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
창업주의 성(城)에서 신약 개발·실적 경쟁은 스트레스

기자수첩 '생각을 HIT' 다음 순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제약사 한 관계자가 던진 자기 회사 창업주 후손인 이른바 창업 2세, 창업 3세와 관련한 말이었다. 토씨 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내용은 이러했다.
①'회사의 창업주가 업계에 얼굴을 잘 보이지 않는 분이 아니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도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하죠. 프로필도 다시 한번 찍으시고 외부 활동도 자주 하시면 회사 인지도나 (회사 안팎의) 영향력도 더욱 높아지지 않겠냐고요. 근데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소극적인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대표님을 싫어하기가 힘든 것이 회사 안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시거든요. 진짜 하나하나 관련된 사항을 체크하면서 되게 꼼꼼하게 관리를 하려고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모습은 외부에 서 볼 수 없으니 마치 경영을 안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게 있어요."
②다른 회사 관계자와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던졌다.
"그래도 저희 사장님은 낭만이랄까, 그런 게 있는 분이었어요. 우리가 돈은 없어도 나름 신약도 개발하고 차별화를 가지고 있다는 꿈을 가졌었어요. 내부적으로 매우 끈끈하게 만드는 분이기도 했고, 직원들에게 주고 싶은 것을 직접 챙기면서까지 열심이었어요. 그게 잘 드러나지 않은 것 뿐이죠."

두 창업주 가문의 경영자는 실제로 외부에 얼굴을 잘 내비치는 이들은 아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이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잘 나가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들에게도 통용될까라는 질문이었다.
태어나 보니 창업주 가문이었고, 가업을 잇는데 유리한 전공을 선택해 처음부터 정해진 길로 들어서 회사를 맡았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자신의 사진과 함께 언론에 이런저런 분석으로 나올 때 이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회사를 맡지 말던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내이사 혹은 그냥 기업의 지분을 가진 창업 2세 혹은 3세로만 남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왜 경영까지 참여하면서 일을 사서 만드는 것이냐"고. 이들의 주장은 납득할 만하다. 나 역시 전문경영인이 이끌어가는 유한양행의 사례를 떠올리며 같은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예외적 상황은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 찾기 힘들다. 국내 제약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며 실제 창업주 가문의 힘과 영향력 아래 매우 강해졌고, 그들의 빠른 의사결정은 강점으로 부각되기도 한 탓이다. 우리나라 제약사 가운데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자수성가한 사례가 많아 창업주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제약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인데, 모두 '신약 개발' 만을 이야기한다. 임상 1상에 들어간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약이 나올 듯 증시는 요동치고, 언론은 대서특필한다. 반대로 임상에 실패하거나 예상 외로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두면 '이놈이 나쁘다, 저놈은 안 된다' 같은 말들이 꼬리를 물고 오간다. 화풀이 대상을 찾다가 오너십 문제가 거론되고 2세, 3세가 실패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주가가 오르면 '교주님', 떨어지면 '저XX'가 된다.
많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바이오업계와 다르게 전통 제약업계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신약 개발만으로 살 수 없는 구조고, 한 명의 리더십만으로 흐름을 만들기 쉽지 않다. 당장 3월 약가인하 문제를 떠안고, 캐시카우를 찾아야 한다. 위수탁 관계에서도 어떻게 돈을 뽑아낼지 걱정해야 하고, 가능성 때문에 남들이 다 뛰어든 레드오션에 투자하는 불합리한 상황도 있다.
창업주가 쌓아놓은 성(城)은 견고하고 업에 맞춰져 있다. 다소 보수적인 업계 특징에 맞게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고, 현 구조를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노력이 먹히기 힘든 상황에서 회사들은 당장 다음 달 종업원 급여를 빼 '신약 개발'에 올인하라고 강요당한다. 내부 임원진이 바뀌기라도 하면 의미를 과잉 부여하고 이야기를 쏟아낸다. 종종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 들이다.
결국 이들의 말을 따라가면 경영 실적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때가 오면 다시 사람들은 '창업주 때가 나았다'며 주주총회에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내기도 한다. 말을 따라가지 않으면 주가는 떨어지고 '딴짓하는 창업주 일가'라는 변명이 이어진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은 창업주 2세와 3세들이 떠안아야 하는 공통된 딜레마다. 과연 창업 2세와 3세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결국 수십년 이어질 이들의 경영 노력이 '미래 제약산업계의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