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영주서 3년 약국하다 영진약품 선전부 입사
"약국 3년은 시행착오, 카피라이터 40년 성공적"

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 김태형(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김태윤 약사(서울대 약학대학 13회)가 지난 3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주최 '2021년 광고산업 발전 유공자 정부포상 전수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김태윤 광고문안가는 36년간 ㈜제일기획, ㈜웰콤 등에 재직하며 대한민국 광고계를 이끈 1세대 광고인으로서, 히트작과 수상경력을 통해 광고문안(카피)의 질적 성장 등 광고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인정 받았다.

김태윤 광고문안가(왼쪽)의 머리에서 나와 1986년 신문에 게재된 유한양행 중노년기 기능개선제 게론톤 광고.
김태윤 광고문안가(왼쪽)의 머리에서 나와 1986년 신문에 게재된 유한양행 중노년기 기능개선제 게론톤 광고.

김 광고문안가는 △유한킴벌리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엘지(LG)디오스냉장고 '자장자장' △하나은행 '손님의 기쁨-그 하나를 위하여' △참존화장품 '청개구리 심뽀' △대우자동차 레간자 '쉿! 소리가 차를 말한다' △신세계 '노래도 아니다(서태지)' △프로스펙스 '금(金)보다 빛나는 은(銀)' 등 수많은 흥행작과 광고제 수상 경력을 통해 우리 광고산업의 질적 성장과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삶의 궤적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제13회 동창회가 2019년 발간한 졸업 60주년 기념문집 '돌아보니 아름다워라' 207 페이지에서 213 페이지에 잘 담겨 있다.

"벼락부자가 되어 장남의 책임을 다하려고 약학대학 졸업한 후 3년간 병역을 마친 뒤 고향에서 약국을 열었지만, 장사 소질이 눈꼽만치도 없는 천진난만한 약사는 대형약국 두 곳의 위세 앞에 3년 만에 그 이름도 거룩한 제일약국의 간판을 내렸다"는 그는 "제약회사 사원모집 광고에서 본 선전부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 뭐 어때? 재밌지 않을까해서 구론산 바몬드로 유명해진 영진약품 선전부에 약대 졸업 6년만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돌아봤다.

40년 광고 카피라이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만일 그때 선전부가 아니고 영업부나 학술부 쪽으로 가게 됐다면 학계나 업계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빛나는 동문들 근처에도 못가고 좌절했을 겁니다. 나에게 카피라이터의 일이 적성에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맞아서 재미있게 일하고 그래서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약학대학 동문들 앞에서 자신이 약사(藥師)라는 사실을 여전히 자랑스러워 했다. "모름지기 약사의 길에서 성공하는 것이 최선인데, 나는 어쩌다 외도(外道)로 빠져, 말하자면 차선의 길에서 그나마 운좋게 성공한 藥師카피라이터입니다." 

영진약품에서 3년 쯤 다니다 나온 그는 개인사무실을 차리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서 의약품 광고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광고를 맡아 카피를 쓰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그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는 머리가 안 돌아가는 체질이라 날이면 날마다 정처없이 걸었고, 그러다보면 불쑥 아이디어가 나타났다"고 했다.

광고문안가, 카피라이터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카피라인터는 글쓰는 사람만은 아니며, 상품 판매를 위한 유니크한 아이디어(콘셉트)를 생각해 내서 그것을 단순 명쾌하게, 매력적인 말로(카피, 헤드라인, 캐치프레이즈)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요즘(2019년 무렵) 어떤 신문에서 기사의 제목으로 '老? NO'를 쓴 것을 봤는데, 이 김태형이 이 광고를 만든 것은 33년 전"이라며 자부심으로 드러내며 "동문들이여! 앞으로도 우리 계속 '老? NO' 합시다"고 축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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