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멘탈체크 : 고대 철학자의 진료실 1편 소크라테스 ]
송민규 원장은 의료인의 정신 건강과 감정 조절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다.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번아웃, 마음 챙김(Mindfulness), 인지행동치료(CBT), 변증법적 행동치료(DBT)가 환자 및 의료인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으며, 정서인지행동의학회 산하 DBT 공부모임 회원이다. 특히 감정의 이해와 조절을 임상 현장과 조직 운영에 통합하는 데 관심을 두고 다양한 강연과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가르치기보다 묻고, 이기기보다 공감하며, 정답을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 중심 대화법'은 오늘날 의사들에게도 환자와 소통하는 유용한 대화의 기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료실은 우리 몸의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불안까지 다루는 공간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상대를 꺾기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용기로 대화를 시작한 고대 철학자의 지혜로부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회복해야 할 대화의 원형을 찾아봅니다.
치유로 향하는 말, 소크라테스의 질문
기원전 5세기 아테네 광장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한 남자, 소크라테스. 그는 권위 앞에서도, 통념 앞에서도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불편한 질문은 결국 독배라는 극단적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그를 호출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보다 정직한 질문, 말의 승부보다 깊이 있는 대화, 단절이 아닌 이해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는 고대 아테네에서 활동한 철학자로, 오늘날 서양 철학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어떤 책도 남기지 않았으며, 제자 플라톤을 통해 그의 사유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지식인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시장에서, 운동장에서, 광장에서 사람들과 토론하며 살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고, 그것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독배를 마시고 처형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정의로운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었습니다. 그의 질문 방식은 지금 우리가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 혹은 대화 중심의 면담 기법과 놀랄 만큼 닮았습 니다.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 답변에 대한 고민
환자
ㆍ의사 선생님, 저 요즘 너무 피곤하고 무기력해요.
ㆍ사실 다 제 잘못 같아요. 제가 원래 좀 부족해서···
ㆍ그냥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검사를 통해 진단을 하고 이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사실 많은 의사들이 이런 질문 앞에서 잠시 멈칫합니다.
진료실에서 쓰는 소크라테스식 질문법
진료실에서 환자가 말하는 '생각'은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 생각이 너무 비관적이거나 왜곡되어 있을 때, 우리는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의사
ㆍ그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요?
ㆍ혹시 그와 반대되는 경험도 있었나요?
ㆍ그 일이 반드시 그런 결과로 이어졌던가요?
이런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이 생각이 꼭 절대적인 진실일 필요는 없어요"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해주는 부드러운 안내입니다.
만성질환 외래에서도 유용한 질문
환자
ㆍ고혈압약을 먹는데도 이렇게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 소용없잖아
요. 다 제 잘못이죠.
의사
ㆍ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ㆍ그동안 약 잘 챙겨 드신 건 누구 덕분일까요?
ㆍ그런 생각을 자주 할 때 기분이 어떠세요?
ㆍ혹시 그 생각이 바뀐다면, 오늘 하루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런 질문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기 성찰을 돕는 산파술'입니다. 그리고 이는 약물 복용의 순응도를 높이고,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진단'이 아니라 '대화의 질'
진료 현장에서 의사가 건네는 짧은 말 한마디가 환자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꼭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①좋은 질문 ②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생각의 여지를 주는 말은 모든 진료실에서 치료적 도구가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라. 질문하라."
진료실에 필요한 철학자의 태도
우리는 의학적 지식뿐 아니라, 때로는 환자의 삶을 더 넓게 바라보는 '사유의 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치료자가 환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신 같이 옆에 앉아 질문을 던지는 '동반자'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때로 약 보다 더 강력한 심리적 항생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플라톤의 "마음 안의 세 가지 힘"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감정적 충돌, 반복되는 자기 비난···. 그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