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거의 삼십여년전 런던의 번화가.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거리에 20대 여자아이들이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라 파트너였던 현지인에게 저런 일이 흔하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덧붙이며 그는 2차세계대전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는 묻지도 않는 설명을 했다. 그전에는 안그랬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겪었는데 저런 모습은 한번도 못봤다고 했더니 묘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기억이었다. 서두가 생뚱맞게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어느덧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시작한지 일년 반을 맞이하고 있다. (문득 3차세계대전이라는 용어를 생각했다가 유치한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휴전내지 종전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듯하다. 그런데 뭔가 변화가 감지된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무기가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같은 느낌이다.

코로나사태를 겪으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백신개발의 속도가 아니라 상상도 못했던 수준으로 올라가는 백신의 효과(efficacy)다. 초기에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휴먼 챌린지(human challenge: 사람에게 백신을 주사하고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하는 시험)가 제안될 정도로 다급했던 상황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개발단계에서 거쳐야 할 절차는 다 거치면서도 경탄할 정도로 빨리 속도를 내며 모든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매우 오랜기간동안 백신효과의 이상적인 목표는 50%로 설정되어 있었다. 3상 임상연구결과 새로 개발하는 백신의 접종을 완료한 집단에서 발생한 환자수가 대조약을 투여받은 집단에서 나온 환자수에 비해 절반이하로 감소하면 그 백신은 개발에 성공한 백신이고 효과적인 백신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백신의 개발에서는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백신축에도 못끼는 그런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 이런 새로운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몇 해전 50% 예방효과를 자랑하던 세계최초의 대상포진 생백신은 면역증강제를 성분에 넣은 재조합(recombinant)대상포진 백신이 효과 90%짜리 데이터를 제시하며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몇년 재미도 못보고 왕좌에서 내려앉았다. 

후발주자는 90% 효과를 앞세워 기존 50%짜리 효과의 생백신 접종자들에게 이걸로 다시 맞으라고 마케팅을 시작했다.(이 백신은 아직 국내에 시판이 되고 있지 않다) 당연한 결과로 미국시장의 판세는 매우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대체되었다. 단회접종 그리고 세계최초라는 프리미엄은 2회를 접종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두배의 효과라는 후발주자의 마케팅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력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이 지난후 속전속결로 진행된 코로나백신에서는 놀라운 결과가 계속 나타난 것이다. 회사들은 94, 95%짜리 그리고 90%대 효과가 있다는 데이터를 연이어 들고나와 발표했다. 이미 백신으로 지명도가 있는 회사들이 아니었다. 거의 벤처수준의 아니면 벤처를 막 벗어난 그런 회사들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효과가 아니라 면역원성( immunogenicity)인 항체생성률을 잘못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화항체가 90%이상 생긴게 아니라 방어효과가 진짜로 94, 95%였다. 기준을 훨씬 웃도는 62% 효과가 나온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를 높여보려고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아직 전세계적으로 코로나유행은 진행중이지만 백신의 접종률(coverage)이 올라가면서 코로나는 어쨌든 진정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에 대한 그간의 과정에 대한 복기가 총체적으로 진행되면서 백신에 대한 평가도 병행될 것이다.

새로운 코로나백신에서 발생하는 이상반응에 대한 이슈는 어떤 면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최근 코로나백신의 핵심기술을 이루고 있는 DNA, RNA백신은 오래전부터 항암제의 용도로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항암제개발과정에서는 부작용을 불가피하게 감수하는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용하는 과정에서 DDS, 용량, 부형제 등 많은 보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추측컨대 향후 백신업계는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각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격인 의료계, 소비자, 언론, 정부 등등은 모두 백신전문가가 된 상태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이상반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보관문제(-70`C)는 어떤 방법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가와 함께 기존에 쓰고 있는 다른 백신들의 효능은- real world data로는 50%에 못미칠 것 같은- 이 시대의 수준과 걸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코로나 백신 개발초기 어김없이 뛰어들었던 다국적회사들은 모두 백신개발에 실패를 했거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나마 화이자가 항종양분야에서는 상업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mRNA기술의 제품을 –70`C의 냉동보관 상태에서 유통시킬수 있는 방법을 밀어붙이면서, 어쩌면 어거지로 상업화를 시킨 기존 백신회사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과정에서 백신개발의 기술은 업그레이드되면서 시장의 판세는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이언스의 세계에서 싸움은 덩치로 하는게 아닌 듯 하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인가? 백신업계의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판도가 바뀌며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그 조짐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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