐면, 네트워크로 인해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이 평행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죠. 관계보다는 회사가 가진 원천기술을 더 철저하고 강도높게 심사할 거라는 의미에요. 중국은 코로나19로 멘붕 상태잖아요. 여기서 발생한 공백을 한국이 메꿔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준비되어 있는, 미국 시장을 보고 상당기간 준비해왔던 회사들한테는 기회가 생긴 거에요."
인터뷰 말미에,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히트뉴스에 게재된 '한국 토양에서 모더나의 성공을 꿈꿀 수있나' 기사에서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분야에 투자하고 싶다면 B형간염 치료제를 건드려보라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견임을 전제 하에 말씀드리자면, C형 간염은 해결이 됐고, HIV도 만성이 됐어요. 영원한 숙제인 항암은 점점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죠. 보편적이지 않은 대장암, 췌장암 이런 암종을 공략해야 하는데 글로벌 벽이 높아요. 치매는 아직 정확히 진단할 수조차 없죠.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을 때,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B형 간염을 지목하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