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아세트아미노펜 약국에 문의하라, 왜 말을 놓쳤나

정부 관계자 입에서 직접 나온 '백신 접종 후 열 반응 때 타이레놀 복용' 발언이 일순간 약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타이레놀을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늘어나며 품절ㆍ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약사와 소비자 사이에 불필요한 신경전을 유발했다. 급기야 정부는 존슨앤드존슨을 재촉해 내년 비축 물량 500만개를 약국에 배급하도록 조치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마치 작년 약국별로 마스크를 배급하던 장면이 겹쳐진다.

마스크 현상과 다른 것은 국내 70개 제약회사들이 생산해 보관하고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이 물류창고에 차고 넘치는데도 타이레놀만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코로나19 방역 일선에서 국민들에게 절대적 신뢰를 안겨줬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말은 마치 '백신 접종 후 표적해열제 타이레놀'을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마스크 전쟁이 코로나19 감염과 전파를 막아보자는 '생산적 혼란'이었다면, 타이레놀 파동은 '소모적 현상'이라서 어이없고 허탈하다.

약국 못지않게 냉가슴을 앓고 있는 곳은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보유한 제약회사들이다. 제약회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렇게 시장의 판도를 왜곡, 고착화시키는 것이 말이되냐"며 "생각 같아서는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는지 보고, 고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타이레놀 브랜드 인지도가 높기는 했지만, 믿거라했던 정부관계자까지 얀센을 대리해 마케팅과 영업까지 한 꼴이되니 온몸에서 기운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약국은 가까이 있고, 타이레놀과 똑같은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은 많다.
약국은 가까이 있고, 타이레놀과 똑같은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은 많다.

정은경 청장의 광고 효과는 광고비로 환산할 때 얼마나 될까? 제약업계 광고 담당자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소박하게 잡아도 1000억원, 현실적으로 잡으면 2000억원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중파 방송, 종편, 일간신문 등의 신뢰도가 높은 콘텐츠인 뉴스에 PPL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다, 그 효과로 인해 온 국민이 타이레놀을 유일한 정답으로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타이레놀 인지를 넘어 약사에게 타이레놀을 지명하는 단계에 이르려면 100억~200억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광고 담당자들은 "공중파 등의 방송에 자주 노출됨으로써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떠올려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려면 연간 200억원 이상 최소 5년은 중단없이 해야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타이레놀처럼 일시에 소비자 마음 속에 각인되는 정도까지 이르려면 적어도 10년은 쉬지 않고 광고를 해야 비슷한 수준에 이르지 않겠냐고 짐작했다. "10년해도 타이레놀처럼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광고담당자는 "정말 약이 오른다"고 말했다.

믿었던 정은경 청장이 왜, 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고 타이레놀을 유일한 정답처럼 언급했는지, 왜 그의 머리속에 약국이 없었는지 의아하고 안타깝다. "백신 접종 받고 열이나면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말씀하세요"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정 청장이 국민들에게 브리핑이 일상화되면서 의료시스템 내 약국을 간과하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다 실수를 한 것인지, 평소 '그의 의료시스템안'에 약사와 약국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이 참에 나비의 날개짓 같은 공무원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지 모든 공무원이 타산지석 삼을 수 있는 기회라도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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