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이 러브 유유' 출간

유승필 유유제약 회장(사진: 유유제약)
유승필 유유제약 회장(사진: 유유제약)

사람을 살리는 약, 78년 유유제약 이야기

1981년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오니 한국에서 보내온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유유제약 재무담당 상무입니다. 지금 회사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습니다. 회장님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회사로 돌아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7쪽

19일 출간된 유유제약 유승필 회장의 에세이 '아이 러브 유유'의 프롤로그다. 당시 미국 페이스대학교 대학원 조교수로 일하던 유승필 회장은 회사가 어렵다는 편지를 받자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 경영학 박사 학위 한국인 1호였다. 1983년 유유제약에 입사해 부회장·사장을 역임했으며, 1987년 만 41세에 대표이사로 승진해 회사 경영을 맡게 됐다. 

이 책은 유 회장의 자전적 이야기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유유제약의 역사를 담고 있다. 유유제약은 1941년 자본금 15만원의 유한무역주식회사로 시작했다. 유 회장의 아버지인 유특한 회장은 국내 최초 당의정(달콤한 옷을 입힌 알약) 형태의 비타민제 '유비타'와 종합 영양제 '비타엠·비나폴로', 항결핵제 '유파스짓' 등 히트 제품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었다.

그러나 약이 잘 팔려도 일반의약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매출 규모가 작았고,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 탓에 사내 현금이 부족해 회사는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유 회장은 현금 확보와 수익성 위주의 경영 전략에 따라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정리하면서 품질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전문의약품에 집중하고자 했다. 다만 전문의약품을 개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눈을 돌린 것이 바로 개량 신약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개량 신약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아버지 유특한 회장은 개량 신약을 이해하면서도 우려스러운 마음에 약학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강 박사, 원료를 섞는 것도 기술이오?"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원료를 섞는 기술의 첫 번째 성과는 맥스마빌이었다. 유 회장은 국내 1호 개량신약인 골다공증 치료제 '맥스마빌'을 시작으로, 허혈성 뇌졸중 치료제 '유크리드', 국내 최초 은행엽 추출물을 이용한 혈액순환 개선제 '타나민주'를 탄생시키며 100년 장수 기업의 튼튼한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은행엽 제제는 150여가지나 된다. 그 중에서 유유제약의 '타나민'이 가장 우수하고, 안정적인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오죽하면 의사들이 "환자에게는 가격이 싼 다른 회사의 은행엽 제품을 처방하고, 가족에게는 비싸도 원료가 좋은 타나민을 준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을까. 어떠한 순간에도 품질에서만은 타협하지 않는 유유제약의 원칙은 78년을 지켜온 유유제약의 자산이다. -114쪽

유 회장이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아들인 유원상 대표가 경영을 맡게 되면서 여유가 생기자 남는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쓰고자 했다. 자녀들도 '아버지의 삶이 유유의 역사'라면서 유 회장을 설득했다. 

에필로그에서 유 회장은 "지난 30년간 나는 일만 하며 살았다. 언제나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했고,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회사에 쏟아 부었다. 경영을 맡은 이후 나의 미션은 유유제약의 생존과 발전이었다. 물론 기업의 외형을 더 키우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시절을 겪으면서 나는 무작정 규모를 늘리기보다는 다이아몬드 같이 내실 있는 기업을 만드는 방향으로 경영을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 에세이는 총 237페이지 분량이다. 큰아버지인 유일한 박사의 도움으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오른 미국 유학길 이야기를 시작으로 30년간 기업을 이끌어 온 한 기업가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담고 있다. 1만5500원, 학고재.

*유승필 회장은?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고 2학년 때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미국 오하이오주 하이델버그 칼리지에서 수학·경제학을 공부했다.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16개월 만에 재정학 석사를 받고, 같은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페이스 대학 대학원 조교수로 일하던 중 '회사가 어렵다'는 편지를 받고 1982년 귀국했으며 1987년부터 유유제약을 경영했다. 2001년 제4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을 맡아 의약분업 제도가 빠르게 정착하도록 협회를 이끌었다. 1997년부터 주한 아이티공화국 명예영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4년간 주한 명예영사단장을 맡았다.

최근에는 국립오페라단 후원위원회 명예회장으로 예술과 경영의 접목을 시도하는 동시에 세종대 경영학과 겸임 교수로 청년들과 꾸준히 소통 중이다. 상훈으로 명문장수기업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상,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동암 약의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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