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신약 접근성 강화 방향 '원포인트'로 다뤄

김승희·박인숙 의원 주최...KCCA 주관
건강보험 약가제도에 지난해부터 '선등재후평가'라는 용어가 돌연 등장하더니 급기야 토론의 단독주제라는 상석까지 올랐다. 그만큼 신약 접근성 강화 방안으로 매우 '유혹적인' 주장인 것이다. '선등재후평가'가 세간에 이목을 끌면서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다는 시쳇말로 '원저자'로 회자되는 사람이나 단체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렇게 '원저자'가 많은 탓일까. '선등재후평가'로 부르지만 '동상이몽' 식으로 내용이 다른 주장과 논의가 뒤섞이는 양상이 올해 토론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과 같은 당 박인숙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KCCA)가 주관해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약 접근성 강화를 위한 토론회-선등재후평가를 중심으로' 주제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동철 중앙대약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항암신약 접근성 향상방안으로 '선등재후평가' 제도 도입을 본격 제안했다. 이 연구결과는 올해 종양내과학회 춘계 정기학술대회에서 서동철 교수 연구에 참여한 김요은 중대약대 연구교수가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었다. '선등재후평가'는 종양내과학회 뿐 아니라 같은 날 오후에 열린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에서도 토픽이 됐는데, 이번처럼 '선등재후평가'를 항암신약 접근성 향상을 위한 대안으로 '꼭' 집어 토론의제로 다룬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동철 교수가 이날 제시한 '선등재후평가' 모형은 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 평가이후 '특정가격'으로 선등재한 뒤, 후평가 절차인 비용효과성평가와 약가협상을 통해 최종 가격이 정해지면 '특정가격'과 차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특정가격' 선등재가 개입되는 것 이외에 다른 절차는 현 제도와 다르지 않다. 가등재 약가인 '특정가격'으로는 A7조정최저가 등을 주요하게 거론했다. 이런 방식은 환자단체연합회가 공개적으로 제안해온 '로직'과도 거의 흡사하다.
서동철 교수는 2007년 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등재된 18개 성분 34개 품목을 대상으로 '선등재후평가'를 적용했을 때 재정영향을 분석한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한국 등재가격(표시가격)과 A9(캐나다·호주 포함) 국가 약가, 각각의 사용량 등을 반영해 비교했더니 A7조정평균가와 A7조정최저가를 적용하면 연간 각각 1373억원, 87억원의 재정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서동철 교수는 "해외의 경우 선등재후평가, Cancer Drug Fund 등 다양한 신속 급여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제약사가 선등재 가격과 평가 차액을 환급하는 경우 이처럼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건강보험 재정 중립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환자들의 항암신약 접근성을 향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후평가 결과에 대한 제약사 수용여부와 공급 지속성 등 환자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기존 위험분담제 계약과 해외 사례에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후평가 이후 공급을 지속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추가하면 기존 환자들에게 공급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암, 빠르게 변하는 치료...느리게 변하는 제도'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한 이대호 울산의대 종양내과 교수는 "일부는 찬성이고 일부는 반대다. 고민해서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이대호 교수는 특히 "이미 등재된 의약품의 가격 등을 협상한다면 정부에 협상 능력이 생길 지 의문이다. 이른바 갑을관계가 뒤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좋은 의약품을 빨리 등재시켜야 한다는 건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특히 항암신약은 더 예민하다"고 했다. 이어 "전세계 제약시장에서 한국 점유을은 1.4% 수준이다. 이런 시장을 타깃으로 다국적제약사들이 따로 데이터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근거가 아직 부족한 신약들이 급여평가 과정에서 문제가 된다"고 했다.
윤구현 대표는 그러면서 "이 때 조건부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가 돈을 다 내는 상황에서 고민이 될 수 밖에 없고, 등재기간이 지연되면 환자가 피해를 본다.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을 높이거나 100/70, 100/50 등으로 등재시키면 정부도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중간지대로서 선등재후평가의 유의미성이나 본인부담차등제 활용을 언급한 것이다.
히트뉴스 편집국장 자격으로 기자도 이날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기자는 위험분담제도가 암환자의 신약 접근성 향상에 기여했지만 등재기간을 단축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RSA에 선등재후평가를 연계하면 등재기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할 수 있어서 재정과 접근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RSA 제도 취지를 완성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지지했다.
다만 선등재 시 환자보호조치 등에 대한 협상주체 문제, 사용량약가연동제 등 사후관리제도와 관계, 가등재 약가로 A7조정최저가 적용 시 경제성평가면제와 동일한 효과가 발생해 제약사가 후평가(후속 등재절차)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이럴 경우 임시약가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문제, 협상결렬 시 전액환급 또는 체결될 때까지 협상을 계속해야 할 지 여부 등을 해결해야 할 제한점으로 지적했다.
기자의 이런 평가는 임상전문가나 정부, 보험자 등이 고려하고 있는 임상적 유용성 측면의 '후평가'가 아닌 서동철 교수가 제안한 절차상의 '후평가(약제급여평가위/약가협상/건정심/고시)'를 염두에 둔 토론이었다.
역시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정부의 고민을 비교적 상세히 털어놨다. 그런데 내용상 서동철 교수나 환자단체연합회가 제안한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제한점을 내놔, 정부의 고민이 절차상의 '선등재후평가'가 아닌 등재된 의약품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 측면의 사후재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걸 암시했다.
곽명섭 과장은 이날 "'선등재후평가'를 도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계약주체는 건보공단이 돼야 한다. 등재기간 단축이 핵심이라면 심사평가원 단계에서 건보공단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 심사평가원과 건보공단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협상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A7조정최저가는 글쎄..."라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보호방안과 사후평가기준에 대해 공을 들여 말을 이어갔다.
그는 "계약이 불발됐을 때 기존환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RSA재계약, 리피오돌 등을 통해 계약서에 반영한 사례들이 있는 데 솔직히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어쨌든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앞으로는 쉽지 않을까 하겠지만 한 건 한 건이 엄청난 피 말리는 과정이다. 이 부분은 (선등재후평가를 도입한다고 가정하면 더 그렇지만) 지금도 고민스런 영역"이라고 했다.
또 "(급여적정성 등에 대한) 후평가로 갈 경우 평가기준을 어떻게 가져갈 지, 임상데이터를 어떻게 반영할 지 고민이 생긴다. 현재 건보공단에서 사후평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성과가 어떻게 나올 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곽명섭 과장은 건보공단이 주관했던 국민참여위원회 의견수렴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고가 신약은 등재되면 소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이에 대해 입장을 물었더니 적극적으로 급여화하라고 했다. 다만 기준을 엄격히 만들고 효과가 없으면 급여를 중지하거나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라고 했다. 앞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계속 수렴해 정책결정에 참고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태유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종양내과학회 이사장)는 "오늘 토론을 통해 선등재후평가 제도 도입을 위해 고려해야 할 고민거리가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암 환자들의 생명연장에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 중 하나가 '선등재후평가'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검토되길 바란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