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 방지보다 사후 방어에 머문 대응... '조직 문화 개선' 주력해야

2024년 9월 청주 식약처 청사에서 30대 청년 인턴 박 모 씨가 투신해 숨졌다. 박 씨 유족은 상사 A씨의 직장 내 괴롭힘과 사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A 씨와 식약처(대한민국)를 상대로 48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3일 선고에서 박 씨의 사망과 직장 내 괴롭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A씨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 사용자로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식약처 역시 A씨와 함께 1000만원을 유족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식약처의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며 "다만 식약처는 가해자의 사용자이기 때문에 불법행위로 박 씨에게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공무원에게 명백한 고의·과실이 있으면, 국가의 과실이 없더라도 바로 사용자 책임을 지라는 국가배상법 2조 취지에 따른 판결이다.
이로 인해 식약처에서는 이번 판결을 인턴 사망과 직장 내 괴롭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부정됐고, 조직 차원의 관리·감독 책임까지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인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이 법적 책임의 범위를 가렸다고 해서, 행정기관으로서 책무까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식약처를 오랫동안 출입해온 기자로서 식약처를 향해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2024년 9월부터 1심 판결이 있기까지 식약처는 내부의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것이다.
2024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식약처는 청년 인턴 사망 2개월 전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내부 직원이 생각하는 조직 문화(갑질 등)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조사에서 인턴 직원 80여명은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됐다는 점이 드러났다.
2024년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식약처의 조직 문화에 총제적인 문제가 있으며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면서 "식약처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인턴 사망 사건 이후 현재까지 재발 방지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식약처는 박 씨가 투신 전 후생관 정신건강의학과를 6차례 찾아 상담한 기록을 비공개했고, 이에 대해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식약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 공개가 어렵다"며 상담 기록 공개를 거부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족이 괴롭힘의 실체를 파악하고 향후 손해배상 청구 등 권리구제를 위해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정보는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공익과 유족 보호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공개된 상담 자료는 청주지방법원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단초가 됐다.
이는 사건 이후에도 식약처의 대응이 재발 방지나 조직문화 개선보다는 사후 방어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식약처는 이제라도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 있는 조치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두 개의 패소 판결에서 드러난 식약처 직원들의 처우와 조직문화의 취약성은 단순한 개별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관리 시스템 전반에 구조적인 허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식약처가 곱씹어야할 대목이다.
때문에 식약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으로서 구성원의 안전과 존엄을 보호할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2000여명의 공무원을 이끄는 국가기관의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