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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국산 백신 임상 3상 범정부 차원 총력 지원'을 보며

"mRNA 백신만 있는 건 아니다. 백신 허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존 기술과 균형을 이뤄 다양한 백신 개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홍기종 건국대학교 교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임상 3상에 필요한 비용이 약 900억원이다. 올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687억원이다. 결국 정부 예산만으로는 한 기업만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묵현상 국가신약개발사업단 단장)
지난 16일 열린 '글로벌 백신 허브화 전략'을 주제로 열린 헬스케어 미래 포럼에서 발표자와 연자로 나선 묵현상 단장과 홍기종 교수의 발언은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에 있어 되짚어 생각해 볼 만한 발언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든 기업은 △SK바이오사이언스(임상 1/2상) △유바이오로직스(임상 1/2상) △제넥신(임상 1/2a상) △진원생명과학(임상 1상) △셀리드(임상 1/2a상)이다. 이들 중 몇몇 기업은 올해 안으로 임상 3상을 완료하고, 규제당국으로부터 승인을 계획 중이다.

이들 기업이 임상 3상을 완료하기 위해선 3상 임상 설계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이다. 특히 SK바이오사이언스를 제외하면 이들 기업은 자체적으로 임상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임상 3상을 앞두고 있는 제넥신은 임상 비용 확보를 위해 상장법인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한 공식발표는 30일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기업설명회(IR)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백신 임상지원을 위해서 올해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은 687억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5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임상 3상의 경우에도 임상시험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예산 확보도 추진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예산 확보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백신 개발 연구자는 "현재 배정된 예산을 모든 (별다른 평가 과정 없이) 기업들에게 동등하게 나눠준다면 백신 상용화 가능성은 더 낮아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물론 정부도 특정 기업에 예산을 분배함에 있어 고민이 있겠으나, 질병관리청 등 정부 기관이 컨트롤 타워가 돼 기업의 임상자료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한 뒤 예산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과학기술정책정보 서비스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보다 앞서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과 유럽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상을 위한 예산 지원을 발빠르게 했다.
미국 정부는 국립보건원(NIH),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식품의약국(FDA)을 중심으로 백신을 비롯해 치료제와 진단기기 개발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 위해 '초고속작전(OWS)'을 발표해 대규모 자본을 지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산 규모를 살펴보면 미국의 OWS 혜택을 받은 백신은 △사노피·GSK 21억달러(약 2조3000억원) △노바백스 16억달러(약 1조8000억원) △모더나 15억3000만달러(약 1조 7000억원) △아스트라제네카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 △얀센 10억달러(약1조1000억원)다.
이러한 예산 지원뿐만 아니라 NIH는 신하 재단과 함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유망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도 하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코로나19 초기부터 백신 개발을 위한 백신태스크포스(VTF)를 구성해 중국에서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공개하자 마자 백신 개발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국립보건연구원(NIHR)과 영국연구혁신기구(UKRI)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개발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초기 2000만 파운드(약313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초기 1050만 파운드를 투자한 뒤, 임상이 성공할 때마다 100만회분의 대량 백신 생산이 가능하도록 제조 과정까지 추가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국의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백신 개발 기업에도 활발히 예산 지원을 하는 것으로 봤을 때, 향후 국내 기업도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역량도 갖춰야 할 것이다.
올해 배정된 687억원 예산으로 과연 정부는 국내 백신 개발 기업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심도있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정부의 예산을 마중물로 과연 기업들이 상용화 할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최근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로 주목도가 높은 mRNA 백신도 있지만, 여전히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조합단백질 백신 생산 역량을 갖춘 우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번 정부 보도자료에 기존에 우리가 갖춘 재조합 백신 기술력과 생산 역량에 대한 비전 제시는 없다는 것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