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
류양지 법무법인 율촌 고문
지난 2월 6일 정부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4개월이 다 된 지금까지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아무리 실질적 합리성이 있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절차적 합리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책추진이 얼마나 어려운지, 결국 이러한 갈등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투명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 함을 우리는 지금 비싼 수험료를 내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 투명성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의약품 보험등재과정에도 있다. 좋은 약을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 느끼면서 사용하려면 건강보험등재가 필수다. 그런데 이 과정이 복잡다단하여 환자도, 제약사도, 보험당국도 모두 고생이다. 게다가, 최근에 개발되는 혁신신약들은 첨단기술의 집약체로, 관련 제도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기술과 지체되는 제도간 괴리를 메우기 위해 보험당국은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각종 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전문성을 보완하면서 회색지대의 재량성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평가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제한된 전문가풀로 운영되는 위원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원회 내용에 대한 공개, 관계인의 적극적인 의견제출 기회 보장 등 절차의 투명한 운영이 결정의 오류를 줄이고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이쯤에서 신약 보험등재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신청약이 보험재정으로 지원해도 될 정도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이 있는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 심평원은 의사결정 단계마다 다양한 전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약의 보험 적용 범위인 급여기준을 항암제의 경우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그 외 약은 ’급여기준소위원회‘에서 정한다. 그 기준범위에서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경제성평가소위원회’, 보험재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경우, 제약사와 보험당국 간 위험분담방식을 정하는 ‘위험분담소위원회’ 등을 거치면 드디어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된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한 약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심평원이 제안한 가격과 급여조건 등을 근거로 상한금액과 예상청구량 협상을 한다. 최종 협상 결과를 복지부에 보고하고 복지부가 건강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고시를 하면 비로소 해당약은 보험재정의 지원을 받아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설득력 있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보장되고 향후 의사결정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가 위원회의 간단한 논의 결과와 이유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구체적 내용까지 알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심평원 결정에 대한 내부 보고 및 다음 단계의 전략 수립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암질환심의위원회와 경제성평가소위원회 단계는 급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볼 수 있다.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원래 목적이 임상적 근거에 기반하여 급여기준을 설정하는 위원회임에도 최근 재정영향을 강조함으로써 많은 약들이 재정영향을 본격 검토하는 경제성평가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급여 길목에서 일찌감치 퇴장해야 하는 경우도 보인다.
어렵기는 경제성평가소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약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도구인 경제성평가는 2006년 말 기존 약보다 나은 효능을 가진 약을 선별해 등재하는 ‘선별약가제도’(Positive list system)‘와 함께 도입되었다. 호주,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일본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도 경제적 관점에서 신약의 비용 대비 효과성을 평가하는데 활용 중이다.

물론 나라마다 운영상의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와의 결정적 차이는 평가과정의 ’투명성‘과 ’이해관계인의 참여‘ 여부에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제성평가기관인 NICE는 평가과정에서 사용된 모든 임상 데이터, 경제적 분석, 의견수렴 결과 등 평가보고서 등을 공개하고, 평가과정 중 중요한 회의는 공개로 진행하며, 일반대중이 참석가능한 공개회의를 개최하기도 한다. 웹사이트에도 평가보고서, 권고안, 공개 상담에 대한 응답 등을 상세히 게시한다. 반면, 우리는 경제성평가소위원회가 끝나도 제한된 정보를, 그것도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파악하기 바쁘다. 그리고 보완요청에 대한 답변은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해야 하는 답답함을 경험한다. 이런 상황에서 심평원은 2016년 이후 희귀약이나 항암제 혁신신약 등 경제성평가자료 제출이 쉽지 않은 신약에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경제성평가면제제도를 올해부터 경제성평가유예제도로 전환하여 사후에 경제성평가를 거의 모든 신약이 다 하도록 하는 계획을 밝혔다.
지금도 평가인력의 부족 등으로 쉽지 않은 경제성평가단계가 향후 평가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더욱 힘들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일관성 있는 평가기준과 방식, 위원회 공개 범위 확대, 자료공개 확대 등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우선 과제인 전문성 있는 평가인력 확충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면 문제해결형 AI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봄 직하다.
우리는 지금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우고 있지 않은가. 빨리 가려다 넘어지고 부리에 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빨리보다 제대로 잘 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