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성공을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

굳이 다루고 싶지 않았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누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하고 싶지 않았다. 기자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소재임에도 거리를 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쟁이 꽤나 소모적인 '썰을 푸는 것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양 측 의견을, 최대한 중립의 위치에서 다루려 노력했다. 그러다 지난 19일 한미약품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해임의 건이 부결되는 안팎의 상황을 보며 짧은 의견을 제약바이오산업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언론은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이후 아홉달 가량 따라가며 취재했고, 양 측 신경전과 연합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겼다. 누군가는 관심이 사그라든 회사의 모습을 다루기도 했으나 대개 글들은 가십으로 흘렀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와 아들, 딸, 심지어 고향 후배와 사모펀드가 주연인 이 광경을 누군들 재미없어 하겠는가. 반대로 그게 내 가족이라면 누가 재미있어 하겠는가. 기자의 마음은 복잡했다. 

충격적이었던 한 마디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국내 한 제약회사에 있던 이는 1년 가까운 이 상황을 간결하고 냉정하게 정리했다. "한미가 이제 별로 무서운 회사가 아닌거죠."

한미약품 본사 전경 /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 본사 전경 / 사진=한미약품

의외의 표현이었다. 국내 최상위권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를 두고 야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일리 있었다. 그래서 씁쓸했다.

1990년대 풍전등화의 위기를 '기술이전'으로 거뜬히 돌파하고, 중도 포기라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국내 최초로 표적항암제를 개발해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 R&FD 리더십을 확고히 하며 국내 제약사 가운데 세계 트렌드에 발맞추는 회사가 '무섭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는 간명했다. 성공을 함께 한 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연구 인프라와 그에 대한 관심, 인재풀은 국내서 최상급이라고 인정한 이 관계자는 "레시피를 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문율이었던 다른 회사 앞 의료기관에 처방권유를 할만큼 강한 영업력, 남의 힘을 빌리는 대신 임직원들이 머리를 싸매며 목표지향적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 회사가 망해간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R&D 비용을 썼다는 이야기들은 한미약품과 연이 없는 기자에게도 늘 흥미로웠다. 그래서 '레시피' 발언은 한미인들의 머릿속에 담긴 수많은 성공 스토리와 노하우가 빠져나갔다는 소리로 들렸다.

회사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외부 시선은 그러하다. 갈등 사이에서 만들어낸 '성공해본 이들'의 노하우는 얼마나 남아있을지를 모두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미에겐 이번 사태가 만들어낸 것이 '경영권 분쟁'에 앞서 회사가 쌓아왔던 그 이미지를 어떻게 더욱 공고히 혹은 새로 쌓아야 하는 지가 관건일지 모르겠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여겨볼 대목은 그렇게 아쉬움으로 회사를 떠나간 이들이 새로운 씨앗으로 업계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LG생명과학을 떠난 연구자들이 K바이오텍의 기반이 된 것처럼. 개인적이거나 회사 사정으로 나간 인재들이 다른 회사에 그 경험을 심고 키우고 있다.

선이든 악이든 거대한 뿌리가 뽑혀 나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작게나마 경험해 보며, 그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뿌리 중 어떤 것을 다시 키우고 또 골라내며 새로운 곳에 심어야 하는 것이 1년 가까이 지속된 한미약품 사태의 또 다른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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