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13년만에 망령처럼 되 살아난 이명박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정책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기등재 의약품 일괄 약가인하 정책
이명박 정부의 '기등재 의약품 일괄 약가인하 정책(2012년)'이 이재명 정부의 '약가제도 개선안(2026)'으로 재현되기 일보 직전이다. 두 정책의 공통 목표는 국내 제약회사들이 보유한 건강보험 등재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을 깎아 건강보험 재정 여력을 확보하거나 다른 곳에 충당하려는 것이다. 다만, 닮은 꼴 정책을 감싼 포장지는 2012에 비해 더 알록달록해 졌다.
2012년 2월 27일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과장 류양지)와 보험급여과(과장 배경택)의 보도자료 타이틀은 "4월부터 약가 대폭 인하, 과중한 국민 약품비 부담 줄인다"로 노골적이었다. 이 같은 정책이 시행 절차를 밟던 2011년 11월 16일 복지부는 "약가인하 등 제도개선 효과로 2012년 건강보험요율은 2.8% 인상에 그쳐 2011년에 비해 4.4%p 낮아졌다"며 정책 시행 예상 효과를 사전 홍보하며 여론 잡기에 나섰다. 제약업계 주장을 여론 바깥으로 밀어내기 위한 의도적 디테일이었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에 몸담고 있는 임채민·송건익 전문위원이 장관과 차관을 맡았던 보건복지부는 2012년 2월 27일 "2012년 4월부터 약제급여목록표 1만3814품목 가운데 6506품목이 평균 14% 가격 인하돼 전체 약품비 절감액이 1조7000억원(건보재정 1조2000억원, 환자본인부담금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히며 정책 시행을 공식화 했다. "회사가 망한다, 산업이 무너진다"와 같은 산업계 주장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 프레임으로 뭉갰다. 2011년 8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는 자료에서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는 A씨는 연간 6만원 정도 약값 부담을 덜게 됐다는 가상의 사례'로 제약산업을 이미 고립시켜 놓은 상태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에게 한껏 기대를 걸었던 제약회사들은 바로 그 이명박 정부에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뜬채 성장 동력, 1조7000억원을 '강제 헌납' 당했다. 임채민 장관은 일괄약가 인하 정책을 발표하기 한달 전인 2012년 1월 6일 한미 FTA 발효, 약가인하 시행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내 제약산업을 선진화 해야 한다며 '2012 제약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국가정책 조정회의에 보고했다.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 도약을 비전으로, 2020년 기준 ①글로벌 신약 개발수 10개 ②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5.4% ③글로벌 기업 12개를 창출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제네릭 약가 깎아 다국적사 오랜 소원 풀어주는 약가제도 개선(안)
보건복지부는 '2012년 4월 일괄약가 인하 시행' 이후 13년 7개월이 흐른 2025년 11월 28일 보도자료를 내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대폭 높이고 신약개발 혁신과 필수약 안정 공급은 촉진한다'는 장황한 타이틀을 달아 '약가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약가제도 개선(안)을 ❶신약개발 생태계 조성 ❷필수의약품 안정적 공급체계 마련 ❸약가관리 합리화 등의 측면에서 설명함으로써 제약산업 육성정책처럼 비치도록 했지만 본질은 영락없는 '2012년 기등재 의약품 일괄 약가인하'의 재현과 다르지 않다. 정책 설계자인 정은경 장관과 이형훈 2차관은 일간 언론 기고를 통해 약가 개선(안)을 복음처럼 전파했다.
약가제도 개선(안)은 제네릭 의약품 기존 산정률 53.55%를 40%대로 끌어내리고, 20계단으로 설계된 약가 차등적용을 10계단으로 줄인다는 것이 골자다. 원래 보험약가가 1000원이었던 오리지널을 기준으로 할 때 2012년 일괄약가 인하로 인해 535원이 됐던 제네릭 약가를 400원대로 다시 깎아 내린다는 게 핵심이다. 대상품목도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현재까지 53.55%~44% 수준의 약가를 유지하고 있는 4500여 품목에 달한다.
약가제도 개선안 설계자들(장관 정은경, 2차관 이형훈, 건강보험정책국장 이중규→작년 12월18일 권병기 국장으로 교체, 보험약제과장 김연숙, 보험약제과 사무관 배기현)은 "약가제도가 작동하면 전체 재정절감 규모는 1조원 내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한국신약개발조합·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작년 12월 22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약가제도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국내 제약업계에 연간 3조6000억원대 손실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복지부의 1조원 내 재정절감'으로 한정해도 제약업계 전체 영업이익의 3분의 1이 넘는 돈이 일시 증발하게 생긴 셈이다.
