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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 차이…'환자 중심' 집단 지성 필요

고가의 혁신 항암제들의 급여 등재 실패 소식이 최근 이어지면서, 항암제 선별급여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서라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는 학계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항암제 선별급여 제도는 2019년 건보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한 약가 정책으로, 이 제도가 적용되는 약제는 5%의 본인 부담을 넘어 임상적 유용성과 사회적 요구 등에 따라 30~100% 본인 부담 범위에서 환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급여 기준이 확대된다.

선별급여는 △의학적 타당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대체가능성 △사회적 요구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본인 부담 범위가 설정된다. ①임상적 유용성이 있고 대체 가능하지 않은 경우 30% 또는 50% ②임상적 유용성이 있고 대체 가능하나 사회적 요구가 높은 경우 50% ③임상적 유용성이 불명확하나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경우 50% 또는 80% 등으로 적용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충족한 적응증은 기존 급여 제도와 동일하게 5%의 환자 부담만이 적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9년 5월 20일부터 일부 유방암 및 전립선암 치료제들을 첫 선별급여 대상으로 적용했다. 유방암 치료제 △퍼제타(성분 퍼투주맙) △할라벤(성분 에리불린),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성분 엔자루타미드) △자이티가(성분 아비라테론)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례로, 퍼제타의 경우 △국소 진행성 염증성 또는 초기 단계(지름 2㎝ 초과)인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수술 전 보조요법으로 화학요법과 병용투여 시 30%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HER2 양성 및 림프절 양성(트라스트주맙과 퍼투주맙 병용요법의 투여 18주기 이하)의 조건에 모두 만족하는 유방암 환자에 대해 병용요법 시 100% △전이성 질환에 대해 항-HER2 치료 또는 화학요법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HER2 양성 환자로 전이성 또는 절제 불가능한 국소 재발성 유방암 환자에게 도세탁셀과 병용투여 시 5%로 적용되고 있다.
항암제 신약은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가 보유한 품목일 가능성이 높은데, 자사 제품의 한국 시장 출시를 위해선 급여 등재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선별 급여를 통해 일부 환자 부담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시장 내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선 전체 급여 적용이 선제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항암제 선별급여 제도 도입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대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보험 당국의 허들이 높은 탓인지,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이 예전과 같은 지 이유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질환에서 고가의 혁신 치료제가 등장하고 있는 까닭에 건보 재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과학기술이 발전으로 혁신 항암요법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 맞춰 이들을 선별급여를 통해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에 나섰다.
지난달 11월 7일 대한폐암학회가 개최한 국제 학술대회(KALC)에서 연자로 나선 윤신교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선별 급여를 통한 환자 부담 5%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에 따른 선별 급여 등 방식을 활용한다면, 더 다양한 약제를 환자에게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권고해야 하는 의료현장에서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주장하는 약제가 나왔다고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는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항암 신약의 환자 부담이 100%인지, 아닌지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환자를 설득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열쇠는 선별급여가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선별급여를 통해 환자 사용이 가능한 선으로 접근성을 확대하고 나면, 후속 연구 및 실사용데이터(RWD) 등을 추가로 확보해 최종적으로 그 기준을 넓힐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 제약사의 움직임이 제일 중요하다. 회사 입장에서 처음부터 전체 급여를 적용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고, 경쟁 제품이 기 등재돼 있다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수 있다.
효과있는 약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제한적이나마 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최근 병용요법 중 일부 약제만 급여를 제공하는 '부분 급여'도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산·관·학 관계자들의 집단 지성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한데 모여 이른 시일 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기를 바란다. 산·관·학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에 앞서는 건 '환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