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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질환 신약 개발하는 서울대병원 이승훈 교수(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

"버리거나 혹은 살리거나." 다국가 특허 출원이 가능한 뇌질환 분야 연구 성과를 놓고 갈림길에 선 이승훈 교수(서울대학교 신경과)는 주저하지 않았다. 연구비 관리 규정 때문에 국제 특허 출원(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이 막히자, 그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과감한 결정을 했다.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국제특허 출원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과제당 적게는 200~50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 이상 소요되는 특허 비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원받기 어려웠다. 많은 연구자가 이런 사정으로 장기간 연구한 특허 기술을 포기하거나 초기에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 교수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직접 신약 벤처를 창업해 투자를 받고,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주도하는 길을 택했다. 경험보다 직관에, 논리보다 본능적인 '촉'에 베팅한 결단이었다.
'된다'는 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2016년 신약개발 벤처 세닉스바이오테크를 창업한 그는 창업 10년 사이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다수 확보하며 과감한 행보를 걷고 있다. 병원과 연구실, 스타트업의 교차로에서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의사 과학자 이승훈 교수를 <히트뉴스>가 만났다.

"불처럼 번지는 ROS, 나노자임으로 제압"
이승훈 교수는 10년 이상 신경계 질환의 주원인을 추적하며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를 제거하는 새로운 물질 '나노자임'에 주목했다. 나노자임은 '나노(Nano)'와 '효소 (Enzyme)'의 합성어로, 나노물질이 몸안에서 효소와 유사한 촉매 작용을 하도록 만든 인공 물질을 가리킨다.
그가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산화세륨(Cerium Oxide, CeO₂) 기반 나노자임으로, 뇌졸중, 신경계 손상 등 산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질환을 타깃한다. 비타민 C/E와 같은 항산화제는 분자 하나가 ROS 하나를 중화하는 데 그치지만, 산화세륨 나노자임은 촉매 작용을 무한반복해 들불처럼 번지는 ROS를 빠르게 제거하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이는 나노물질에 효소의 기능을 부여한 차세대 바이오 소재로 뇌졸중, 지주막하출혈, 파킨슨병, 척수 손상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 기회를 열어줄 혁신적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세닉스바이오테크를 창업한 그는 2017년 CX 플랫폼의 지주막하출혈 치료 효과를 세계 최초로 입증한 논문을 발표하고, 첫 신약 후보물질을 'CX213'으로 명명했다.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학계에 보고한 즉시 글로벌 9개 권역 특허를 우선 출원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활성산소를 약으로만 상대했기 때문에 실패율이 높았다"며 "불처럼 번지는 ROS를 단발적인 약으로 막을 수 없는 문제를 강력한 촉매로 돌파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도는 동물실험에서 기존 10% 수준이던 지주막하출혈 모델의 생존율을 80%까지 끌어올렸 다. 이를 통해 약이 아닌 촉매 물질로 금속 나노입자(산화세륨)의 범용성과 강력한 ROS 반응성을 확인 하며 임상적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 과정은 '이중눈가림' 원칙을 철저히 지켜 실험 편향을 최소화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실패 가 반복된 '신경보호약물(neuroprotection)' 영역에서 핵심 병태 기전인 ROS를 촉매제로 제어한 접근이 주효했다"며 "무기물질을 사람에게 안전하게 쓸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난제였는데, 입자 크기를 단백질 이하 수준으로 줄이고 혈중 응집을 막는 표면 개질을 통해 인체친화적인 나노자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나의 물질, 여러 파이프라인으로 확장"
나노자임은 강력한 효과뿐만 아니라 하나의 물질로 여러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는 확장성도 갖췄다. 그는 "비임상과 임상 1상에서 확보한 안전성 데이터는 다른 적응증에도 적용할 수 있어 하나의 물질로 5개 이상의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진척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뇌졸중 분야는 그동안 '신약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신약개발이 어려운 분야로 알려졌지만, 나노자임의 획기적인 확장성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세닉스바이오테크는 지주막하출혈 치료제 후보물질 'CX213'의 국내외 특허 출원을 확대하면서 미국 내 임상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FDA 임상 1상 승인을 받아 올해 임상 1a상을 시작했으며, 내년 초 임상 2상에 진입할 계획이다. 중증 급성 염증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CX301'을 비롯한 후속 파이 프라인 개발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회사 측은 2022년 신규 파이프라인 'CX301'을 공개한 데 이어 2023년 물질특허와 미국화학회 CAS(Chemical Abstract Service) 등록을 완료했으며, 임상 1상 진입을 위한 비임상시험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ROS는 혈관질환(지주막하출혈·뇌경색)에서 급성 손상까지 다양한 병태 생리에 깊게 관여 하기 때문에 같은 물질로 적응증을 확장하되, 각기 다른 약으로 허가받을 수 있도록 임상 설계를 탄탄 하게 하고 있다"며 "단일 후보라도 임상 기획을 '플랫폼' 관점으로 펼쳐 임상적 독자성과 확장성을 보여준다면 대형 기술 이전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없으면 만든다"...'신약의 무덤'서 두려움 없는 도전
세닉스바이오테크의 기술력과 실행력은 투자 시장에서도 인정을 받는 듯 했다. 2019년 시드, 2021년 시리즈A에서 185억 원을 유치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후 투자 한파가 시작되며 상황이 반전됐다.
