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환자, 진단조차 어려운 극희귀질환 치료공백 해소방안 모색

환자 수가 적고 진단이 어려워 희귀질환으로 지정받지 못하고 치료비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극희귀질환을 건강보험 제도권으로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임상 현장의 의견이 제시됐다. 추위에 노출되면 적혈구가 깨져 빈혈과 혈전을 유발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한랭응집소병'이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16일 국회 본관 별실 182호에서 '건강보험 제도개선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국내 희귀질환자 치료 환경 및 건강권 보장 현황'을 주제로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의 치료 현실과 의약품 접근성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랭응집소병은 체온이 정상 범위보다 조금만 낮아져도 적혈구 파괴가 지속, 반복적으로 일어나 극심한 빈혈 또는 빈혈과 관련된 합병증을 유발하는 극희귀 자가면역질환이다.

장 교수는 "주로 60대 이후 발병하는 한랭응집소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만성 중증질환이지만 질환 인식이 낮아 진단이 지연되거나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 옵션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국내 허가된 치료제가 있지만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반복적인 수혈과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적인 치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국내 한랭응집소병 환자는 180명 규모로 추정되나, 질병코드가 없어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특이적 독립적 진단이 가능한 질환이지만 지난해 희귀질환 지정 대상에서 제외돼 올해 다시 심의 절차를 받고 있다.
장 교수는 이어 "극희귀질환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희귀질환 지정, 치료제 신속 등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영국 호주 등 해외 사례를 참조해 건강보험과 별도의 희귀질환 치료제 지원 기금 신설하거나 산정특례 적용 등으로 환자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사례도 소개됐다. 60대 여성 환자는 "이름조차 낯선 한랭응집소병으로 진단받고 일상이 무너졌다. 급격한 악화를 막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철저히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며 "경제적 장벽 때문에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70대 여성 환자는 "진단 후 생업을 포기했고, 파괴된 적혈구가 쌓여 생긴 담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여덟 번이나 받았다"며 "다행히 치료제를 처방받은 후에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다른 환자들에게도 하루 빨리 경제적 부담없이 치료를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허가된 한랭응집소병 치료제로 '엔제이모'(성분명 수팀리맙)가 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 치료 적용은 제한적이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정진향 사무총장은 "공적 자금인 재난적 의료비를 확대해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며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험 적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건의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이와 관련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 먼저 허가된 신약을 국내에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에 비해 허가가 지연되지만, 허가 후 급여가 적용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며 "식약처도 허가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로 했고 복지부가 심평원, 공단과 2024년부터 허가-평가-협상 시범사업을 통해 기간을 단축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어 "환자 수가 적더라도 제도권 안에서 검토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며 "보험적용은 해야 하지만 평생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타당하고 합리적인 효과와 가격이 제시된다면 검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도 "희귀질환 특성을 고려한 급여 평가를 위해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생략 등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정과제를 비롯해 희귀질환 지원 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 만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절차적인 신속성을 갖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유병인구가 극히 적어 진단이 어렵고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극희귀질환의 경우 지원이 절심한데도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못해 치료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희귀질환 지정 제도 개선과 급여 확대를 통해 환자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과 예산 확보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