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 'CSO는 더러운 영업'이라 말씀하시는 어느 분께

개인적으로 폰트를 좋아한다. '고작 글자체가지고 무슨' 이라는 말을 들을 법하지만 폰트가 가지는 가독성과 단아한 모습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폰트 하나가 실제 기사와 표를 읽는 시간은 물론 이해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디자인업계의 많은 연구 결과에서 '글자 덕후가 꽤 많다'는 점을 유추해 본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제약바이오 종사자들은 아래 왼쪽 폰트가 익숙할지 모른다. 미국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과제를 제출할 때 통상적으로 쓰는 '타임즈 뉴 로만'이라는 폰트다.

왼쪽부터 타임즈 뉴 로만과 캘리브리 폰트. 별달리 보일 것이 없는 폰트가 미국 정부를 흔들었다.
왼쪽부터 타임즈 뉴 로만과 캘리브리 폰트. 별달리 보일 것이 없는 폰트가 미국 정부를 흔들었다.

타임즈 뉴 로만 폰트가 2023년 미국 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미국 국무부가 재외공관을 비롯한 산하조직이 쓰는 폰트를 타임즈 뉴 로만에서 우측의 '캘리브리' 폰트로 바꾸도록 지시하면서부터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정부 문서에는 서체부터 간격, 글자의 크기까지 규격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국무부가 새 폰트를 적용하면서 정부 부처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미 국무부 측은 폰트의 끝부분 내 꺾어지는 조형적 요소(세리프)가 저교육층과 시각장애인 등에게 난독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서체를 바꿨다. 실제 글자를 읽을 때 세리프가 없는 경우 더욱 명확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당시 외신 보도를 보면 세리프가 없는 캘리브리는 국무부 직원은 물론 정부 안에서도 '폰트모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세리프가 있는 글자는 품위와 고급스러움을 갖추고 있는데 '세리프도 없는 이상한 글자'가 공식체로 지정된 이상 문서의 고급스러운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최근 CSO를 도입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 순혈주의자에게서 CSO를 향한 거친 비난'을 들었을 때 폰트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깥에서 보면 누가 영업을 하든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할 테지만 업계 안에서는 CSO 도입에 반감을 갖는 현상이 존재한다.

매출 기준 상위사들이 하나둘씩 CSO 도입을 하는 시점에서 'CSO는 영업을 더럽게 하니까'라는 편견 강한 비난은 마치 '세리프도 없는 글자를 왜 써야 하냐'는 이들의 의견과 겹쳐보인다. 일부 납득이 간다. 특정 제제의 엄청난 성장에 CSO의 과당 경쟁이 있었고, 그 과정이 정부의 감시를 통해 드러나는 사례도 꾸준했었다.

필요한 것은 CSO 소속 영업사원이 '더럽게 영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판매에만 매몰돼 의약품의 가치를 소홀하지 못하도록 제약사를 계도하는 방향성이다. CSO를 부인하며 CSO를 이용해 매출을 끌어올린 업체들을 향해 '매출에만 환장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캘리브리의 시대에서 타임즈 뉴 로만 폰트를 들고 결재서류를 들고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10여년 전 병원을 취재할 때마다 교수의 진료실 앞에서 땀을 흘려가며 '교수님 한 번 뵙기'를 그토록 기다리던 영업사원들이 있었다. 명함과 인사를 건네며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그들중 상당수는 10여년이 지나 CSO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이 쌓아왔던 경험을 프리랜서 개념으로 옮기는 일은 흔하다.

지난해 10월 본격 시행된 CSO 신고제는 현재 캘리브리 문서처럼 자잘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약업계가 CSO 제도와 관계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과제로 남아있다. CSO를 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뀔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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