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조차 확립되지 않은 희귀질환, 국내 신약이 나오길 기대하며

씨에스엘베링 후원 아래 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보고서 '침묵 속의 고통 :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희귀질환 인식 및 관리수준'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호주,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은 각기 다른 희귀질환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17년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2만명 미만 환자의 질환(약 1만명당 3.9건)을 희귀질환으로 정의한다. 이 밖에 호주는 1만명당 5건, 일본은 50만명 이하의 질환, 대만은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중국은 아직 데이터 부족으로 마땅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과학적 근거가 매우 중요한 보건의료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희귀'를 정의하는 기준조차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과연 제대로 된 기준조차 없는 이 분야에서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정책과 치료제 개발이 진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의 일환으로 희귀질환자를 위한 빅데이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부터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의 유전체, 임상정보 수집 대상인 환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에는 희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며, 올해는 희귀질환 환자 모집(5000명)과 선도사업(5000명)과 연계를 통해 총 1만 명의 임상정보 및 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과정을 보면, 지난 3월 제1차 추진위원회(송시영 위원장, 세브란스병원 교수)를 시작으로, 총 3차례 추진위원회를 통해 시범사업 계획 및 사업 추진체계 등을 결정했다.

서울대병원 등 16개 희귀질환 협력기관을 지정하고 희귀질환 전문위원회의 의견 수렴 등을 통해 희귀질환 환자 모집을 위한 준비를 했다. 참여 가능한 희귀질환 환자는 유전자 이상 및 유전자 관련 배경이 강력히 의심되는 희귀질환으로 판단되는 환자로, 전문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참여할 수 있다.

유전질환이 다수를 이루는 희귀질환에서 이러한 빅데이터 구축은 환자의 진단과 치료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 유전자를 타깃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신약개발에 뛰어드는데 유용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특히 정부 주도로 수집된 자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평하게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세계적으로 통일된 유병률 기준조차 없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구축된 빅데이터를 통해 모두가 신뢰할 만한 과학적 수준의 유병률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희귀질환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투영된 예측일 수 있다. 이러한 지나친 기대가 치료제 개발과 연계될 수 있다면, 공익적 사업이 수익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글로벌 제약산업 분석·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의 2026년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희귀의약품(orphan drug) 시장은 지난해 1270억달러(약 152조400억원)에서 2026년 2550억달러(약 305조2800억원)으로 두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제약회사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희귀의약품(orphan drug)로 지정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희귀의약품 분야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가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중 희귀질환 의약품으로 지정된 건수는 2015년 2건, 2016년 3건, 2017년 9건, 2018년 16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임상시험 승인·허가 기간 단축 △전문의약품 허가 신청비용 면제 △세금감면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히 기업들에게는 좋은 기회다.

국내 업계가 신약개발을 위한 전략은 다양하다. 현실적으로 대규모 임상 3상을 수행할 역량이 부족한 국내 기업은 대부분 초기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기술이전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작은 규모로 후기 임상을 진행할 수 있고, 다른 의약품보다 승인 기간인 짧은 희귀질환 분야에서 국내 기업이 후기 임상과 더 나아가 전 주기 신약개발을 도전해 '환자'와 접점을 만드는 신약개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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