'2012년 일괄 약가인하'를 단행하면서 '보험약가 혜택 등'을 주는 '혁신형제약인증기업'을 제약산업 선진화 장치로 같이 내놓았던 복지부는 이번에도 '약가인하라는 채찍과 함께 혁신형제약인증기업 약가 유지'라는 분홍색 당근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복지부가 제시한 당근은 제약기업의 체질을 제네릭 중심 비즈니스에서 혁신 신약개발 회사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복지부의 로직은 심플하다. 기업들이 약가 인하를 방지하기위해 R&D 비율을 높일 것이고, 이것이 지속되면 산업계 체질이 바뀔 것이라는 논리인데, 허망하고 허망할 따름이다. 약가개편(안)의 시행을 통해 글로벌 제약강국과 블록버스터 몇 개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 제약업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제약회사 대표는 "병아리 수준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성체로 성장해 알 좀 낳으려나 싶으면 모이 공급을 급격히 줄여 병아리 수준으로 되돌려 놓는데 무슨 알을 낳느냐"며 냉소적으로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 약가개선에 대한 국내 제약업계의 공통된 시각은 "제네릭 약가를 깎아 다국적 제약회사의 오래된 소원을 풀어주는 것"으로 요약되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 신약의 가치 + 환자 접근성 + 코리아 패싱'이라는 오래된 주장들이 합을 이뤄 다국적 기업들의 소원이 성취됐다는 원성은 국내 산업계 전반에 드높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목표로 삼았던 수많은 연구자들의 정부 용역 연구들도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들의 소원 성취에 봉사했다고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정부가 바뀌면 글로벌 5대, 7대 제약강국이라는 공허한 주장이 비전이 되고, 블록버스터 숫자와 세계 50대 제약회사 몇 곳 등등의 근거 부실한 목표가 설정되지만 정작 제약산업과 관련해 제대로 된 정부 용역연구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1원에 수렴해서라도 건보 재정을 지키고 싶어하는 파수꾼들이 설계한 제약산업육성 방안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①초혁신경제 15대 선도프로젝트 추진 계획(Ⅳ) ②국민성장펀드 ③2030년 바이오 의약 글로벌 5대 강국 ④이재명 대통령의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표명된 상황에서 산업 규모를 축소시키는 약가제도 개편(안)이 보란듯이 나오는 현실에서 인지부조화를 느낀다. 국내 제약회사 비즈니스의 중심인 제네릭 약가를 깎으면 제약산업도 발전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 가능한 것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혹시 연쇄적 기업도산이 일어나 승자독식 게임의 룰로 몇몇 규모의 기업이 탄생해 글로벌 혁신기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잘 되어도 일자리 파괴일 뿐이 겠지만 말이다.

◇약가제도 개선안을 보니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전래동화 떠올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창립(1945년) 기준으로 할 때 작년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역사는 80주년이었다. 이 긴 세월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은 '맨땅에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 자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제공할 수 있게 성장, 발전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자국민의 건강을 책임질만큼 단단한 기반을 가진 제약기업들을 보유한 국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충분히 자랑스러운 성과다. 그런데도 정부가 약가인하와 같은 의도된 일을 도모할 때 '국내 제약산업은 건보재정을 파먹고 사는 한심한 벌레 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흙을 퍼다 만드는 것처럼 가벼이 여겨 왔다.
돌아보면 국내 제약회사들은 원달러 환율의 지속 상승으로 높은 가격에 원료의약품을 들여다 완제의약품을 만들고, 2012년 일괄약가인하 등으로 영업이익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제시하는 생산시설의 CMC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꾸준히 높이는 상황에도 허덕대며 적응하고 있다. 정부가 요청하면 밤샘 작업하며 부족한 의약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용의 저수지 역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유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미약품 유한양행 종근당 대웅제약 GC녹십자처럼 신약기술 수출도 하고, 중견기업 동구바이오제약처럼 신약개발 만이 목표인 바이오벤처에게 투자도 하고 있다.
행여 정책 관계자들의 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리가켐바이오의 성과로 가득차 국내 전통제약산업계가 상대적으로 '재래식 기업군'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상호보완적 존재들이다. 바이오벤처 스타트업, 상장 바이오벤처, 제약회사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을 때 대한민국 제약바이오생태계는 다양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균형감있게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제약회사들은 누가 뭐라해도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독과점을 해소하며 국민 보건의료체계를 떠받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제약바이오생태계의 건강성이야 말로 정부가 그토록 도달하고 싶은 글로벌 5대, 7대 제약강국에 근접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재정의 관점에서 국내 제약회사들을 막 다루거나, 혹은 필요에 따라 들었다 놨다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몸둥아리를 내어줄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순간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오누이를 살려낸다. 하지만 대한민국 제약산업에 하늘의 동아줄은 없고, 한번 망가지면 되살리기 어렵고 그것으로 끝이다. 11.28 약가제도 개선(안)이 자꾸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라고 외치는 호랑이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기분 탓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