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2025 코넥트 임상시험 국제 콘퍼런스'
임상 강국 위한 3가지…지역격차 해소ㆍ항암 편중 탈피ㆍ인센티브 강화

국내 임상시험 시장이 구조적 한계와 잠재력 사이에서 기로에 섰다. 항암제 편중, 수도권 중심의 연구, 규제 경직성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산·학·관이 협력해 환자 접근성 확대, 제도 유연성 강화, 인센티브 확대 등의 과제를 해결하면 한국 임상시험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왔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23일 열린 2025 코넥트 임상시험 국제 콘퍼런스의 '기로에 선 한국의 임상시험' 세션에서는 반준우 서울아산병원 임상의학연구소장과 이소라 시네오스헬스 대표가 좌장을 맡았으며, △임윤희 한국임상개발협회 회장 △신수경 GC바이오파마 의학본부장 △김정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정주연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과 과장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 △마이클 프랭클린 일라이릴리 부사장 등이 패널로 참석해 한국 임상시험의 현황과 도약 과제를 논의했다.

 

지역 격차 해소해 '환자 접근성' 높여야

임윤희 한국임상개발협회 회장은 한국 임상시험의 현황을 먼저 소개했다. 그는 "한국은 2002년 임상시험 제도 도입 이후 약 10년간 승인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지난해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약 740건으로, 단일국가 기준 6위, 다국가 임상시험 기준 11위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발표에서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인력을 갖추고 있으며, 복잡한 항암제 임상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 등 장점이 크지만, 낮은 환자 접근성과 지역 편중은 약점으로 꼽았다.

마이클 프랭클린 일라이릴리 부사장은 "한국은 이미 연구 품질이나 과학적 수준, 그리고 환자 수요 면에서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진짜 걸림돌은 '환자 접근성'에 있다고 말했다. 임상 연구가 대형 3차병원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어 환자들이 실제로 임상시험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부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시험 센터들은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더 많은 환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며 "환자 모집과 참여는 단순히 병원 내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과 커뮤니티 네트워크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역 사회와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이뤄지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어떻게 하면 지방 1차 의료 현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이 과제가 풀려야 환자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고, 한국 임상시험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도 치매 임상시험의 가장 큰 과제로 환자 접근성의 불균형을 꼽았다. 그는 "치매 임상에서는 영상검사(MRI·CT), 인지기능 검사, 바이오마커 검사가 필수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병원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돼 있다"며 "결국 전체 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중소 병원 환자들은 임상시험 기회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주나 미국은 혈액 기반의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지역 병원 환자들도 임상에 참여하고 있다"며 "한국도 빠른 고령화 속도를 고려해 중소병원까지 연구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혈관ㆍ뇌질환 임상 시험에 잠재력 있어

임 회장은 국내 임상시험 건수 중 항암제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중추신경계·면역학 등 비종양 분야는 매우 부족한 상황임을 짚었다. 이에 김희진 교수는 "인구 감소,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라는 변화로 인해 이제는 비종양 분야, 특히 심혈관·신경과 질환 쪽으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글로벌 임상 건수는 지난해 대비 9% 이상 증가했고, 퇴행성 뇌 질환은 고령화 사회에서 미충족 수요가 매우 크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이 분야를 차세대 핵심 연구 영역으로 집중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역시 치매 코호트 구축, 바이오마커 연구 등 포괄적인 연구 생태계를 이미 갖추고 있어, 비종양 임상시험, 특히 신경과 질환에 한국 임상시험의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세제ㆍ약가 혜택 등 인센티브 강화

임윤희  회장은 우리나라 임상시험 제도에서 인센티브의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임상시험을 수행하다가 잘못하면 패널티가 상당히 크다. 규제는 강력하게 작동하는 반면, 잘한 시도에 대한 보상은 해외에 비해 부족하다"며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세제 감면이나 약가 혜택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임상시험을 장려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환자 안전을 위한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시도와 성과를 독려하는 장치가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패널들은 한국 임상시험 과제를 해결하려면 산·학·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특히 제도적 유연성, 전문인력 양성, 연구자 참여 확대, 환자 접근성 제고까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정주연 식약처 임상심사과 과장은 "현행 제도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환자 접근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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