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릴레이 기획 |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
디지털 치료기기, 전자약, 의료인공지능 등 디지털헬스케어 관련 취재를 이어가면서도 그들의 기술과 성과들을 확인했지만 '시장' 측면으로 접근했을 때, 가시적으로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기기 안에 숨어있는 이진법과 반도체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실제로 시장이 없기 때문인지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올해 3월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한 김치원 상무와 만났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이 가시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던 대부분 것들이 디지털화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시화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가 싶으면서도, 실제로 시장이 없기 때문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장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이 맞다고 봅니다. 병원, 제약회사, 사보험사가 디지털헬스케어 제품들을 사용해야 시장이 형성될텐데, 헬스케어 특성상 그런것이 잘 만들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카카오벤처스 입사 전에 1년 정도 자문역할을 했습니다. 정식으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왔을 때 제가 처음 물었던 것이 '한국에서 디지털헬스케어가 잘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당분간은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대표님은 '때가 되어가는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답을 듣고 나니 그렇다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텀-업으로 하나하나 들어오는 아이템이 어떤 비즈니스모델이 될까를 판단하려면 답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헬스케어가 '당장 우리나라에 필요한 시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관점이라면 저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기업을 찾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잘 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잘 하고 있는 기업은 어디인가요?
"이모코그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치매관련 디지털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려면 우선 제가 생각하는 국내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관점을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디지털치료제가 국내 시장에서는 제대로 활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수가지급이 어려울 것이고, 수가가 지급된다해도 그 금액이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디지털치료제 개발기업의 가장 큰 비즈니스모델이라면 다른 식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B2C(Business to Consumer) 혹은 해외진출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투자 근거가 나옵니다. 치매라는 것이지요. 헬스케어에서 B2C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소비자는 늘 건강에 신경쓰지만 지출이 그 마음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출할 의사가 충분한 질병 중 하나는 치매입니다. 공포가 강하기 때문으로, 치매 치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은 B2C로 갈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하나는 기술적인 부분입니다. 우선 일반적 디지털치료제 제품들 기반은 인지행동치료입니다.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관계자들은 인지행동 치료라는 개념이 국가,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인지행동 중 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인지행동치료 기반 디지털치료제를 만들어서 미국 진출을 준비할 경우 단순히 번역만으로는 어렵게됩니다.
두번째 투자근거는 바로 기술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지는 못하지만 이 회사가 개발중인 치매 디지털치료제는 게임적 요소가 가미되는 등 손쉽게 접근할 요소들, 번역 등 단순작업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이 확인됐습니다."
이모코그의 사례로, 투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살짝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투자를 하지 않은 사례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민한 부분들이 있어 답변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근에 몇몇 투자 진행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헬스케어 영역으로 보자면 검진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검진을 생각해보면 여기에 포함된 요소들은 일반인들에게 사용해도 비용효과성이 입증되는가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최근 평소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웰니스 아이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을 B2C만으로 판매하겠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헬스케어 영역으로 진입하려면 이에 대한 비용효과성 입증과 보험 필요성을 입증해야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진단기기, 치료기기의 입증보다 난이도가 높은 분야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답변 내용 중 투자 여부 결정 요소에서 VC들이 이상적으로 가져가아할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상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기는 어렵습니다. VC회사들이 다르고 개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리즈B 투자가 이뤄진 세나클이라는 기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세나클은 클라우드 기반 전자의무기록(EMR) 개발업체입니다.
기업공개(IR) 자료를 검토하고 업체 대표님과 만난 자리에서 대표가 내세운 것은 개인건강기록(PHR)으로 확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 PHR이 한계가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의사여서 일 수도 있지만 '과연 환자들이 자산의 의료기록에까지 신경을 쓰려고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업내용이 와닿지 않은 상태로 미팅이 마무리 됐습니다.
이후 다시 그 대표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저는 그곳에서 제가 생각하는 디지털헬스케어 슈퍼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먼 이야기겠지만 진료, 처방을 아우르는 개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난 후 '내가 하려던 말이 그 말이다'라는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IR 자료를 살펴보니 제가 말한 요소들이 그 안에 담겨있었습니다. 저는 PHR이라는 편견에 갇혀 가치를 보지 못했던 것이죠.
이렇듯 개인이 갖고있는 요소들로 '이상적 기준'을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카카오벤처스가 생각하는 방향성은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우리는 초기 투자사입니다. 초기투자자들은 '아이템 만큼 팀을 본다'고 하는 말은 자주 들으셨을 것 입니다.
이것은 여러의미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얼마나 전문성을 가진 팀인가'를 의미합니다. 가령, B2C일을 하려고 하는 업체에 B2C관련 전문가가 없는 상황, 사람을 통한 파일럿 연구를 성공했지만 이걸 디지털화 할 개발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투자 판단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저는 '팀을 본다'는 말을 팀의 솔직함 등 인간적인 면(?)을 본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만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팀 핵심멤버와 이야기하다보면 안좋은 것들을 숨기려는 분들도 계신데 이는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앞으로 수 많은 문제들이 나올텐데 당면한 과제에 급급해 사실을 숨기기 시작하면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회사 내부회의를 할 때 심사역들은 기업과 만난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좋지 않은 뉘앙스로 나오는 평가중 하나가 '동문서답'입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질문을 회피하는 상황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부분은 기술보다 내실 차원의 문제입니다. 기술에 치중한 사업에 대해서는 이를 가늠할 시야를 가질 수 있지만 서비스 사업인데 이같은 동문서답 태도가 나온다면 이에 대한 위험성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IR자료검토 이후의 업무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IR자료 검토 단계에서 갖고 계신 기준들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당장 할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은 무엇인지가 명확하면 좋겠습니다. 모회사 카카오를 사례로 들면, 우선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메신저 사업을 안정화 한 뒤 게임, 상품, 금융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 경우 메신저를 '미끼상품'으로 뒷단 사업을 수익상품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같은 면에서 IR자료가 '우리 회사는 일단 A사업을 진행합니다. A사업이 정착하면 A', A''를 더해 B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를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더할나위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 IR자료들을 보면 A와 B가 모호하거나 A,B를 넘어 'A~Z까지 다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사업을 나열하는 IR자료도 종종 보게 되는데,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시장과 투자 기준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디지털헬스케어 업계에 오래 있다보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 경력과 현재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 카카오 벤처스 상무 등 제 이력으로 목표를 예측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사실 저는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움직인 적은 없습니다. 제 좌우명은 '즐겁게 살자'입니다. 저는 재미있는일을 해 왔습니다.
저에게 재미라고 하는 것은 결국 '지적인 자극'입니다. 낱낱으로는 흐트러져 있는 것들이 간단한 원리로 설명되거나 현상과 그 뒤 질서가 다른 부분들을 확인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재미가 됩니다. VC의 장점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것, 혹은 기존을 넘어서는 창업자분들이 계속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라면 재미있는 회사를 만나 계속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