"투자받은 자금으로만 신약개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 교수는 또 한 번 불가능에 가까운 결단 을 내렸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실패 위험도 크지만, 세계적으로 불모지에 가까웠던 나노자임 임상 시험(CRO)과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캐시카우를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임상시험 과정에서 역량 있는 핵심 센터를 찾지 못해 대기하거나, 세계 어디에서도 나노 파티클 전문 CDMO를 찾을 수 없었던 막막함이 '도전할 결심'에 힘을 실어줬다.
인체친화적 나노자임의
획기적 반응성과 확장성으로
뇌질환 신약개발 가능성 열어
그는 글로벌 CRO와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나, 최장 6년이 소요되는 비효율과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CDMO 시설과 관련해서는 "최소 면적, 최적 동선 으로 설계된 소규모 GMP 시설을 직접 구축해 임상 용 배치(batch)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며 "세계적으로 나노 파티클 전문 CDMO가 없어 먼저 판을 깔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세닉스바이오테크는 내부 규정·문서와 실제 생산 체계를 정립해 미국 1상 임상시험 물량을 자체적으로 생산·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확보해 내년 매출 100억 원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그는 "뇌졸중 분야는 지난 20여 년 동안 수많은 신약 후보물질이 실패하며 제약사들이 철수한 무덤 같은 시장이었다"며 "기존의 접근과 전혀 다른 새로운 도전으로 닫혀 있던 시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치료하는 의사 과학자, 사회적 역할도 고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진료와 연구, 기업 경영에 매진하는 그는 최근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 참고할 수 있는 뇌질환 예방 지침서 '뇌가 멈추기 전에'(21세기북스)를 출간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이 교수는 뇌졸중 위험 요인이 없는 건강한 사람을 0단계로 놓고 △위험 요인을 가진 사람을 1단계 △ 동맥경화증과 같이 직접적인 병변을 가진 사람을 2단계 △뇌졸중이 발생한 사람을 3단계로 구분해 단계별 특성과 예방 실천 지침을 안내했다. 신경과 전문의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뇌질환 예방수칙을 전파하는가 하면 유튜브 강연 등으로 일반인에게 다가가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뇌졸중 연구 수준은 정말 뛰어난데 일반인이 적용할 수 있는 지침서는 부족했다"며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인지,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한 것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갑자기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한 뇌 조직의 파괴로 신체 기능 일부 또는 전부가 손 상되는 질환을 말한다. 암, 치매와 함께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지목되지만 사소한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수많은 약을 환자에게 처방해 왔기 때문에 어떤 약이 환자에게 필요한지 누 구보다 잘 안다"며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내 인생을 바쳐 약을 만든 대가로 전 세계 환자들이 혜택을 받고 부수적인 성과도 따라온다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 2005-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교수 및 서울대학교병원 겸직 교수
• 2016-현재 (주)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 2016-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전임상실험실장
• 2017-현재 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 2025-현재 신경약물임상시험학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